《삼국사기∙고구려본기∙모본왕기》에 보면 아래와 같은 기록이 나온다. 2년 봄, 장수를 보내 한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요동태수 채동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접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이는 《후한서∙광무제기》에도 나온다. 단지 행위의 주체자가 고구려가 아닌 요동외요의 맥인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요동외요의 맥인은 고구려 또는 양맥, 소수맥 등이 있다. 아마도 고구려를 중심으로 하는 맥인 연합체의 군사 시위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기사의 진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어지는 《태조왕기》애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의 침입을 대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중국 한나라 때 변군邊郡 지배 방식을 생각해보면 이민족 부락과의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