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중국이 하나의 통일체가 아닌 다양한 의지를 가진 개인들이 하나의 거대한 권력에 의해 불완전한 통합을 이루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중국의 권력구조를 살필 때도 이런 중국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적 주도권과 관련해 중국에는 크게 두 가지 목소리가 있다.
① 중앙정부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고, 중앙정부를 이끄는 당만이 중국 전역을 컨트롤 할 수 있다 (편의상 당권파當權派라 부르자).
→중국공산당 내부 당직자, 공청당 단원 등이 이런 생각을 한다(대표적인 인물: 리커창). 이 경우, 행정능력보다는 당내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발언권이 중요하다. 중국의 의사결정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내부 토론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일정 직급 이상 토론 참석자의 언변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변이 좋다 해서 반드시 출중한 행정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② 중앙정부가 막대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상은 중국이 너무도 커서 모든 일을 다 관리할 수 없고, 지방정부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주어 지방 부처의 일을 해결하도록 한다(편의상 관권파官權派라 하자).
→행정부처 관료, 지방 사업가들, 당정분리(국가 행정직을 공산당 외 다른 당파 및 무당파에게 열어주고 공산당은 군권, 예산 심의권, 감독권만 독점하는 시스템을 뜻함)를 외치는 지식인 등이 이런 생각을 한다(대표인물: 장쩌민, 시진핑). 이 경우 당내 의사결정 시스템에서의 발언권보다는 행정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경우, 언변이 어눌하거나 중재만 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이런 고위 행정직 아래에는 소위 “장자방” 역할을 하는 참모진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체로 정치 생명은 같이한다고 보면 된다.
중국이 당내 통제력을 강화하는 이면에는 사실상 당권파와 관권파의 “당정분리黨政分開”을 둘러싼 오랜 대립이 있다. 후진타오 당시 중국 학계에서는 이 당정분업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이 당시 중국의 정치개혁을 두고 두 가지 학설이 유행했다.
①당정분리 심화. 중국공산당은 행정부에 대한 감찰권과 예산심의권, 군권만 가지고, 행정부를 당과 완전히 독립된 상태로 운영한다.
②당내민주화. 중국 전 인민을 상대로 하는 민주화는 비현실적이고 정치적 파급력이 크니, 일단 중국공산당 당내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투표로 지도부를 선출하도록 하자(그래서 후진타오 당시 후계 문제를 놓고 당내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른 투표를 실험한 적이 있는데 이 투표의 최다 득표자가 다름 아닌 시진핑이다).
당연하지만 전자는 관권파 학자들의 개혁 청사진이었고, 후자는 당권파 학자들의 개혁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혁의 목소리 속에서 보수파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어 갔으며, 일부 극좌파 지식인들은 중국의 정치적 서구화는 중국에 이르러 중국을 더욱 부패한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의식한 보시라이와 같은 야심가는 보수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여러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①소득 분배와 ②애국심 고취를 통해 빈부 격차를 줄이고 사회 단결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권파의 지지를 업은 리커창 총리를 대신해 국가주석 자리에 오른 시진핑은 기존의 당정분리 개혁 노선을 부정하고, 당정일체黨政一體, 당정분업黨政分工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구호를 만들어 공산당의 행정부 장악력을 높이고 있지만, 실상 이 같은 구호가 구체적으로 어찌 실행되는지 살펴보면 마오와 덩샤오핑 이래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리는 그조차 당정분리 노선을 모두 뒤엎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시진핑 지도부는 ①당과 행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정국을 주도하거나 ②당서기 등 당과 행정직을 연결하는 연결고리에 힘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컨트롤하는 중이다.
심지어 시진핑 지도부의 집권 방식을 보면 우리는 이들이 후원신정 당시 정치 개혁 목소리를 일부 차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관권파의 정치적 주장이 대표적인 예인데, 시진핑 지도부는 이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여성, 무당파無黨派, 소수민족 출신의 정치권 진출을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적 연줄이 없는 이들의 충성심을 이용해 굳건한 정치적 기반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개혁 노선 차용은 앞으로 중국의 정치 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물러난 이후(물론 그는 오랫동안 집권할 것이다), 중국의 내부 정치 개혁은 다시금 당정분리를 둘러싼 당내 계파 대립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시진핑 시대 이후 당권파와 관권파의 주도권 논쟁은 향후 중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의 불편한 삼각관계 (0) | 2021.12.25 |
---|---|
《삼국사기∙고구려본기∙모본왕기》에 나오는 고구려의 상곡, 태원 습격 사건에 대해 (0) | 2021.07.25 |
중화주의와 대한족주의: 중화제국의 민족주의 이중 탄압 구조에 대해 (1) | 2021.07.05 |
중국식 제국체제와 민간자본과의 관계에 대해 (0) | 2021.07.03 |
알난하위斡難河衛와 멸호산滅胡山 (0) | 2021.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