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전체 인구가 14억 명 밑으로 떨어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냈다. 4월 30일, 중국 통계국은 성명을 내고 중국 전체 인구가 여전히 성장 중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의 신생아 출생률은 2010년 인구조사에 비해 10-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인지 올해 2월 중국 정부는 국무원령으로 은퇴 연령 연장(원래 중국 법정 은퇴연령은 55-60세였는데, 이를 60-65세까지 연장했다)을 공시했는데, 이로 보아 중국정부도 슬슬 고령화 사회 진입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인구구조가 중요한 까닭은 중국 경제의 성장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 인구의 구조적 특징을 알기 위해 2000년(제5차), 2010년(제6차) 인구조사 통계치를 살펴보도록 하자. 출처는 아래와 같다.
2000년 인구 통계:
www.stats.gov.cn/tjsj/pcsj/rkpc/5rp/index.htm
2010년 인구 통계:
www.stats.gov.cn/tjsj/pcsj/rkpc/6rp/indexch.htm
링크에 나온 수치를 통해 우리는 중국 연령별 인구구조가 알파벳 H와 유사한 형태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건국 이후, 중국에서는 3차례 베이비붐 세대[1]가 존재하는데, 현재 산업 일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①1962-1976년생, ②1986-1990년생이다. 편의상 전자를 2차 베이비붐 세대, 후자를 3차 베이비붐 세대라 부르도록 하겠다. 현재 중국정부의 은퇴 연령 연장 조치는 2022-2036년 예정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기한을 5년 정도 늦춘 것(2027-2041년)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들의 은퇴와 더불어 정부가 책임져야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차 베이비붐 시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30년부터 중국 경제는 예전과 같은 고성장 기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5%대 미만의 경제 성장률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이와 같은 저성장 기조는 3차 베이비붐 세대가 현역으로 활동하는 2051-2055년까지는 유지될 전망이나, 이들이 은퇴한 이후,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고성장을 낙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1] 용어 사용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통상적으로 중국에서는 몇 차 베이비붐嬰兒潮 세대라 이야기할 뿐(일례로 1949-1959년은 1차 베이비붐 세대, 1962-1976년은 2차 베이비붐 세대라 칭한다), 에코 세대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물론 난카이대 저우샤오보周曉波 교수가 2016년 《中國經濟增長趨勢的人口學邏輯》에서 에코세대라는 개념을 도입해 중국 인구구조 문제를 설명하려 했으나(현재까지 에코세대 개념을 도입해 중국의 인구구조 문제를 설명한 논문은 이 한편에 불과하다), 확실히 미국의 에코세대 개념을 도입하기에는 미중 양국의 인구구조가 판이하게 다르고, 오늘날 중국의 인구구조는 정치적 이벤트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았기에 무턱대고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용어 사용 문제를 놓고 큰 논쟁이 있었으며, 논쟁 끝에 내린 결론은 중국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2차, 3차 베이비붐 세대를 사용하는 대신, 중국에서는 에코세대라는 개념이 없음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에 여기 적는 바다.
우리는 이미 소련의 예시를 통해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내수시장이 붕괴될 때, 어떤 위협에 직면할 수 있는지 배운 바 있다. 50년대 냉전의 시작과 함께 미국은 소련 봉쇄 작전의 일환으로 동맹국과 소련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1950-1960년대 소련의 GDP는 5100억 달러(1950년)에서 8430억 달러(1960년)로 증가했으며, 흐루쇼프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소련 경제는 고성장세를 지속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 소련의 고성장 기조는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기간 소련의 GDP는 1.3조 달러에 이르렀으나, 예전에 비하면 GDP 성장은 분명 더디어졌으며, 1980년대에 이르러 소련 GDP는 1.7조 달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조 달러(1950년대 미국은 전세계 GDP의 28.3%을 차지했다)에서 3.1조 달러까지 성장했음을 생각해 보면, 70년대 이후 소련 경제는 더 이상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지 못하다가 해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소련 경제의 몰락은 미국의 대소련 봉쇄 정책보다는 소련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만일 미국의 대소련 봉쇄 전략이 효과적이었다면 50-60년대 소련 경제 성장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같은 저성장 국면의 요인을 나는 제2차 세계대전 소련의 높은 남성 사망률에서 원인을 찾고 싶다. 분명 2차 세계대전은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었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소련이 입은 병력 손실은 1144만 명(동원병력의 33.19%에 해당한다), 민간인 피해는 대략 1690-2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소련의 남녀 성비 균형은 파괴되었으며, 일부 연령대에서 남녀간 성비는 최대 4:7까지 벌어졌다. 이런 인구구조 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당시 소련의 인구구조를 살펴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 대상인 20대 중반-30대 초반 인구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움푹 들어가 있음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이는 정상적인 가정을 영유해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남성 인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련의 출생률을 잘 살펴보면 1961-1980년에 이르러 신생아 인구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편의상 이를 소련의 H구간이라 이름하자.
趙學董, 《戰後蘇聯人口出生率的分析》, 《人口研究》, 1984年第5期
그렇다면 소련의 H구간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여기서 유념할 점은 이 그래프가 인구 증감률 절대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1년-1980년은 2차 세계대전 직후 결혼한 사람들의 아이들이 결혼해야 하는 구간인데, 이들 부모 세대 남성 인구가 이미 나치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전후 소련의 출생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2차 세계대전 시기 청춘을 보낸 세대의 아이들이 결혼할 때 인구 증가율 감소와 신생아 인구의 급격한 하락을 막을 수 없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생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국가가 생산과 소비까지 책임져야만 했던 소련 중앙정부로 하여금 시장 수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게끔 만들었으며(실상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아는 이들이라면 정부에서 시장 수요를 예측하지 못할 시 벌어지는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결국 공급 예측 실패로 인한 만성적 부족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은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인해 발생한 수요의 급격한 하락과 내수시장 붕괴는 전쟁 참전국들이 대부분 경험해 본 적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이를 이민정책 개선을 통한 대규모 인구 유입으로 해결했으며, 유럽 국가들은 출산장려, 다문화 정책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신한 나머지 이런 실험적인 정책들의 성과를 보고 난 다음 자국에 도입하려 했던 소련 중앙정부의 오판으로 인해 이들은 자국 내수시장 붕괴를 막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 군비 경쟁까지 했으니 망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여기에 더해 경제적 문제의 책임을 중앙정부에서 고스란히 져야하는 소련 정치체제 특성상 사람들은 소련의 최고 지도자 고르바초프 나아가 소련공산당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소련의 와해로 이어졌다.
물론 이 같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련 지도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브레즈네프의 자원 수출,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모두 이와 같은 내수시장 붕괴로 인한 소련 경제의 몰락을 막으려는 노력이었으나 역사가 우리에게 증명하듯이 이 같은 정책들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소련 중앙정부는 인구학적 H구간의 존재로 인해 발생한 인프라와 상품의 과잉 공급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고르바초프의 경제 정책은 교육 인프라와 산업설비가 충분히 과잉 공급된 시장에 (생산성 개혁을 명분으로) 공급을 추가로 늘리는 것이었으니 실패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대소련 경제봉쇄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미국이 잘한 것은 인구구조 굴곡을 무의미하게 만든 성공적인 이민 정책이다). 미국의 대소련 경제봉쇄 정책이 한창이던 60년대 소련은 고성장 국면을 유지했음을 생각해보면, 미국의 대소련 경제정책은 소련이라는 거대시장에 진출 기회까지 빼앗은 실패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하는 편이 좋다.
재미있는 점은 소련처럼 중국도 이 인구학적 H구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1977-1985년에 태어난 이들은 화궈펑華國鋒에서 덩샤오핑鄧小平으로 정치 권력이 교체되던 정치적 혼란기에 태어났다. 이들의 자녀 세대가 태어날 때가 바로 2010-2020년 즈음인데(2010년 당시 중국 산모 평균 초산初產 연령은 29.1세다), 이들이 의무교육을 받는 시점(2025-2035년)부터 육아, 아동 관련 내수시장 규모부터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2-1976년생)와 그 자녀 세대가 만들어내는 소비 수요로 자국 내수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트럼프의 대중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경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던 까닭은 공산당의 대처가 A+를 줄만큼 뛰어나서가 아니라,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내수 시장 규모의 비약적인 성장에 있다(대신 GDP 증가분에서 내수소비 비중은 76.2%까지 증가했다). 다만 2030-2040년에 이르러 중국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①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②인구학적 H구간 자녀 세대의 사회 진출이다. 소련 경제가 몰락한 인구학적 요인을 고려할 경우, 이는 중국 경제의 저성장, 나아가 몰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련과 달리 중국은 3차 베이비붐 세대(1986-1990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이 생산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2040년대까지는 성장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들이 은퇴하기 시작할(그리고 이들의 아이들이 사회에 들어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게 될) 2051-2055년부터 중국의 내수시장 규모 또한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부터 중국의 진정한 위기는 시작될 것이다.
고로 나는 세 가지 지표가 2050년 이후 중국 경제의 운명(몰락인가, 지속적인 성장인가)을 결정하리라 본다.
①3차 베이비붐 세대의 출산율.
②농촌 지역의 높은 출산율 유지.
③중국 정부의 출산 장려와 이민 정책 개정으로 인한 인구 유입 증가.
생각보다 빠르게(그리고 트럼프의 대중 봉쇄 정책 때문에) 중국정부는 자국의 경제 체질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체질 개선”은 자국 경제규모를 내수시장과 연동시키는 구조다 보니, 내수시장 규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산인구가 지금처럼 꾸준히 감소할 시, 중국은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작년부터 중국의 3차 베이비붐 세대가 혼인 적령기에 들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신생아 인구가 향후 중국의 경제의 지속 발전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내 생각이지만 한동안 중국정부는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기 위해 농촌 지역에 젊은 여성 인구를 최대한 많이 묶어 두려 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때도 도시 하층민을 구성하던 여성 노동인구가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농촌으로 돌아갔음에도 중국정부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나아가 중국정부에서 실행하는 탈빈곤脫貧 정책 또한 가임기의 여성들이 농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이들의 도시 유입을 막으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 글을 끝내기에 앞서 몇 가지 포인트를 더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토론 과정에서 2차, 3차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적 기능이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세대와 유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이 경우 중국 경제는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중간치인 1969년생이 은퇴하는 2034년부터 고용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중국과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오히려 중국은 내수시장 비중이 크다는 점 하나만을 놓고 보면 미국, 소련에 가깝다). 한국은 수출 주도형 국가다 보니 수출을 목적하는 하는 상품을 비교적 싼 임금을 주고도 고용할 수 있는 대량의 기술숙련노동자가 필요했지만, 인건비 상승과 (신규 노동력의 교육 수준 상승에 기인한) 블루칼라 기피 현상으로 인해 수출 기업들이 국내에서 더 이상 자신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자 기업들은 점차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국가들 자체가 자원 수출국이라는 점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같은 고용시장 경직에 더해 중국, 타이완과 같은 새로운 경쟁자들은 해외 시장에서 우리의 지위를 위협했으며, 정치권은 인권과 노동권을 이유로 국내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고용시장 경직 현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달리 중국은 ①자국 자체가 거대 원자재 수출국이고 ②대도시 화이트칼라 임금 상승으로 인해 임금이 오른 것처럼 보여도, 지방에 내려가면 여전히 평균 이하 임금(심지어 일반 베트남 노동자 급여 수준 이하를 받고도 일하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많다)을 받고 일할 근로자가 많은 편이다(오히려 중국의 문제는 이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편제 외적 근로자다 보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케이스가 늘어나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 일본과 달리 중국의 교육 시스템은 애초에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3차 베이비붐 세대의 대학 진학률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높지 않다(2010년 통계에 따르면 당시 1986-1990년생 4년제 대학 진학률은 10.97%다). 그래서 중국의 3차 베이비붐 세대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라 본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에코 세대의 높은 진학률과 그로 인해 초래된 블루칼라 기피 현상이 이 세대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눈에 띄게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90년대생부터는 에코 세대에서 보이는 몇몇 현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본다.
고로 무작정 한국의 예로 중국의 인구구조와 경제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 2021년 5월 3-4일 일부 용어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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