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 중국 개입설에 대해

계연춘추 2021. 5. 5. 18:12

내가 최근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공산당과 국내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의 조직적인 움직임 때문에 탄핵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이 이야기는 너무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였기에, 나는 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중국 개입설의 실체를 파보기로 결심했다.

지인들이 공유해준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니 이 중국 개입설은 K연구소 K소장, D일보 L기자 등 극우적 성향의 언론인, 지식인들에 의해 유포되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이나 북한 중심의 코민테른이 존재하는데(일단 여기서부터 웃음이 나왔다), 이들과 한국의 종북 좌파 세력이 연합하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들은 아래와 같은 정황증거를 근거로 중국 개입설을 주장했다.

①오키나와에서 박근혜 탄핵 문구가 적힌 손수건이 발견되었다.

②중국 대사관에서 자국 유학생들을 대거 동원했다.

③일본 모 정부부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시만단체에서 중국정부의 금전적 지원을 받고 위안부 상을 건립했다.

④중국 언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나서 탄핵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대한 반론을 차례대로 제기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①세월호 사건 때부터 박근혜 탄핵 구호는 여러 시민단체가 외친 바 있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탄핵 구호가 적힌 손수건이 만들어 졌음을 생각하면, 설사 박근혜 탄핵 사건 이전에 탄핵 손수건이 오키나와에서 발견되었다 한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라 본다. 일례로 2014년 5월 세월호 유족들은 박근혜 대통령 반대 시위를 하면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탄핵 서명을 받은 바 있고, 이후에도 세월호, 사드 관련 시위 증가로 인해 박근혜정부의 시위∙집회 건수는 이명박정부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헤럴드경제 2014년 5월 23일자 기사 〈박근혜정부 들어 집회 ∙시위 증가〉). 그리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 진보단체와 오키나와 평화시위대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됐고, 양자 간의 왕래가 이루어지더라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이 손수건은 일본 오키나와 지역의 진보단체와 한국 전교조와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만, 중국 정부와의 연관성까지 제기하는 것은 무리 아닌가 생각해 본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523000537&md=20140526091457_BL

[위크엔드] 박근혜정부 들어 집회 · 시위 증가

박근혜 정부 들어 집회ㆍ시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 천막에 대한 행정대집행 이후 총 266차례 연 인원 2만5345명 참가한 집회가 계속됐으며, 밀

biz.heraldcorp.com


②중국 대사관이 탄핵 집회 당시 자국 유학생들을 대거 동원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내가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니 대체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성화봉송 때 중국정부가 자국 유학생의 참여를 독려한 사건을 근거로 박근혜 탄핵 집회 때도 유사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내가 봤을 때 양자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 사건은 아닌 것 같다. 전자는 중국 정부에서 주최하는 국제 대회이니 당연 자국 유학생을 동원할 수 있지만, 후자는 중국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이벤트인데 섣불리 개입하려 했을까? 몇몇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 시위 문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참여할 수는 있어도 이를 중국정부에서 조직적으로 동원했다고 주장하려면 추가적인 증거 제시가 필요하다고 본다.

③중국은 원래부터 위안부, 독도, 강제징용 등 역사∙영토 문제에 있어 한국정부 및 시민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정부를 압박하는 전술을 취해왔다. 새로운 일도 아니고 오히려 중국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 계시는 만큼 양국의 협력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생각해 본다.

④이 소문의 출처는 조선일보 2016년 8월 15일자 기사 〈中, 다시 도 넘는 공격…“朴 대통령 탄핵될 수도 있다”〉이다. 그런데 이 기사 내용을 잘 살펴보면 중국의 극좌 언론 《환구시보》가 김상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의 “박근혜 탄핵” 발언을 소개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기사는 당시 중국에서 한국 정치권 내 사드 반대여론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해석까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어렵지 않나 생각해 본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5/2016081500236.html

中, 다시 도 넘은 공격… "朴대통령 탄핵될 수 있다"

브라질 리우올림픽 개막 이후 뜸했던 중국 관영 매체들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선전 공세가 지난 주말부터 다시 재개됐다. 한국 내 야당 일부 인사의 대통령 탄핵론을 부각시키

www.chosun.com


오히려 탄핵 사태 당시, 중국정부 관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할 것이라 확신했다. 2016년 11월 즈음 중국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박근혜정부가 곧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할 것이라는 기사를 심상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같은 언론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대다수 중국 관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권좌를 계속 유지하리라 내다봤다. 오히려 대다수 중국인들은 ①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것과 ②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저항없이 청와대에서 나와 구치소로 들어간 것에 충격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그 누구도 이 사건이 유혈진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구치소 수감으로 종결되리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처음 왔을 당시 시진핑 주석은 그와 만나지 않았다. 사드 사태로 양국 관계가 지나치게 경직된 것도 있지만, 톈안먼 사태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 보면 최고 권력자가 시민들의 시위를 진압하기는 커녕 오히려 아무런 저항없이 물러났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런 민주적인 시위 결과를 중국 지도부가 단번에 인정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적어도 중국 내부에 잘못된 신호를 주리라는 점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하물며 중국 정부는 사드 사태로 인한 한중 양국간의 경직상태가 4-5년 정도 지속되리라 예상했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자체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정치적 이벤트였다. 아마도 이 당시 중국 지도부는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시위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저항 한번 하지않고 청와대를 떠난 것에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며, 이 같은 반정부 여론에 힘입어 선출된 지도자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첫번째 방중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 중국 고위층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만일 (극우 진영의 주장대로) 중국정부에서 박근혜 탄핵 시위를 기획하고 시민단체에 자금까지 대주면서 이들을 선동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첫번째 방중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띄었을 것이다.

아울러 중국정부가 사드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반정부 성향의 시민단체에 직접적인 금전 지원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 이런 반정부 성향의 시민단체에서 주도하는 거국적 반정부 시위를 중국지도부에서 지원할리 만무하거니와, 만일 이 같은 반정부 시위가 도화선이 되어 (재스민 혁명 당시 중동 지역과 같이) 중국 내에서 유사한 형태의 시위가 일어난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 경우 중국지도부는 강경 대응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생각할 것인데, 그로 인한 서구권의 비난을 누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설사 중국 정부 내에서 박근혜 탄핵안과 같은 고위험 계획을 기획했다 하더라도 지도부 선에서 잘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요인 때문인지 탄핵 판결 이후 중국정부는 자국 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동정여론을 의도적으로 막지 않았다. 실제로 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 중국 펜클럽 근혜연맹 회원들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했는데, 탄핵 전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중국 내부의 동정여론, 그리고 최고권력자를 단지 “측근의 조언을 받았다는 이유(물론 단순히 조언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로 몰아낸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에 대한 중국지도부와 지식인 사회의 불신이 결합되다 보니 탄핵 사건 이후 박근혜 동정론은 중국에서 여전히 유행하는 중이다(오히려 사드 사태 당시 박근혜를 반중 정치인으로 묘사한 글은 인터넷 상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312225125&code=910100

박 대통령, 중 팬클럽서 생일선물 받아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일 생일을 앞두고 중국 내 박 대통령 팬클럽인 ‘근혜연맹(槿惠聯盟)’으로부터 화보...

news.khan.co.kr


상술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세간의 소문과 달리 중국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중국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한국의 시민운동이 중국에 미칠 여파를 줄이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에 불을 지폈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중국 내 여러 팬클럽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묵인해 주었다. 사드 사태에 대한 중국 내 분석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로 달라지는데, 헌법재판소 탄핵 판결 이전까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했지만, 판결 이후 미국의 강압을 강조하거나 최순실에게 뒤집어 씌우는 듯한 뉘앙스의 글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포대 배치보다는 탄핵 사태의 부정적 여파가 중국에 미칠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개입설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중국 개입설이 우파 노년층(50대 이상)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셨던 노년층 지지자들은 2012년 대선 당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자신들의 대통령이 100만 군중이 운집한 시위로 인해 탄핵됐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아닐까?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죄가 없고, 대통령 탄핵 사태는 중국의 한반도 침탈 기획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믿으셨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같은 탄핵 중국 기획설은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처럼 별 다른 검증 없이 사실인 것처럼 계속 전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되는 순간, 나는 어르신들께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풍차를 향해 달려나가는 돈키호테처럼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한, 성주 행세를 하는 여관주인들은 끊임없이 나타나 이들이 가진 경제적 이익을 갈취할 것이다. 실상 이 비극의 결말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이 “애국팔이”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 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그들은 그간 믿고 따른 “애국보수” 진영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강인한 신념이 이데올로기의 전장 속에서 우리나라를 지켜왔음을 생각하면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된 신념 가운데에서도 정도正道와 옳음을 갈망하는 그들의 정신을 배워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 중 일부는 중국의 전제주의적 체제에 대한 감정적 반감 때문에 반중 행위에 참여할 수도 있다. 또한 중국은 전세계적 산업 체인에서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이며, 이 같은 중국의 팽창이 우리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 자들에게 반중은 나쁘지 않은 정치적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배후가 중국이기 때문에 반중을 외치는 것이라면, 나는 그와 같은 신념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알고 지내는 중국 공무원, 지식인 모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 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 사건 자체가 자신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성격을 어찌 규정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보다는(물론 북한 또는 친북단체가 개입했을 수도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세월호 트라우마와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되어 폭발한 사건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했다고 알려진 《정관정요貞觀政要》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수능재주 역능복주
水能載舟 亦能覆舟

참고로 이 구절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중국 측 평가에서 자주 등장하는 글귀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전시작전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까지 배치된 나라에서 중국이 시민단체까지 포섭한 거대 정치 공작을 계획하는 것이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정치인 몇명을 포섭하는 수준이겠지, 톈안먼 사태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중국지도부가 시민 혁명이라는 방식으로 박근혜 탄핵을 계획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중국이 그렇게 대단한 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사드 사태 당시 중국에서 발표된 몇몇 글을 보면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 모두 미국의 음모로 보는 괴상한 주장도 있었다. 어쩌면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 방중 당시 만나지 않은 것은 사드 문제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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