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언제 한반도 통일이 될 수 있는지 묻는데,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자면 2030년대 이르러 통일의 기회가 한번 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통일 기회를 두 번(1992~1993년, 2016~2017년) 정도 놓쳤다. 우리가 놓친 두번의 기회는 모두 북한을 흡수 통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슬프게도 이제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2030년대 오는 기회는 거의 마지막일 것인데, 솔직히 우리 국민들이 이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2030년대에 오는 기회를 놓치면 적어도 지금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통일 한국을 경험하지 못하리라 본다.
여기서 나는 다섯 가지를 말하고 싶다.
① 중국이 GDP 1위를 차지하면서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를 선언할 때가 기회다(2028~2032년).
② 중국과 러시아는 미군이 제1도련선 안에 배치된 상황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기회가 되면 이를 바꾸려 할 것이다. 이를 잘 이용해야 한다.
③ 한국 중심의 흡수통일은 불가능하고 연방제 통일만이 가능하다.
④ 통일하려는 그때 미군 철수를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 그전까지 주한미군을 반드시 유지시켜야 한다.
⑤ 새로운 연방 헌법과 통합 의회의 구성에 대해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간 우리나라의 성격을 결정하던 지정학적 성격이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륙과 연결될 때,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새로운 경제적 도전과 새로운 국제 환경 속에서도 힘의 균형을 어찌 맞출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통일 이후 자주성과 균형감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해양국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국가 체계를 점진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 된 다음, 자주성을 보장받기 위해 경제적 기초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지금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통일되면 이 모든 것이 일상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열린 사회만이 통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 정치권의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언어적 한계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통일의 기회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부탁인데 통일에 관해서 고승, 명리학자, 무속인들의 말 좀 그만 믿었으면 좋겠다(심지어 요즘은 점성술사까지……). 이미 역사적 케이스가 우리에게 답을 제시하는데, 왜 역사로부터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점성술과 무속신앙에 의존한단 말인가? 만일 통일이 된다면 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또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통일될 것이며,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사람들은 “이것이 과연 통일인가”라며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통일이다.
만일 어찌 통일될 것인지 알고 싶다면 2012년부터 올해(202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면 대략적인 흐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파키스탄은 상하이 협력기구라는 틀을 이용해 미국을 배제하고 아프가니스탄 카르자이 행정부와 탈레반 두 세력의 협상을 이끌어 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정, 미군 철수 결정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의 통합 의회 참여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연합정부 수립과 개헌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어쩌면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국 외교부 관료와 전문가들 가운데 여전히 김대중 대통령의 연방제론 지지자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정부 수립을 이유로 미군 철수를 이루어 낼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본다. 이처럼 미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다자간에 정치적 통합을 위한 연대를 구축한 다음,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을 “아프가니스탄 모델”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아프가니스탄 모델”에 따른 한반도 통일은 중국이 GDP 1위가 된 직후, 한반도 전역을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편입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그나마 통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고 본다.
이 같은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중 충돌이 지금보다 더 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할수록 중국은 제1도련선에서 미국의 군사적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을 것이고, 제1도련선 안에 위치한 한반도의 정치적 통합을 추진함으로써 이와 같은 목적에 도달하려 할 것이다. 쉽게 말해 ①미∙중 양국의 충돌 강도와 ②한반도 연방제 통일 가능성은 정비례한다. 이 때문에 중국은 10년 동안 외부 문제에 강력하게 개입하기보다는(각국의 상이한 정치세력을 조율하는 것 이상의 개입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부 문제에 집중하면서 자신들의 기술 경쟁력을 키움과 동시에 자국내 산업체인 밀도를 높일 것이다. 이미 중국의 내수시장 규모는 미국을 뛰어넘은 상황이라 가까운 미래에 미∙중 양국 GDP의 골든 크로스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2028~2032년 사이 중국이 GDP 1위를 석권하는 순간, 베이징은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돌입함과 동시에 타이완 병합과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이때 우리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의 기조에 따라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는 연방제 통일을 추진할 경우, 통일 정부를 수립할 수도 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평화를 사랑하고 한국인들을 좋아해서 한반도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미국의 군사적 존재가 자신들에게 칼을 겨냥하는 작금의 상황이 싫을 뿐이고, 이를 바꾸려는 의지가 강할 뿐이다. 특히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분열과 민족 상쟁만을 불러왔다고 폄하하고 싶은 베이징 지도부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부정하려 할 것이다(과거 독일 통일이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이었던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과 러시아의 의지를 이용해 통일 정부 수립에 참여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https://m.21jingji.com/article/20210407/c3605462cd9dd8539fdf19a0dc6dd081_zaker.html
이 경우, 우리가 홍콩, 마카오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듯이 김정은 정권과 한국의 사실상 분단 상태는 유지될 것이다. 다만 남북 합의기구 설립과 연방 헌법 제정을 통해 연방 의회를 별도로 만들고, 이 의회에서 국방, 외교, 안보 문제만을 논의하고, 행정, 사법 등 영역은 여전히 남북한이 별도의 행정부를 두어 결정하는 통치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안위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통일 헌법은 개헌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이런 통일이 싫다면 거부해도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연방제 통일 거부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유라시아 경제권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유라시아 내륙을 관통하는 새로운 경제권은 만들어질 것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 세력은 이 새로운 경제체제에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에 대한 의리를 지키면서 해양세력에 남아있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인들이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륙 아시아 지역의 내해와 하천을 이용한 새로운 운송체계를 만들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물론 여기서 "장기적"이란 세기를 단위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쪽이 해양 무역권보다 파이가 클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진정한 교두보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통일을 이루는 쪽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당연하지만 현재와 같은 분단상태를 유지하고 해양국가로 남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해양국가로서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파이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종국적으로 우리나라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통일 문제를 바라볼 때 막연히 정치적인 의리와 이데올로기 대립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한반도 통일은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겠지만, 영토가 넓어지거나, 없던 땅이 생기거나, 중국이 분열되고 만주가 우리 땅이 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상한 소리를 듣고 나에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통일 이후 우리가 중국 제조업 체인과 내수시장에 강력하게 예속되는 것이 두렵다. 이 시나리오를 피하고 싶은데 (통일이 된다면)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진정한 교두보 국가가 되려면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해상 역량도 갖추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중국과 접경한 상태가 아니다 보니 설명해도 크게 와닿지 않겠지만, 중국 내수시장이 주변부의 노동력과 자원을 빨아들이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궁금하다면 베트남 북부와 중앙아시아, 몽골에 가서 직접 느껴보라). 우리나라의 해상 역량이 충분히 강하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될 경우, 우리도 베트남 북부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같이 중국 내수시장에 기형적으로 의존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통일 여부를 떠나 해상 물류 시장에서 우리의 파이를 10%대까지 늘리고(해당 영역에서 우리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4%대에 불과하다), 인도차이나와 말라카 해협까지 진출할 수 있는 독자적인 군사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이 통일이 돼도 중국에 기형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교두보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도 지금의 서울이 아닌 논산시 강경읍이나 밀양시 하남읍 등지로 옮기는 곳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중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해상 세력과의 접촉이 편리한 지역 어디든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양력은 통일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지금부터 서서히 준비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지금 우리는 대항해 시대 이전 빠른 속도를 자랑하던 유라시아 무역체계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로 향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물류는 점차 적재량보다는 속도를 중시할 것인데, 이런 물류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영국, 미국의 세계패권을 가능케 했던 해양 우세는 점차 중∙러 양국이 추진하는 육상 물류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분명 해상 세력의 영향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륙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도 약해지고 있다. 왜냐면 미∙중의 충돌은 단순히 패권경쟁이 아닌 향후 500년, 어쩌면 천년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경제적 헤게모니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헤게모니 경쟁의 결말에 대해 매킨더는 이미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누군가 동유럽을 지배하면, 그는 “심장지대”를 지배할 수 있다.
누군가 “심장지대”를 지배하면, 그는 “세계섬”을 지배할 수 있다.
누군가 “세계섬”을 지배하면, 그는 전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 흐름 속에서 경제가 성장할수록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서구권의 금과옥조도 도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변수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한 내륙 아시아권의 특성상, 권위주의 체제는 자신들의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 유라시아 대륙에 새롭게 출현할 권위주의적 지배자들은 경제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신, 다자주의에 입각한 국가 간 협력을 통해 외부 변수를 통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통제된 언론을 통해 민주주의가 가져다주는 정치적 혼란과 민족분쟁을 부각시킬 것이고, 중국과 내륙 아시아 주민들은 민주주의는 곧 국가적 카오스라는 공식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지정학적 대립구도가 부각될수록 내륙 아시아와 해양 세력은 전혀 다른 정치제도와 사회의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우리로 하여금 팍스 아메리카나 시절(1991~2020)에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나는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어쩌면 영영 해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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