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말하는 중화제국이란 ①명나라 홍무제가 과거 원나라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토대로 확정된 영토(위 지도를 참조하라)를 기반으로 ②통치 이데올로기(한당 이래 경학經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일수도 있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일수도 있다)에 대한 합의를 받아들이는 한인漢人과 이민족을 구성원으로 하며, ③구성원 간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국체제를 뜻한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내가 생각하는 제국체제의 흥망성쇠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겠다.
당나라 이후, 중화의 개념은 민족을 뛰어넘는 포괄적 지역 개념으로 자리잡는다(대체로 전성기 당나라의 영역에 들어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은 스스로 중화의 후예를 자처했다). 제국 내부의 종교, 인종, 지역적 요소는 모두 유학儒學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는 이념적 연대에 가려지게 되며, 이념적 화신인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자들만 남게 된다. 제국은 종교적 억압을 실행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데올로기적 통일성만을 추구하며, 이 때문에 제국 내부의 구성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종교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종교적 자유는 어디까지나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합의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통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제국의 탄압은 비인도적이며 반인권적인 것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제국은 분열된 지방정권들을 군사적인 힘으로 통합하는 왕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새로운 왕조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며, 기존의 분열된 학술적 견해를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통일한다. 그러나 지방이 상대적인 열세로 중앙정부의 통치를 받아들일 뿐, 이들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중앙정부는 어쩔 수 없이 지방 세력과 정치적 타협을 이룬다. 대체로 중앙정부는 지방에 반半독립적인 왕국의 건설을 허용하거나, 과도한 징세 부담을 지우지 않음으로써 민간자본이 빠르게 누적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조성한다. 민간 차원의 자본 집중화는 계속되고, 이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가 높은 몇몇 지역에 위치한 지방 행정구역의 민간자본은 점차 자본을 축적한다. 그리고 이들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중앙정부에 반하는 정치세력이 되어 중앙정부에 반하는 정치적 움직임을 보인다. 중앙정부는 이와 같은 반란을 제압한 다음, 민간 차원의 자본 유동성을 제어하고, 자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며, 민간 자본을 합법적 수단으로 탈취하기에 이른다.
비록 정부의 민간자본 수탈은 계속되지만 이로 인해 제국은 외부로 팽창할 수 있는 막대한 자본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자본의 힘을 이용해 제국은 자신의 정치적 적대세력과 싸우고, 이들이 만든 세계질서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시대를 막론하고) 제국의 전성기에는 일관된 정책적 흐름이 발견되는데, ① 제국은 민간 차원의 자본을 수탈함과 동시에 사회적 통제력을 강화하지만, ②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기득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공동이익에 기반한 거대자본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국은 이렇게 확보한 거대 자본의 힘을 빌려 중화질서를 구현하려 한다(지금 우리는 이 단계로 들어서는 문턱 위에 서있다).
민간자본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통해 확보한 자본을 기반으로 중화제국은 자신들에 반하는 정치세력 또는 국가와의 대결 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대체로 제국 질서를 거부하는 주변부 정치세력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데, 중화제국이 팽창하는 중에는 결코 이들과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지 말아야 한다. 중화제국은 자신들이 확보한 자본의 힘을 믿고 적대세력과의 군비경쟁에 들어갈 것이며, 대규모 병력을 조직해 자신에 반하는 주변부 세력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철저히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런 중화제국의 적대 세력에 대한 파괴 행위는 하나의 국가, 내지는 문명의 파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같이 멸망한 나라 또는 문명체를 살펴보면 중국과의 현실적인 국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명분론 때문에 중화제국과의 대립을 지속하다가 패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우리나라 역사에도 고구려, 백제라는 좋은 예가 있다). 적어도 역사를 살펴보면 전성기로 넘어가는 중화제국과의 적대적 관계는 가장 위험한 정치적 도박이다.
물론 제국이 언제까지나 팽창 국면을 유지할 수는 없다. 만일 제국 엘리트 계층이 민간 자본이 제국체제를 불신하는 상황에도 민간 자본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통한 수탈 행위를 지속하면 반드시 민중 봉기 또는 군사적 반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제국의 전성기 후반부에 일어나는 이 같은 반정부 운동은 대체로 진압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혁명을 진압한 중앙정부는 자신들이 더 이상 민간 자본을 빼앗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제국은 자신들의 대외 팽창을 멈추고 휴식기에 들어가는데, 제국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민간 자본은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특히나 새로운 산업 혁명과 결부될 경우, 중앙정부와는 별다른 경제적 이익으로 묶이지 않은 새로운 자본 세력이 지방에서 등장하는데, 이들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 관료∙유지와의 경제적 결탁을 통해 내수시장과 유통망을 장악하고 점차 새로운 독자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무엇보다 중앙정부가 대체로 특정 영역의 자본을 독점하는 형태로 자신과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자본 세력을 확보하기 때문에 이들은 항상 정부가 독점하지 않는 영역에서 자본을 축적한다.
문제는 전성기를 지난 중화제국은 점차 막대한 재정 지출로 인한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전란으로 인한 남성 생산인구 감소와 전답 감소, 세수 감소 등 악재는 중앙정부의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되고, 중앙정부는 자신들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지방정부와 민간 자본에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국의 유통 역량은 점차 지방 행정거점에 집중되며, 지역 유지들과 결탁한 지방관은 자신에게 집중된 이런 정치적 역량을 통해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민간자본은 지방의 관료집단과 결탁하여 점차 독립적인 군벌이나 지방정부로 변모하게 된다. 사실상 중앙정부의 세수 감소는 지방정부의 독자적 정치행위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다. 제국은 이런 지방관들을 억누르기 위해 방대한 감찰 조직과 군사기구를 두어 이들의 행동을 감시하지만, 결국에는 이와 같은 방대한 조직을 운영할 자금이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며, 자신들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거대 자본에게 통치 자금을 빌리게 된다. 대체로 이때 중앙정부의 자금줄이 되어주는 자본 세력은 제국 중앙정부의 몰락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국의 엘리트 집단은 화폐 개혁과 세제 개혁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세원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와 같은 경제 개혁이 성공할 경우, 제국은 제2의 전성기, 또는 중흥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대체로 이런 정치, 경제 개혁은 일시적일 뿐, 이미 비대해진 지방의 거대자본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이들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무엇보다 개혁이 실패할 경우, 중앙정부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지방은 중화제국의 일원이라는 공동체 의식만을 유지한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난다. 이어지는 제국의 해체 단계에서 중화제국의 일원이라는 모호한 의식만을 가진 지방 군벌 또는 지방 세력들이 중원의 지배권을 놓고 내전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조직이 잘되고 군사적 역량이 뛰어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제국은 다시금 통일되게 되며, 새로운 제국의 지배층은 전국적인 유통망 장악과 정보 독점을 통해 다시금 제국을 통치하기에 이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이 내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제국의 일원이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 있다는 점이다. 일정한 영역 내부(대체로 명 태조가 영유권을 주장한 원나라 쿠빌라이 일가의 지배영역)에 있는 이들은 제국의 구성원으로 사는 것에 익숙하고, 제국체제 외에 다른 선택지에 대해 고려해본 적이 없다. 물론 제국이 분열되는 가운데 제국체제에 융합하지 못한 이질적인 집단이 독립을 추구하지만, 이런 독립운동은 대체로 제국이 만들어 놓은 정교한 이민족 통치체제에 의해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국은 주변부 세계의 종교와 인종 차별로 인해 발생한 틈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들의 지정학적 통치를 확립해 나가며, 지역 내 다수 대 소수의 대립 구도에서 소수자들을 규합해 다수가 되는 방식으로 제국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인종 집단을 통제했다. 따라서 제국의 통치는 단순히 인종적 문제를 넘어 인종 내부의 지역적, 종교적 대립까지 살펴봐야 하며, (지금 미국 정부에서 하는 것과 같이) 이를 단순히 인종 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씌우게 될 경우, 제국이 자신들의 이민족 통치를 위해 구축한 통치체제는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출현함으로써 강화되고, 제국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인종 집단의 인권 상황이 열악해지는 결과만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근대식 중화제국이 전성기로 진입하려는 문턱 앞에 서있다. 아마도 중화제국은 자신들의 힘이 일정 수준 이상 넘어가면(GDP 1위가 되면) 우리에게 새로운 국제질서를 강요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들과 끝나지 않을 전쟁을 치룰지도 모른다. 실상 전쟁을 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이들을 군사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팽창기가 지나고 완숙기로 들어갈 때까지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 중국이 더 이상의 팽창이 불가능한 단계로 넘어갈 때, 우리는 이들과 정치 경제적 이익을 함께하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중국을 자극하는 어떤 정치적 행위도 삼가 해야 한다.
원하기로는 우리나라가 과거 신라, 조선 시대와 같이 이번에도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기기를 기도할 뿐이다. 올해부터 2050년까지 중국은 자신들의 또 다른 전성기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30년이라는 시간을 반드시 잘 넘겨야 한다. 약간 과장 섞어서 말하자면 민족의 운명이 이 30년 동안 중국과의 관계를 어찌 처리하는지에 달려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도 신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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