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애국의 계보: 샤오펀홍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계연춘추 2021. 4. 27. 20:53

최근 중국에서 심상치 않은 극좌파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 현상은 주로 1992-1998년(56.2%) 사이 태어난 여성(57.9%)들에게서 집중적으로 보이는데, 언론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샤오펀홍이라 한다. 그런데 샤오펀홍에 대한 국내 중국 연구자들의 논문을 보면 이 같은 사회적 현상의 형성 원인을 막연히 프로파간다와 애국주의 교육에 귀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구는 그간 중국에서 일어난 사회 현상과 샤오펀홍 집단 형성 간의 관계성을 무시한 학문적 태만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필자는 샤오펀홍이 형성된 경제적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런민왕 2016년 12월 30일자 기사(샤오펀홍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면 샤오펀홍의 분포 특징에 관한 재미있는 수치가 있는데, 아래와 같다.


이 수치가 재미있는 까닭은 샤오펀홍이 주로 2선, 4선 도시에 집중 분포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런 분포를 보이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중국의 도시개발 역사를 잠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1선, 2선, 3선과 같은 중국의 도시 분류 역사는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련과의 외교적 마찰로 인해 소련 핵우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던 마오는 대삼선 전략을 구사하기에 이르는데, 여기서 대삼선이란 전 국토를 전방(연안지대), 중방(동부 평야지대), 후방(내륙지대)으로 나누고, 제국주의와의 전쟁 시 후방의 역할을 하도록 3선 지역을 개발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3선 개발 계획에 따라 스촨분지, 티베트 동부 지역을 거대 중공업 단지로 바꾸었으며, 이와 함께 청두-충칭 일대 도시화 또한 빠르게 진척을 이루었다. 마오 이후, 덩샤오핑 시대와 장쩌민 재임 시절에는 1선 도시들의 성장에 매진하다 보니, 국토 종합개발에 비교적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보시라이의 충칭모델과 함께 충칭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의 내륙지대인 충칭-청두 지역의 도시화 또한 빠른 진척을 이룰 수 있었다. 문제는 ①기존의 1선에 위치한 4개 대도시(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와 ②충칭-청두 일대를 제외하면, 대다수 중국 도시들의 인프라 상황은 열악했으며, 몇몇 행정중심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서부 대개발로 인해 성장한 시안, 우루무치, 란저우, 시닝, 구이양 등 서부지역 중형도시), 농촌 인구는 여전히 기존 대도시 지역으로만 유입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진핑 지도부는 2선 도시 개발을 지시하며, 중국 전국의 도시 개발을 통해 ①기존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량을 줄이고, ②건설경기를 일으켜 중국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려 했다. 2014년 10월 29일, 국무원은 《도시규모기획 표준 조정안에 대한 통지》를 통해 중국 도시를 5개(特大城市∙超大城市∙大城市∙中等城市∙小城市)로 나누고, 이에 해당하는 도시 규격을 높여버렸다. 이제 중국 지방정부들은 바뀐 도시 규격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기존 도시 설비를 대대적으로 개축하거나, 수십만의 인구가 살 수 있는 주거지와 인프라를 확충해야만 했다. 심지어 몇몇 지방도시들은 기존 도시 옆에 거대 신도시를 지어 주민들에게 싼값에 나누어 줬는데, 이런 대규모 아파트 공급으로 인해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한동안 보합세 또는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시진핑 지도부의 도시화 정책이 불러온 대규모 건설경기는 중국 기업 부채와 지방 부동산 가격 하락(일부 지역은 수요보다 많이 공급된 상황)의 요인이 됐지만, 이런 건설경기로 인해 중국의 도시 인프라 상황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국 지방 대도시에 거주하던 이들은 도시화 정책으로 인해 큰 수혜를 봤는데, 중국정부발發 건설경기로 인해 개선된 도시 거주환경에 그들은 크게 만족했으며, 기존에 비해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고 체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시진핑, 나아가 중국공산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런 충성의 이면에는 도시화 정책으로 인해 그들이 실제 경제적인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도시화 정책은 민간의 도시 평가기준 변화까지 불러왔다. 비록 60년대 때 마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대삼선 기획법은 오랜 시간 중국에서 변하지 않는 통념처럼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시진핑 지도부의 도시화 정책 이후, 이와 같은 국토 분류법은 민간 연구단체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2013년, 《제일재경주간第一經濟周刊》에서는 “신일선 도시”라는 개념을 만든 이래, 매년 《중국도시 상업매력지수》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은 기존의 1선 도시를 단순히 동해안 지대에 위치한 4개 대도시에서 중국에서 가장 상업매력이 있는 도시로 정의한 다음, 도시기능, 생활방식, 시민활동 등에 따라 중국 도시를 1선∙2선∙3선∙4선∙5선으로 나누었다. 이런 분류법은 당연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 부동산 가격을 잘 반영한다는 점에 있어 점차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샤오펀홍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나오는 도시 분류법은 이 《제일재경주간》에 나오는 분류법을 따르고 있다).

그럼 샤오펀홍이 다수인 2선 도시와 4선 도시의 특징은 무엇일까? 2선 도시의 경우, 대체로 중국 정부에서 대도시 규격을 수정하는 바람에 대대적 인프라 확충 사업을 진행한 지방도시들이 많다. 특히나 중국정부에서 대도시와 소도시의 하위 분류로 Ⅰ급 도시, Ⅱ급 도시를 나누고, 도시의 등급에 따라 주어지는 혜택을 달리하는 정책을 실행하자, 지방 대도시(대체로 2선 도시에 해당)와 소도시(대체로 4선 도시에 해당)는 중앙정부에서 새로이 정한 도시 규격에 맞추기 위해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 공사를 진행했다. 이런 도시 인프라 건설은 2선 도시와 4선 도시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국의 성장”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나아가 중국공산당의 프로파간다(중국공산당의 지도 아래 인민의 생활이 풍요로워진다)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이와 달리 중형도시에 해당하는 3선 도시는 이와 같은 대규모 건설경기의 혜택을 크게 보지 못했는데, 이는 당의 도시화 정책이 주로 2선 도시와 4선 도시 개발에 집중되다 보니, 중형도시에 대한 관련 규정은 과거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었고, 당연 대규모 건설경기도 중형동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3선 도시 주민들은 당의 정책에 무관심하거나 프로파간다에 딱히 호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도시 개발 열기 속에서 2선 도시, 4선 도시에 사는 젊은 여성들은 점차 당의 프로파간다에 자발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도시화 정책으로 인한 건설경기가 한창일 당시, 나는 몇몇 중국 지방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여해 현지 여성들과 만나 대화를 했는데, 그들은 원래 자신들이 베이징, 상하이, 또는 인근에 위치한 대도시에 가야만 볼 수 있던 도시 인프라와 주거시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도 생겼다는 사실에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고, 자신들의 삶이 더 좋아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때는 이런 믿음이 당의 프로파간다와 만나 새로운 유형의 좌파를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새로운 좌파 집단과 비교할 만한 집단이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의 영남 우파다. 비록 나라는 다르지만 양자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많은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영남 우파와 샤오펀홍 모두 국가 주도 하의 산업계발의 혜택을 입었으며, 이를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다. 영남 우파는 박정희가 주도했던 산업화 정책으로 인한 영남 지역의 발전을 직접 목격했으며, 샤오펀홍은 시진핑 지도부 주도 하의 도시화 정책으로 자신들이 실제로 부유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런 개발 과정에서 정부 측의 프로파간다 작업이 있던 것도 양측 모두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영남 우파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주입 받았으며, 샤오펀홍은 중국공산당만이 중국의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이들이 정치 세력화한 과정까지 비슷하다. 이들은 자신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준 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자 자발적으로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정부 인사에 대한 샤오펀홍의 인터넷 여론 공격이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영남권 출신들의 과한 반대 시위는 양상과 국가가 다를 뿐, 본질적으로 국가 주도 사업과 정부 프로파간다 작업이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에 불과하다.

아울러 영남 우파의 정치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샤오펀홍의 미래를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들은 수십년이 지나도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중국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세뇌되었다면 정권이 바뀐 다음 이들의 정치성향도 변할 수 있겠지만, 시진핑 지도부의 도시화 정책이 실제로 이들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었음을 생각하면 나는 이들이 중국공산당에 대한 강성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도시화 정책으로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푼돈 몇 푼이 아니라, 실제로 (원래 거점도시에서나 볼 수 있던) 아파트 한 채가 생긴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시가보다 싼 가격으로 양질의 아파트를 공급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우리 모두 민주당 지지자가 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2013~2017년, 중국 2선 도시와 4선 도시 주민들에게 이는 꿈이 아닌 실제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런 경제적 이익을 매개로 형성된 지지층이 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드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이들은 중국공산당에 반하는 국가∙단체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당의 호소 없이도 과한 모션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국내 중국전문가들이 이런 변화를 단순히 프로파간다의 결과물로만 이해하고, 중국정부 정책이 이들의 삶을 어찌 변화시켰으며, 이들이 왜 중국공산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지에 대한 경제적 요인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나치게 경시했으며, 중국인들은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당에서 선전만 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을 뿐, 이들의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관심했다. 또한 사드 사태 당시 우리 언론의 자극적이고 편파적인 기사만을 본 우리 국민들은 이런 시위를 모두 중국 관변 시위라 생각하기에 이르렀으며(막상 중국 공안은 시위 주모자들에게 경고를 주거나 심한 경우 처벌했다), 이들을 “중국공산당에게 강하게 세뇌 받았기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강한 프로파간다 전술이라 해도 정부 차원에서 지지층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슐라의 코르넬리우스 일당 이래, 마오의 홍위병과 영남 우파에 이르기까지 극단적 정치 세력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대체로 이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준 정치 지도자에게 충성하며,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무법 집단으로 돌변하였다. 슐라는 이들에게 신분의 자유를 주었고, 마오는 토지를, 그리고 박정희는 산업공단을 이들에게 주어 자신에게 충성하는 과격한 정치세력을 만든 것과 같이 시진핑의 도시화 정책도 결국 또 하나의 경제적 이익을 매개로 하는 극단주의적 좌파 지지층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막연히 정부 프로파간다 차원에서만 샤오펀홍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극단적 지지층이 형성된 사회∙경제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왜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을 포함시키지 않았는지 물어볼 것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의 형성이 홍위병, 영남 우파, 샤오펀홍과는 또 다르다고 본다. 분명 극단적인 정치적 행위를 일삼는다는 점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 강성 지지층도 비슷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경제적 이익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지지층을 홍위병으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홍위병은 마오에게서 농지라도 얻었는데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은 무엇을 얻었는가? 사회적 정의? 변동성 낮은 부동산 시장?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층은 이들과는 형성 과정이 다른 것 같다.

야당 시절, 민주당은 구조적 차별을 부각시켰으며, 자신들이 이 같은 구조적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당임을 알리고자 복지, 신도시 개발, 소수자 차별 금지 등 여러가지 진보적인 아젠다를 들고 나왔다. 이런 아젠다는 계층간 유동성이 높은 사회에서는 지지를 얻을 수 없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진 한국 사회에서는 예상 외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민주당이 집권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제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으며, 《나는 꼼수다》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의 프로파간다 작업은 많은 지지층을 광장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삶이 지금보다는 나아지는 수단으로 민주당에 투표했다. 즉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은 아무런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막연히 진보 진영의 프로파간다(사회 구조적 불평등 해소)만을 믿고 이들을 지지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군중 집단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싶다.

Ⅰ형 군중: 독재자가 주도한 정치 개혁, 경제 개발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이 독재자에 대한 자발적 지지를 보냄(ex. 코르넬리우스 일당, 홍위병, 영남 우파, 샤오펀홍).

Ⅱ형 군중: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프로파간다를 받아들이고 이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지지를 보냄 (ex.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파 지지층,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

Ⅰ형 군중의 경우, 주로 개발독재에 의해 국가경제가 성장할 때 나타나지만, Ⅱ형 군중의 경우, 국가경제 몰락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대중이 체감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질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런데 Ⅰ형 군중의 형성과정을 경험해보지 못한 국내 언론과 지식인들은 샤오펀홍을 Ⅱ형 군중과 같은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며, 중국 사회 현상에 대해 잘못된 진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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