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문제를 논할 때,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우리가 핵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통해 북한을 일시에 초토화할만한 전력을 갖출 수 있으며, 현재 우리 몸집에 비추어 볼 때 거대한 재래식 전력을 감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은 이와 같은 생각은 전혀 새롭지 않다. 소련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대해진 소련의 재래식 전력을 감축하고 싶어했으며, 이 때문에 주코프를 해임하고 차르 봄바로 대표되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다. 무엇보다 흐루쇼프는 소련이 미국의 압도적인 제공망을 뚫을 수 없다 생각했기에,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힘을 다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흐루쇼프의 구상은 소련 군부의 반발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재래식 군비의 감축과 대량살상무기가 불러올 전쟁의 소멸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고도화는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생과 사의 선택지만을 남겨두고, 다른 선택지를 모두 제외시켜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국에서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 소련의 거대한 재래식 전력이 프랑스와 서독 침공 시 이를 방어할 현실적 수단이 없던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는 폰 노이만이 제창한 상호확증파괴에 기초한 대량보복전략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미국 본토 또는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의 전력 폭격기가 모든 공산권 국가에 핵공격을 감행한다는 이 전략은 당시 많은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중 가장 유명한 이가 다름아닌 헨리 키신저다. 그러나 대량보복전략의 유혹은 여전히 계속되었으며, 미국과 소련 모두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 잠수함 개발에 열을 올렸다.
물론 상술한 전략적 구상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하겠지만 키신저와 소련 군부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적어도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재래식 전력과는 달리 폰 노이만의 상호확증파괴 전략은 생존과 공멸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남겨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대량보복전략은 재래식 무기를 개발할 역량이 없던 사회주의 국가-그중에서도 중국 마오쩌둥의 눈길을 끌었다. 중국의 폰 노이만이라는 별명을 얻은 쳰쉐썬이 이끄는 중국 학자들은 마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만들었다. 이 당시 마오의 안보 전략은 전적으로 옳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덩샤오핑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재래식 전력 문제가 제기됐으며, 이는 베트남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의 패배로 중국 지도층을 이목을 끌었다. 당시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군이 버리고 간 무기를 운용했던 베트남 인민군에게 인민해방군은 화력 면에서 밀렸을 뿐만 아니라, 문화대혁명 당시 유능한 군 지휘관들도 정치적인 파장으로 실각했거나 사망한 상황인지라 전술적 우위까지 넘겨주고 말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자국의 무력을 과시하는 군사훈련을 감행한다. 1981년 9월에 열린 화베이 대 군사훈련에서 중국은 총 11만 대군, 전투기 285대, 전차 1300대, 군용차량 1만 대를 동원해 군사 훈련을 했다. 물론 이 군사훈련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아직 베트남 국경 지대에서 인민해방군과 베트남 인민군 간의 전투가 간혈적으로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승기를 잡은 베트남 인민군이 여세를 몰아 중국-베트남 국경을 넘어 주장 삼각주를 위협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기에, 이런 군사훈련 자체가 베트남 인민군과 소련 연방군에게 자국의 방어력을 과시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물론 중국 수뇌부가 우려한 상황까지 전쟁이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수뇌부는 전략 핵무기만으로 전쟁의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나마 시대를 읽는 안목을 가진 덩샤오핑은 100만 감군 정책, 편제 개편 등을 통해 군 현대화를 진행했다. 이와 같은 군 현대화는 3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① 군 병력 감축, ② 재래식 무기 자체 개발, ③ 전술 핵무기 개발, ④ 군 지휘 체계와 편제 개편, ⑤ 현대화된 해군 건설 등 5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다름 아닌 전술 핵무기 개발인데, 이전에 중국은 전략 핵무기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 전술 핵무기가 없었다. 그러나 전략 핵무기가 전장에서의 승리를 가지고 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덩샤오핑은 베트남과의 국지전이 끝나갈 무렵, 전술 핵무기 개발을 지시했으며, 1985년 중국 최초의 전술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로 군사적인 안목이 없던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에 중국은 여전히 덩샤오핑 노선을 따라 군을 개혁했다. 당연히 전략 핵무기 개발은 정체되거나 큰 발전이 없었으며, 핵무기 개발은 대체로 전술 핵무기 개발에 멈추어 있었다. 어찌 보면 이는 중국이 미국 주도 하의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되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말라카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국의 공군, 해군 전력이 미국으로 하여금 경계하는 수준에 이르는 일이 없도록 노력했고, 군 내부의 호전적인 여론을 정치적인 힘으로 짓누르는 일이 빈번했다. 이 때문에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 중국은 전략 폭격기, 핵 잠수함 개발은 큰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이같은 덩샤오핑 노선을 바꾼 것은 다름 아닌 시진핑이었다. 시진핑은 30만 감군 정책을 공포함과 동시에 로켓군을 창설했다. 이 로켓군의 창설은 여러가지를 시사했는데,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전략 핵 투발 수단의 고도화에 중점을 두었다. 이미 2015년 전승기념 열병식에서 중국은 DF-5B와 같은 새로운 전략 핵무기를 선보였으며, 이는 당연히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와 함께 중국은 노후화된 전략 폭격기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국은 전략폭격기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의 작전반경은 최대 600km에 불과해 전략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시진핑 정부는 기존의 전술폭격기의 기능을 대폭 개선했으며, H-6K과 같이 전략 기능을 일부 수행할 수 있는 전술폭격기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시진핑 정부의 군사적 노선은 전략 핵 투발 수단을 고도화하여 중국이 러시아, 미국과 같이 전세계적인 패권국가로 성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소련 흐루쇼프의 군사 노선으로 회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예상한 바와 같이 중국과 미국, 러시아의 군사 기술 격차는 너무도 컸으며, 무엇보다 전략 무기는 자국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있어도 전쟁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기에, 덩샤오핑 이래 중국은 재래식 무기와 전술 핵 개발에 열중했던 것이다. 즉 중국이 동아시아의 강대국이 되고자 한다면 전략 무기 개발이 아닌 재래식 무기 개발에 힘써야 하며, 재래식 무기의 성능으로 보자면 중국은 아직 미국과 러시아에 대적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사실상 중국의 군사 기술은 90년대 미국과 러시아 기술 수준에서 조금 발전하거나 못 미치는 상황이며, 무엇보다 투하체프스키 종심작전 이론에 따라 기동전을 수행할 기계화 전력 면에서 주변국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례로 3세대 전차의 수를 생각해 보자면, 중국은 600여대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천여대를 넘게 보유하고 있다.
표1: 중국 군사전략의 변화
달리 말해 지금 중국의 재래식 전력으로는 한국과 베트남과 같은 국가와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고) 싸운다 한들, 완전한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상징적이고 전략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무기 개발에 계속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군조차 단순히 무역로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기존의 구축함과 호위함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고, 하다못해 순양함이라도 개발하면 될 것인데, 왜 항공모함을 건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혹자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승리하기 위해 항공모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중국 전투기들의 작전 반경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전면전이 아닌 이상, 기존 전투기들의 성능 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항공모함이 필요한 경우는 ① 이란을 지원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까지 해군을 파견한다든가, ② 또는 싱가포르에서 미 해군과 전투를 벌여 해상 봉쇄를 풀어버린다든가, ③ 아니면 미국 본토와 파나마 운하를 공격하는 정도인데, 3가지 시나리오 모두 중국의 자위권 차원을 넘어선 군사적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본토 안보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무기 체계를 중국이 운영한다는데, 미국이 어찌 반길 수 있겠는가? 냉전 시대 소련조차 시도하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이와 같은 흐루쇼프類 군사전략은 전략 무기의 고도화와 함께 상호 간의 공포로 인한 억제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중국의 이와 같은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해 신 냉전이라는 또 다른 세계 분열을 키워드로 들고 나왔다. 트럼프의 행동이 과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분명 선을 먼저 넘은 쪽은 미국이 아닌 중국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재래식 전력을 포기하고 상호확증파괴 전략에 입각한 미사일 개발에 힘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내 생각이지만 일단 미국이 나서서 우리의 이와 같은 움직임을 제재할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대량살상무기가 고도화될수록 인류는 생존 또는 공멸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게 된다. 이것을 어찌 바람직하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또한 전쟁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고도의 정치화된 행위이며, 이와 같은 정치적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 우리의 국력과 인구, 총생산성 등 요소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이와 같은 국가의 총체적 역량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군사력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우리의 총체적 역량이 허락하는 범위 밖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사력이 이용되거나, 단순히 군사적 목적을 위해 국가 역량을 군사 개발에 사용한다면 이 어찌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또한 전략핵 투발 수단은 개발 비용뿐만 아니라, 유지 비용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요된다. 고로 단순히 북한의 핵무기를 제어하기 위해 우리가 대량살상무기를 운영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한 지역은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교차되는 지역이기에, 선택지가 공존과 파멸뿐인 전략 핵무기로는 우리의 이익을 관철할 수 없다. 차라리 고도화되고 현대화된 군 병력을 양성해 일시에 북한의 주요 지역을 점거하고,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북한 분할하거나 연방제 통일을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탄성 있는 정치적 선택이 가능한 군사적 옵션을 다양하게 마련해야만 하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전략 핵무기 개발보다는 차라리 북한의 주요 지역을 점령할 수 있는 현대화된 군사력 양성과 재래식 무기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다.
註 2020년 5월 31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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