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에 일어난 중국과 인도의 충돌은 점차 강성해지는 인도와 이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중국 지도부의 조급함에서 비롯되었다. 2017년, 인도정부는 자국 영내에 임시정부를 차린 티베트 망명정부의 무장화를 암암리에 도왔으며, 2019년부터 시작된 인도 측의 라다크 지역 도로 건설은 인도 기갑사단이 파키스탄과 중국 접경지대까지 빠르게 집결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인도군이 점차 강력해지면서 중국군이 설정한 실제공제선을 넘어 고그라 온천, 판공호 북쪽에 초소를 세우는 등 예전과는 다른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하자, 중국 정부는 인도와의 협정을 통해 양국 간의 무력 충돌을 최소화하고, 인도군이 “실제공제선” 너머 설치한 고그라 온천 초소 등을 묵인했다. 그러나 중국의 양보는 인도의 오판을 불렀으며, 중국군 “실제공제선” 너머에 있는 고그라 온천 초소에서 레를 연결하는 도로 건설(지도1의 노랑색 점선)을 계획했다. 결국 이는 중국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시험하는 결과를 불러왔으며, 이들은 점차 자국의 “실질공제선” 안쪽에 배치된 인도군을 몰아내려는 구상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5월 5일, 판공호 북쪽 “네번째 손가락” 지역에서 중국군과 인도군이 최초로 충돌했다. 이 당시 중국군과 인도군은 서로에게 주먹질하고 돌을 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이어갔으며,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인도 정부에서는 육군 참모총장을 라다크 지역에 파견해 시찰하도록 했다(23일). 시찰 직후(25일), 인도 정부는 중국이 판공호 지역에 80~100개의 막사를 지어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당시 중국군은 자국이 설정한 “실질공제선”의 경계에 해당하는 “네번째 손가락” 초소 일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했음이 위성 사진을 통해 확인되었다. 〈힌두스탄 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판공호 지역에 5천명에 달하는 병력을 증강했다.
5월 18일, 중국군이 길완계곡에서 인도 방면으로 계속 진군하자 인도군은 초소를 세우고 중국군과 대치했다. 당시 중국군은 쇼크강과 길완강이 합류하는 지점까지 진격한 다음, 이 지점에 초소를 세웠다 한다. 이 지역은 중국군 스스로 설정한 “실질공제선”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중국군이 “월경”해 군사시설을 건설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5월 27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분쟁 중재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5월 30일, 중국군은 헬기로 건축 자재를 나르면서 길완강과 쇼크강 합류지점에 군사거점을 건설했다.
5월 31일, 중국군과 인도군이 판공호 지역에서 충돌했다. 이 지역의 영유권은 예로부터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였다. 인도 정부는 판공호 북쪽 “8번째 손가락”까지 자국 영토라 주장했는데, 올해 중국 해방군이 인도군이 “2번째 손가락” 동쪽으로 진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과정에서 해방군 통역관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으며, 중국군은 인도군에게 보복 공격을 가해 인도군 72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이 당시 충돌 국면은 인도군에게 유리했으며, 해방군이 상대적으로 열세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후 인도군이 중국측에 요구한 내용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중국군이 인도군 초소를 일부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 지대에서 인도군을 몰아낸 것으로 보인다.
6월 9일, 인도군은 중국군에 아래와 같은 요구를 했다.
① 양측 모두 판공호에서 철군하기로 한다(중국 실질 국경선과 “네번째 손가락手指4 ”초소 사이의 중국군 철수 요구).
② 길완계곡과 고그라 온천 지역(空喀山口)의 4~5군데 대치 지역에서 철군한다.
③ 중국은 인도군이 고그라 온천 초소와 라다크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 건설을 방해하지 않는다.
④ 양군 후방에 배치된 병력을 질서 있게 후퇴시킨다.
6월 15일, 길완계곡에서 인도군과 중국군 병력 600명이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어 16일, 양국 국경수비대의 대치 국면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까지 발전했다. 인도군은 3명이 숨졌으나 중국군 사상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6월 17일, (마오주의자들이 장악한 직후 친중 성향이 강해진) 네팔 정부는 인도와의 분쟁지역 13개 지역이 포함된 새로운 지도를 국회에서 다수결로 통과한 다음, 새벽에 인도 국경 수비대를 기습해 이 지역들을 점거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파키스탄 또한 인도 방면에 공세를 가해 인도는 중국과 파키스탄, 네팔의 공격을 동시에 받았다. 이때 인도는 사실상 친중 국가인 파키스탄, 네팔, 그리고 작년 선거로 친중파가 다시 집권한 스리랑카에게 포위당한 형국이었다.
6월 22일, 인도 모디 총리가 푸틴을 예방해 도움을 요청했으며, 미그-29 21대, 수호이-30 MKI를 12대를 구입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인도에게 S-400까지 수출할 것을 약속했다. 이처럼 인도는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이용해 중국의 대인도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며, 이와 같은 외교적 노력은 효과적이었다.
6월 28일, 인도군은 6월 9일 중국측에 요구한 협상안을 다시 제시했다. 《힌두스탄 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변경 지역에 집결한 인도군 병력은 14군 5만 7천명, 15군 2만 명 등 도합 12만 대군을 집결시켰다.
7월 6~8일, 중국과 인도 양국간의 협정에 따라 중국군은 일단 길완계곡에서 1.5km 후퇴했으며, 길완계곡과 쇼크강 합류지점에 건설했던 군사시설을 철거했다. 판공호 분쟁지대에 주둔하던 중국군 또한 이때 자신들이 점거한 지역에서 철수했다.
7월 22일, 러시아와 인도가 매년 진행하는 인드라 군사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 군 3천명에 인도에 파견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문 기사는 “러시아가 인도를 돕기 위해 3천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고 잘못 알려져 중국인들에게 큰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7월 28일, 인도 군부는 중국에게 판공호 북쪽의 분쟁지대에 배치한 병력을 줄일 것, 고그라 온천지역에서 철수할 것, 군사적 집결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로 보아 중국은 여전히 판공호 북쪽의 “네번째 손가락”과 고그라 온천지역 등 자신들이 설정한 실제 공제선에서 철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8월 9일, 인도 군부는 또 다시 중국 측에 중간 지대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와 같은 요구사항을 중국 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시, 겨울 공세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놨다.
8월 말,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열렸다. 당시 정치노인들은 대외적으로는 미국, 영국, 일본 등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줄이고, 반대로 대내 강경책을 실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센가쿠 열도 30해리 안쪽으로 중국 어선이 접근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와 같은 베이다이허 회의의 영향은 당연 라다크 지역에서 인도군과 대치하던 중국군에게 영향을 주었다.
8월 30-31일, 중국군이 베이다이허 회의의 영향으로 분쟁지대에서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인도군은 판공호 남쪽의 熱欽山口와 黑嶺 지역까지 “침투”했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인도군이 이와 같은 군사적 도발을 한 까닭은 중국군이 DBO비행장을 위협한다고 오판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9월 4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중국군은 판공호 지역 분쟁지역(“여덟 번째 손가락” 서쪽)에서 전면 철수했다.
9월 7일, 중국과 인도 양국간의 협상이 결렬되자 중국군은 다시금 기갑부대를 판공호 분쟁지역에 배치했으며, 무인 정찰기를 보내 판공호 지역 인도군 상황을 정찰했다. 인도군 또한 무인 정찰기를 보내 중국군을 정찰했으며, 판공호 남쪽에서 도발을 이어갔다.
9월 8일, 판공호 남쪽 파오션산炮神山 지역(인도군 DBO 비행장 근처)에서 중국군이 인도군을 향해 경고 사격을 했으며, 인도군 또한 대응 사격을 했다.
9월 9~10일, 모스크바에서 중국과 인도 양측 외교부 장관이 만나 라다크 문제에 대해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중국과 인도 양국의 라다크 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글을 쓰는 것이 타당한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도의 경제력, 군사력이 강해질수록 인도 정부는 이 일대의 “힘의 재배치”를 요구할 것이며, 중국은 인도군의 지속된 도발 행위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인도군이 중국군이 설정한 “실질공제선” 너머 고그라 온천에 초소를 배치한 것은 위험한 행위를 넘어 중국군을 도발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병력 운송 방면에서 중국은 티베트 고원 위에 건설된 포장도로를 통해 호탄과 쿠처, 야르칸드 지역의 기계화 사단과 모터화 사단을 빠르게 배치할 수 있었기에 라다크 방면에서의 승리를 자신했으며, 이 때문에 인도군의 도발에도 양국 관계를 고려해 묵인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인도군은 자국의 “영역”을 공고히 하기위해 라다크 국경 지역 도로건설 계획까지 발표했으며, 이는 중국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실제로 6월 양국 간의 “싸움”을 살펴보면 중국은 인도군이 장악했던 판공호 북쪽 “두번째 손가락” 초소까지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설정한 “실질공제선” 너머 쇼크강과 길완강 합류지점에 군사시설까지 건설했지만, 인도군은 이 일대에서 병력 증강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네팔과 파키스탄은 인도가 중국과 대치하는 국면을 역이용해 인도와 국경 지역에서 충돌했으며, 네팔은 자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쾌거까지 이루었다.
위기에 몰린 인도를 구원한 이는 다름 아닌 푸틴이었다. 푸틴은 인도에게 전투기와 S-400 미사일 수출을 약속했으며, 양국 긴장이 고조될 때, 러시아 군 3천명을 인도에 파견하기까지 했다. 러시아가 북쪽에서 자신들을 압박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중국은 인도와 회담을 이어갔으며, 판공호 북쪽에서 철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국과의 충돌 과정에서 인도는 군용 물자 수송에 필요한 포장도로 건설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무엇보다 국경선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르투日土縣까지 포장도로를 건설한 중국과 비교하면, 인도의 육상 수송능력은 가히 의심스럽다. 그나마 레 비행장, DBO비행장 등 라다크 지역에 배치된 공군 비행장을 통한 공수 작전이 불가능했다면, 인도는 이번에도 중국에게 창천모羌臣摩 돌출구를 빼앗겼을 것이다.
필자의 소견이지만 앞으로 라다크 지역은 국제 신문에 자주 등장할 것 같다. 중국군은 인도군이 자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 근처까지 대규모 병력을 이송할 수 있는 포장도로 건설 계획을 묵인하지 않을 것이며, 인도 역시 과거의 영국 식민지가 아닌 남아시아의 맹주로 자리잡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과 인도의 라다크 지역 포장도로 건설이 추진될수록 양국간의 충돌 빈도는 잦아들 것이며, 종국에 가서는 전쟁 상황까지 발전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국과 인도 양국간의 라다크 충돌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註 2020년 9월 9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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