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C선생께서 일대일로를 두고 무엇인가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과연 일대일로가 작금의 한반도에 긍정적 역할을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예전에 기회가 되어 누군가 북방루트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또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거시경제 활동은 수요가 명확한 인프라 건설에 의해 결정되며, 그 중요도는 애석하게도 갈수록 높아만 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은 북방 경제, 또는 유라시아 경제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이들 지역이 왜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중국 둥베이나 러시아 연해주는 (특정 원자재를 생산하는 지역 제외) 공업이나 첨단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 아닌 여전히 농업이나 가공업 위주의 산업이 발전한 지역일 뿐입니다. 또한 이 지역의 근로자 연간 수입은 작년에 비로소 1만 위안을 넘었을 뿐입니다. 아래 자료를 살펴보지요.
표1: 2013년 중국 연평균 근로자 수입
여기서 우리가 고려해야할 점은 중국의 직할시들이 주변에 (도시 규모를 뛰어넘는) 거대한 (그리고 대다수 농촌인) 지방 현급 행정구역도 관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격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분명하지 않나요?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한국상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계층은 못해도 연간 수입이 인민폐로 3만 원 이상(555.2만 원)인 중상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 수입이 되는 이들은 주로 연안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둥베이 일대에서 저 같은 구매력을 갖춘 지역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심지어 둥베이 일대는 GDP, 연간수입 등 모든 경제지표가 최근 들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령성을 제외하면, 실상 한국 상품에 대한 수요도나 구매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베이징, 상하이, 저장, 톈진, 장수, 광둥 등 연해안 지역은 전통적으로도 중국의 경제활동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상품에 대한 수요도 (비록 지역마다 다르나) 어느 정도 있는 편인데 왜 우리는 항상 유라시아만을 고집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북방이라는 지리적 공간에 대해 모호한 인식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냉전이라는 시대의 벽이 만든 우리 마음 속의 장애물이지요. 정치인들도 학자들도 그 같은 심리적 장벽을 넘지 못하고, 환상의 땅 유라시아와 한반도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륙에서 평양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중단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그 철도가 휴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 때문에 유라시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한쪽에서는 빨갱이들이 득실거리는 못사는 땅이라 생각하는데 반해, 다른 이들은 (흡사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보듯) 처녀지로서 인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땅은 처녀지도 아니고,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나온 것과 같이) 스키타이 땅과 같이 척박하고 미개한 이들이 사는 땅도 아닙니다.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땅을 지키는 자들의 삶의 터전일 뿐입니다.
현재 한국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구조적 위기가 일부 진보적인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시적인 복지 정책으로는 전혀 극복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정 기간 동안 계속 해외 수출 위주의 경제 구조를 유지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중국과의 무역은 우리에게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상품 중에서 중국 시장에서 일정 부분 수요가 있는 상품들은 대부분 (일정한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아니고서야 관심도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물며 근자에 중국 내 회사들이 낮은 가격대와 (한국 제품과 비교해도)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제품들을 계속 출시하고 있어 한국 상품이 설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기형적 소비구조도 또 다른 문제로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실상 화베이 일대의 중국 상품들은 대체로 베이징-톈진에서 소비되고 있으며, 이 일대에서 소비되지 못하는 상품들은 해외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그러나 베이징과 톈진 인구는 불과 3623.8만 명(2014년), 애초에 화베이 일대의 모든 상품이 이곳에서 소비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현재 유럽과 미국에 대한 수출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이 일대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인구 노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 실업률의 증가로 인한 중산층 몰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더 이상 중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림1: 2013년 중국의 일인당 GDP
※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붉은 색은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며, 이 지역에서는 그나마 중산층이 일정 인구를 차지해 한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있으나, 여타 지역은 한국상품에 대한 수요가 제한적이고,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상 저 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중국 경제 성장이 그간 얼마나 연안 대도시들과 유럽 및 미국 시장에 의존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나마 서구와의 접근성이 용이한 연안 일대의 소득 수준이 높은 것과 달리 내륙지대는 소득수준이 비교적 낮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나 화베이, 둥베이 일대에서 발전한 지역은 베이징, 톈진 및 랴오둥 일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재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은 다름이 아닌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한국 상품을 북경, 천진 일대로 이동할 수 있는지 아닐까요?
따라서 최근 정치권에서 나진-선봉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왜 유행하는지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나진-선봉은 중국 입장에서는 목적성과결과가 분명하나, 한국 입장에서는 왜 우리가 굳이 이 지역 발전에 참여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예상 수익이 낮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진-선봉 개발은 작은 이익을 위해 큰 돈을 써야하는, 한 나라를 운영하는 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농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실상 우리는 스스로의 먹거리도 해결할 수 없음이 자명하며, 상당수 중국 둥베이 일대나 미국, 호주 등지에서 수입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둥베이 일대는 다수가 농업 종사자이며, 하얼빈, 다칭, 창춘을 제외하면, 거의 농산품과 간단한 가공품 수출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나진-선봉은 비교적 큰 소비시장(서울 및 성남 일대)이 형성된 한국에 상품 수출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하루 내지 이틀 정도 단축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이들 지역에 한국 상품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충족할 정도로의) 구매력을 가진 중산층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며, 이들 계층의 증감세 또한 보합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둥베이 일대 제조업도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을 랴오둥이나 베이징, 톈진 등지에서 팔지 못하면 둥베이가 아닌 해외 수출로 과잉 생산량을 처리해야 합니다. 즉 둥베이 일대의 경제란 ① 한국에 수출할 품목은 많으나 ② 한국 상품에 대한 구매도는 떨어지고 있으며, 이 같은 상품을 소비할 중산층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진-선봉 개발에 한국이 올라타야 한다는 주장, 참신하고 좋습니다.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리나 제가 배운 바에 따르면 상품 수요가 경제 소비규모를 결정하며, 그 같은 상품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물건을 옮길 하드 인프라 건설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은 자연환경과 지정학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연환경과 지정학적 요인은 인간이 바꾸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같은 자연환경 등 불가항력적 요소에 기초해 발생한 인간들의 활동과 그 결과는 역사에 잘 나와있지요. (중국의 성패와 무관하게)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으며, 빠른 시일 내에 미국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과 골든 크로스를 이룰 것이라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 경험이 지정학적 요소와 같은 불가변적 요소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며, 가변적 요소들은 시기를 늦출 뿐, 결국 종국에 우리가 보게 될 결론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나진-선봉 개발에 앞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① 역사적으로 이 일대가 한 나라의 경제 중심지로서 활동한 적이 있는가?
② 이 지역의 인구 구조는 어찌 되며, 현재 우리가 수출하려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인가?
③ 이 일대에는 내륙과 바다를 연결할 천혜의 항구가 있는가? 없다면 만들 수 있는가?
상술한 문제에 대한 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전혀 아닙니다. 고구려 성 분포도만 보아도 이 일대가 위치한 고구려 산성은 6곳에 불과하나, 랴오둥에 고구려 산성이 무려 160여 곳에 분포함을 생각해 보면, 고구려 때도 인구 밀집지역이라 보기 어렵다 생각합니다. 이후 발해가 잠깐동안 동경 용원부를 수도로 삼았지만 곧바로 상경 용천부로 천도했습니다. 두만강 하류 유역은 생산력에서나 인구밀도에서나 함흥 평야에 위치했던 동옥저나 고구려인들이 밀집했던 요동에 비할 수 없었으며, 이 때문에 랴오둥이나 한반도에 강력한 세력이 등장하면 이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② 인구구조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기술경쟁력을 갖춘 인구가 창춘이나 하얼빈 및 랴오둥 일대로 빠져나가는 중이며, 우리측 수요는 많지만, 반대로 한국 상품에 대한 구매도는 낮으며, 앞으로도 지금 이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낮아질 전망입니다.
③ 바닷가 출구가 없습니다. 만약에 원산항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없지만, 부산에서 나진-선봉은 여전히 거리가 멀고, 우리 상품이 이곳에서 잘 팔릴 것이라는 보장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필요성과 가능성, 두 가지를 놓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왜 나진-선봉 개발에 올라타야 하는지 실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구구조는 구매력을 갖춘 인구가 계속 대도시 지역으로 빠지는 바람에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산업 발전이 어려워지자 중국정부에서 내세운 것이 (한국인과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 산업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보면 고구려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발해는 개발에 실패한 이 지역에 왜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더군다나 최근에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둥베이 개발을 일대일로와 연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서울에서 출발해 평양, 의주를 지나 선양에 이르는 철도를 만들고, 이 같은 저 운임비로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보장하며, 더 나아가 빠른 시일 내에 화베이 일대의 소비중심인 베이징-톈진 일대에서 한국 상품이 다른 나라 상품과 비교해 보다 저가에 팔리는 것이 더 좋은 선택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고로 서울과 베이징-톈진을 연결할 수 있는 하드 인프라 건설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이 같은 인프라 건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나진-선봉과 같이 중국에게 일방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건설 사업이 아닌 호혜적 교역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현재 중국 둥베이 일대의 교통망은 다롄-선양-창춘-하얼빈 선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있기에 이와 같은 건설 사업은 우리 물건의 중국 수출을 용이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울러 나진-선봉은 자연환경 조건이 공업과 연계된 항구로서 성장하기에도 좋지 않은 편이며, 항구 조건도 그다지 좋다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원산만은 천혜의 항구로 실상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제외하면 이 같은 항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로 경원선과 경의선을 복구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지도를 다시 짜는 작업이 한중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서도 더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 2015년 8월 10일에 쓰다.
후론
예전에 쓴 글인데 저 당시 북한 경제 개발론이 아직 유행하던 때라 나진-선봉 개발에 회의적인 담론을 제시하기만 해도 주위 사람들의 비난에 직면해야만 했다. 물론 지금 내가 읽어도 문제가 많은 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얽힌 사연이 너무도 많아 다시 올리는 바다. 저 당시 발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반대하지 못함을 후회할 뿐이다.
2021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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