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국에서 경제학이나 중국학을 전공한 자들과 대화해보면 아래와 같은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 GDP의 대부분은 국영기업이 만드는 것이고, 중국정부는 자국 기업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저런 편견의 이면에는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며, 자국 기업 관리 방식 또한 소련, 북한과 같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아울러 소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도 중국 국유기업이 한국 공기업과 유사한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일 것이라고 추측하다 보니 한국 공기업과 같이 기업 실적∙이윤보다는 경제성장을 위한 인프라 확충을 목적으로 하며, 이 때문에 중국 중앙정부의 지침이 내려올 시, 이에 맞춰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편견은 실상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기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중앙기업과 국유기업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에서 오는 것이라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중국 중앙정부는 우리나라 행정부와 같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국가의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집단지도체제에 기반한 집단합의제로 중국을 지배하는 자들이다. 이 강력한 중앙정부 아래 지방정부가 존재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지자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 국무원과 지방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특정 회사 지분을 50% 이상 소유할 수 있는데, 이런 기업을 국유기업이라 한다. 이 국유기업은 다시금 ①국무원이 소유한 90여개 중요 기업(중공업, 교통 인프라 산업)과 ②지방정부가 소유한 기업으로 나뉘는데, 법인 인가를 받은 기업 계수만 따질 경우, 지방정부에서 소유한 국유기업이 월등히 많다.
중국 내 기업 분류
중앙기업(국무원 등 중앙정부 산하 국유기업)과 국유기업(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의 차이가 무엇일까? 비록 90년대 이후, 중국정부는 더 이상 국영기업(정부에서 회사 경영 생산을 직접 관할하는 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국무원 산하 90여개 중요 기업을 중앙기업이라 부르며 일반적인 국유기업과 구분한다. 이런 국무원 산하 국유기업은 중앙정부에서 생산을 관리∙감독할 뿐만 아니라, 인사권, 경영권을 쥐고 있다 보니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생산∙경영 전략을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대다수 국유기업은 지방정부 소유 국유기업인데, 이들은 중국 중앙정부에 귀속된 것이 아니고 지방정부에 귀속되어 있다 보니, 중앙의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고, 지방정부의 경제성장률이 곧 지방관의 승진과 직결된 중국 관료사회 특징상, 높은 자유도를 가지고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같은 국유기업이라 할지라도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에 따라 중국사회에서 이들의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가? 당연히 존재한다. 원나라에서 행상서성行尚書省, 행중서성行中書省을 지방에 설치한 이래, 중국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준하는 행정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관할구역 토지 소유권과 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 과반 이상 지분과 인사권까지 가지고 있다. 중앙정부는 자신들에게 집중된 군사력과 금융 권력을 바탕으로 이들을 통제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강력한 통제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일례로 중국 중앙정부는 여전히 지방정부와의 마찰로 인해 국토 효율화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국토를 4개 구역(개발구, 개발제한구, 중점도시, 개발도시)으로 분류하고, 지방정부의 개발 남용을 제한하겠다는 정책은 지방정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정부 관할구역 토지 자체가 중앙정부에 재산이 아닌 지방정부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지에 대한 사용권 매매는 지방정부의 주된 수입원인데, 이를 중앙정부에서 일정 구역을 설정한 다음 금지하겠다고 하니, 이런 정책을 순수 따를 지방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이 때문에 이 정책은 후진타오 때부터 추진되어 왔지만 지금까지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지방정부에 귀속된 대다수 국유기업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이런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는 일정 직위까지 오른 전관이거나 지방정부와 연관 있는 경영인 출신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중앙정부에서 직접 관할하는 기업이 아닐뿐더러, 목적 자체가 지방경제 성장이다 보니, 최대한 효율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물론 관료사회 분위기가 농후한 둥베이와 북방 지역은 이야기가 다르다). 당연히 이들에게 중앙정부의 정책노선보다는 (지방정부 GDP와 직결된) 자회사의 이윤 추구가 더 중요하며, 중앙정부의 지시조차 지방정부라는 필터를 거쳐서 내려오다 보니 실상 중국 중앙정부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사실상 이들은 ①중국 지방정부와 연관 있는 경영인이 운영하며 ②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라 보는 편이 정확하다. 민간기업과 차이가 있다면 이들 기업은 관료사회와 연계되어 있다 보니 정부 보조금, 은행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받기 유리하다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장점을 찾아볼 수 없다(이조차 민간기업 사장이 자신의 학연, 지연을 통해 비슷한 수준까지 갈수도 있어서 장점이라 단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국내 언론과 중국 전문가들이 중앙기업과 통상적인 의미의 국유기업(지방정부 소속 국유기업)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있다. 이번에 문제가 터진 기업들 중 상당수는 지방정부에서 소유한 국유기업이었으며, 국무원이 직접 관할하는 90여개 중앙기업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2020년 당시 리커창 총리가 중국 지방정부 수장들을 추궁하며 부채 규모를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친 것도 이번 위기는 중국 중앙기업이 아닌 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의 부채 문제가 터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이 중국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통제∙관할을 받지 않다 보니 지방정부에서 이들의 부채 규모를 보고하지 않으면, 중앙정부에서도 알 길이 없다.
이어서 중국 GDP와 국유기업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중국 GDP공헌 비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중앙기업이 독점하는 교통, 건설, 자원, 자동차, 조선, 항공 산업이 아닌 내수 소비(76.2%)와 자산형성총액(32.4%)이다. 수출이 중국 GDP 증감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오히려 손해(-8.9%)보는 영역이기도 하다. 필자가 향후 중국 부동산 시장이 생산인구가 감소되는 2050년 이전까지는 문제없이 상승하리라 보는 것도 현재 중국 GDP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8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즉 상승여력이 여전히 남아있다). 상술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중국 GDP 공헌 비중이 가장 높은 분야는 소비와 투자인데, 이 소비와 투자 영역에서 국유기업의 역할은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민영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중국 GDP에서 국유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대에 불과하다.
아마도 저런 오해가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주로 진출한 지역이 ①중국에서도 경제적으로 낙후했다고 알려진 둥베이 지역이거나 ②중앙정부의 입김이 가장 강한 베이징, 톈진 지역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 지역들은 중국에서도 관치 경제로 악명 높은 곳이고, 관官의 입김이 지방경제를 해친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관료 사회의 경직성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지역이다(중국 내에서도 심하다고 평가를 받음). 당연 이 지역에서 관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의 중국 전문가라 불리는 자들 중 상당수가 둥베이 지역 조선족 출신 교수, 연구원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 내부 사정을 파악하다보니,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인 둥베이 지역의 기업환경을 중국 전체 기업 환경이라 오판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 더해 한국 공기업의 역할로 중국 국유기업을 바라보는 국내 연구자들의 인식 또한 이런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 요인으로 보인다. 한국 공기업은 기업의 실적∙이윤보다는 GDP 성장을 위한 인프라 확충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기업 이윤보다는 공공재 공급을 주요 기업 평가 기준으로 삼는데 반해, 중국은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업이 국무원 산하 90여개 중앙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들은 이와는 다르게 지방정부의 경제성장과 일정 수준의 고용률 보장을 목표로 삼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방정부 경제성장과 직결된 기업 이윤 추구를 최대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어차피 공공재 공급 역할은 국무원 산하 중앙기업들이 담당하므로). 이 때문에 한국의 “낙하산” 경영진과 다르게 중국 국유기업 사장들은 대규모 딜을 하려고 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에게 회사 실적은 자신의 밥그릇과 직결된 문제이다 보니(심지어 지방정부는 주식을 팔거나 계약해지 등 방식을 통해 국유기업을 민간기업으로 돌릴 수 있다) 사활을 걸고 회사 경영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시진핑 지도부 들어서 중국 기업부채 규모가 심각한 상황까지 불어나자(2017년 중국의 기업 부채는 GDP 대비 165.3%) 국유기업을 파산시켜 부채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방만하게 운영되던 국유기업은 자연스럽게 문을 닫거나 다른 국유기업에 합병되는 수순을 밟는 중이라 사실상 기업의 이윤 추구가 중국 대다수 국유기업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침을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데, 일단 중국 지방정부에서 디테일한 경영지침을 내리지도 않고, 대체로 기업 실적이 나쁘면 기업 경영자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구조다 보니 기업 실적을 위해서라도 상당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해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로 중국의 국유기업이란 지방정부가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중국 국유기업은 ⓐ국무원 관할 하의 90여개 중앙기업과 ⓑ지방정부가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는 국유기업(일반적인 의미의 국유기업)으로 나뉜다.
②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중국 국영기업/국유기업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체는 국무원 산하 90여개 중앙기업뿐이다.
③대다수 국유기업(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은 일정 직위까지 오른 전관 또는 지방정부와 연줄이 있는 경영인이 회사 대표를 역임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의 사기업이나 다를 바 없다.
④심지어 국유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에 불과하다. 즉 국유기업의 파산 문제로 중국경제가 무너지리라 생각한 것부터가 한국 일부 언론이 만든 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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