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중국 기사를 읽다 보면 유독 후시진과 《환구시보(영어명 《Global Times》)》 관련 기사가 자주 소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사들은 대체로 《환구시보》 기사 내용을 중국 언론의 억지라 소개하며,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한 한국 전문가(성신여대 S교수 등 단골로 나오는 교수 몇 명이 있다)의 반박을 소개한 다음, 끝에 가서 이를 중국의 문화공정이라며, 이와 같은 중국의 문화공정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야욕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이런 유형의 기사들은 사드 사태 이후 거의 한국 언론의 중국 관련 보도 내용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현상을 나는 “후시진 현상胡錫進 現象”이라 부르고 싶다.
후시진 현상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서 재미있는 까닭은 중국인들에게 후시진이 딱히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후시진에 버금가는 한국인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조갑제 외에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좌경화된 중국 사회에서도 그는 극좌(한국과 달리 중국은 공산당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대체로 극단적 보수파를 극좌라고 표현한다-한국으로 치면 극우와 정치적 스탠스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언론인으로 분류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중국 지인들에게서 단 한번도 《환구시보》를 읽어보라고 추천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일단 《환구시보》를 읽는 사람들의 수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신문은 중국 내에서도 극단적인 좌익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관과 생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만일 중국인들이 이 신문 기사대로 생각한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중국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울러 중국에서 언론기관을 평가하는 여러 지표들을 종합해 봤을 때, 이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중국 언론 지형에서 비주류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일례로 2018년 중국의 신문 발행 부수 기준 1-10위를 기관 별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①參考消息(318만 부), ②人民日報(280만 부), ③中國電視報(200만 부), ④揚州晚報(180만 부) ⑤廣州日報(168만 부), ⑥體壇周報(148만 부) ⑦信息時報(148만 부) ⑧南方週末(140만 부) ⑨南方都市報(140만 부) ⑩金陵晚報(120만 부)
한국 기자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환구시보》는 16위(104만 부)를 차지했다.
만일 신문 발행 부수량만으로 신문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래 수치도 보기를 바란다. 2018년 人民網研究院에서 발표한 신문 융합 전파력 기준 1-10위를 기관 별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①人民日報(96.03), ②光明日報(87.16), ③人民日報海外版(86.69), ④經濟日報(86.61) ⑤證券時報(86.43), ⑥南方日報(86.40) ⑦廣州日報(85.91) ⑧江西日報(85.74) ⑨中國青年報(85.23) ⑩河南日報(85.06)
2020년 人民網研究院에서 발표한 신문 융합 전파력 기준 1-10위 기관별 순위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①人民日報, ②光明日報, ③廣州日報, ④經濟日報 ⑤南方日報, ⑥中國日報, ⑦北京日報, ⑧大衆日報 ⑨河南日報, ⑩河北日報
참고로 2020년 지표를 살펴보면 《환구시보》는 그 어떤 지표에서도 2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환구시보가 중국에서 발생부수도 적고, 그다지 영향력도 크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환구시보》 기사의 극좌 성향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결과는 너무도 당연하다(그리고 이는 한국 언론이 지금까지 중국에 대해서 얼마나 편향적인 정보만을 내보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만일 당신이 지금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 광저우에 있다면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극좌 인사를 어찌 평가하는지 물어보라. 10명 중 8명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고 비판할 것이며, 1명은 그래도 애국자들이라 말할 것이고, 마지막 남은 1명은 본인이 극좌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중국에서도 내가 찾아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접하기 어려운 극좌 언론 기사를 한국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만일 모든 중국 언론에서 《조선일보》도 아닌 《뉴데일리》 같은 한국 극우 언론 기사 내용만 주구장창 보도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기사를 매일 같이 접한 중국인들은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겠는가? 비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를 위협하는 나라라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한국 언론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 중국의 극좌 언론 기사를 대다수 중국인들의 생각인 것처럼 포장한 다음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당연히 이런 편향된 정보만을 접한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세계 정복을 꿈꾸는 스탈린주의 국가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나는 왜 한국 언론이 이토록 후시진에 (다른 의미에서) 열광하는지 궁금했다.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하기에는 이미 한국 언론 보도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탈선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를 적대시하는 개인적 감정을 표출하고 나아가 이들을 의도적으로 망신 주겠다는 저의가 아닌 이상, 어찌 이런 극좌 언론 기사를 매일 같이 소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문제를 놓고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래와 같은 요인 때문에 “후시진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①냉전 이데올로기나 영미권 기사의 영향을 받아 중국을 악의 세력으로 인식하고 중국의 악함을 세상에 고발하겠다는 정신세계를 가진 기자가 중국 특파원으로 파견됐다. 내가 들어보니 간혹 한국 기자들 중에서 이런 정신세계를 가진 자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물론 한국 특유의 병영문화와 이데올로기적 대립 상황은 이런 극단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이유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특정 국가를 악마화하고 이 나라에서도 극단주의적 성향의 언론 기사만을 중국 전체의 여론인 것처럼 호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특정 국가에 대한 별 다른 악의가 없던 자들도 그런 극좌 성향의 내용과 기사에 놀란 나머지 방어차원에서 특정 국가 문제에 대하서만은 극우적 스탠스를 취하지 않겠는가? 정상적인 보도 행태라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 생각해본다.
②《환구시보》의 자극적인 기사 내용을 소개할 경우, 조횟수가 높은 편이다 보니 이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경우다. 후시진은 자극적인 기사로 중국 내 극좌 성향의 구독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구시보》는 사실 여부와는 무관한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자극적인 기사는 기자들이 보기에 대중의 관심을 끄는 좋은 소재 아니었을까? 원래 언론이란 사람들에게 정확한 사실만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하지만, 조횟수에 목마른 기자들에게 《환구시보》가 어떤 신문인지, 중국 사회에서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오로지 한국인들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고, 중국인들을 범죄자 집단으로 몰아세워 조횟수를 빨아 마시면 된다는 무책임한 생각에 기인해 이런 기사들을 꾸준히 내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한국 기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후시진 현상이 일어나게 된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③다른 언론에서 《환구시보》 기사를 인용하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소개하는 경우다. 몇몇 언론이 《환구시보》 기사를 소개하고, 이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처음에는 《환구시보》를 모르는 기자들도 결국 중국 언론의 대표주자격으로 《환구시보》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이들의 기사 내용을 소개하는 대열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삼인성호는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든 사자성어가 아니겠는가?
내가 한국의 대중 여론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라 볼 수 없다 판단한 까닭은 바로 이와 같은 국내 언론의 “후시진 현상”이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중국과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편향된 기사만을 보고 중국을 극좌 세력이 판치는 세상이라 오해할 것이며, 이런 기사에 취한 (중국과의 접점이 없는) 전문가들은 중국을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나아가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한 의무라고 외치면서 우리 정부의 대외 정책 극우화를 유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문가 집단의 주장은 필연적으로 극우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들이 대항하는 적은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와 “후시진 현상”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실체 없는 중국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은 극단적인 적과 싸우는데 당연히 이런 적에 대응하는 수단도 극단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쩌면 “후시진 현상”은 한국의 극우화를 알리는 신호탄일수도 있다.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한국 사회 전체를 극우사회로 만들었으며, 지금까지도 한국은 우파와 진보적 어젠다를 일부 차용한 자유주의자들의 대결 구도만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좌파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사회에서 좌경화된 나라의 극좌 언론 기사만을 소개할 경우, (우파가 진정 지향해야 하는) 자유주의적인 분위기는 점차 상실될 것이며, 우파적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공격해도 된다는 극우적 담론이 점차 사회적 주류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경제적 몰락과 더불어 완전한 극우사회로 탈바꿈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실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일단 기자들이 《환구시보》와 같은 극좌파가 중국 내에서도 소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런 극좌 성향의 언론 기사 대신 중국 사회 여론을 잘 보여주는 언론 기사를 소개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국 사회에서 진정 바닥 민심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南方日報》, 《廣州日報》, 《江西日報》, 《河南日報》, 《金陵晚報》, 《南方都市報》, 《河北日報》 같은 지역 언론이며, 이들은 간혹 지방 정부 관리의 부패 스캔들을 폭로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기사도 내보내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 많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中國青年報》, 《南方週末》 또한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다보니 폭넓은 구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하다못해 중국 정부 정책 흐름을 알고 싶다면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식자층을 겨냥한 신문인 《광명일보》를 읽으면 된다.
고로 굳이 중국에서도 정치적 성향이 극좌가 아닌 이상 찾아서 읽지도 않는 《환구시보》의 기사를 소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후시진 현상”이 점차 극우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진심으로 염려된다.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중앙정부와 중앙기업, 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과의 관계 (0) | 2021.04.26 |
---|---|
중국 국유기업 파산 현상에 대하여 (0) | 2021.04.23 |
중국식 개혁개방이 북한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 (5) | 2021.04.09 |
중국은 북한 분할안에 찬성할까? (0) | 2021.03.26 |
중국은 IMF와 같은 위기를 맞이할까? (0) | 2021.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