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서 미어샤이머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올렸다.
https://www.donga.com/news/NewsStand/article/all/20220101/111041372/1
나는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일단 국제질서에 대한 그의 진단부터 역사적 사실보다는 상상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의 사실상 동맹관계는 베이징의 구상이라기보다는 90년대 프리마코프의 반-패권주의 노선 이래 모스크바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의 일환이며, 트럼프의 등장은 베이징으로 하여금 이 구상에 적극 동참하게 만든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중국의 품에 들어갔다기보다는 중국이 모스크바의 구상에 따르고 있다는 편이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깝다고 본다. 단지 이 동맹은 모스크바의 전략적 구상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 나라 중에서 중국의 경제력이 가장 거대할 뿐 아니라, 분쇄지대에 미치는 영향력 측면에도 러시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상 자체는 분명 모스크바의 외교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미어샤이머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워싱턴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자국의 지정학적 열세를 돌릴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이 할 수 있는 일은 ①중·러가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언론을 통해 주입함과 동시에 ②중·러의 군사적 위협을 과대 평가하여 동맹국들로 하여금 근거 없는 위협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미국의 보호를 자처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문제는 이런 방법이 코로나로 전 세계의 교류가 중단된 상황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세계가 다시금 개방될 때, 사람들이 실제 상황을 마주하고 느낄 충격을 전혀 계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미국의 동맹국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만 높여버렸다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어샤이머 교수의 발언(이를 감안할 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다)은 솔직하다 못해 오늘날 세계질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다만 나는 우리 국민들을 믿지 않는다. 지금은 미국 언론 외에는 다른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국내 언론 특성상 미국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담론을 국민들에게 전달할 뿐이지만, 당장 국경이 열리고 이들이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로 갔을 때 접하게 될 현실은 우리 언론의 신뢰성 나아가 자기 자신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계기가 언론의 균형성 회복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스톡홀롬 증후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약자는 강자 앞에서 저항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굴복을 선택한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고립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입시키고 싶어 하지만, 이 두 나라가 주변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너무도 거대하고, 사실상 이들을 고립시키는 포위망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만일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팽창 노선을 지속할 경우, 아시아 또는 중동 국가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오판을 내릴 가능성이 있으며(실제로 중국은 오키나와 동쪽으로 진출할 만한 군사적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아시아에서 미국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지금은 중·러와 싸우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중국과 러시아, 이란 삼자 동맹 해체에 총력을 기울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타이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양보할 경우, 타이완을 지킬 수 있지만, 반대로 타이완을 지키고자 할 경우, 우크라이나를 포기해야 한다. 만일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타이완 사이에서 선택을 거부한다면 중·러 양국과 동서 양면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는 워싱턴이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가 본 바를 말하자면 중국은 이미 중앙아시아와 인도차이나에서 자신의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은 중국이 미국과 비등한 어떤 상태로 발전하게 될 경우, 당장 친미 노선을 주장하는 당내 계파를 처단하고(솔직히 지금도 친미는 아니다), 중국과 최대한 마찰을 줄이려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중국에서는 베트남과 한국에 대해 아래와 같은 평가가 존재한다.
“사대의 끝판왕(베트남과 한국 지칭)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마지막까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한국과 베트남을 굴복시키기 위해 미국과의 장기전에 들어가 자신들의 세력이 아시아 대륙에서 미국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할 것이고, 이는 베이징의 반미 정권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아시아 대륙의 권위주의 독재자들은 미국이 강요하는 보편적 가치를 부인하는 대신, 베이징의 지지를 받아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외교적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외교적 균형이란 비단 미국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중국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뜻한다(누가 강하니까 달라붙는 그런 박쥐 근성 말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중·러 군사협력체의 형성으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은 앞으로 4-5년 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는 현상인데, 우리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해양 진출을 과대 평가하는 오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올해 1월,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된다. 이 행사가 또 다른 강권주의 패권국의 등장을 알리는 행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들 무사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내가 작년 12월 한국에 가서 학회 참여도 해보고 지인들이 추천해준 동영상을 보고 느낀 점을 말하자면……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이런 미래 변화에 대응할 능력이 전무하다. 지금은 언론에서 미국이 강하다고 외치니까 미국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다가, 아시아 대륙에서 벌어진 미·중 대리전에서 베이징이 몇 차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될 경우(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베이징은 귀한 승리를 한 차례 거두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중파를 자처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번에 국내 지식인들과 접촉하면서 느낀 바를 말하라면 이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본다.
이 나라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찾는 것이란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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