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아틀란티스가 실존했다고 믿는데, 나는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생각인데 아틀란티스는 아마도 타르테소스 또는 타르테소스의 뿌리가 되는 원시문명에 대한 정보가 이집트와 그리스에 와전되어 만들어진 전설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전설이 탄생한 까닭은 인구의 증가와 함께 지중해 동부 연안 도시들 간의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교역 수단으로 사용되던 금화·은화 그리고 건축 장식 등에 사용되는 주석의 수요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티로스, 로도스, 포카이아, 키프로스 등지의 상인들은 대규모 선단을 꾸려 타르테소스의 은산으로 대표되는 광물 자원을 싼 값에 획득해 부를 축적하려 했다. 《열왕기상》 10장 22절에 보면 타르테소스의 특산물을 아래와 같이 나열하고 있다.
또 왕은 다르싯 상선대를 조직하여 히람 상선대와 함께 해상무역에 종사토록 하였다. 다르싯 상선대로 금, 은, 상아, 원숭이, 공작새 등을 해외에서 한 번 실어 오는 데 삼 년이 걸렸다.
플라톤의 《크리티아스》에도 보면 아틀란티스의 은광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스트라보 《지리학》에 나오는 타르테소스의 은산을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아틀란티스가 침공했다는 지역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타르테소스와 교역했던 지역인 것을 고려해보면 아마도 타르테소스인들은 페니키아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상단을 조직해 에게해 지역의 항구 도시들과 교역하고, 이 과정에서 아테네 등 에게해 해상 무역 독점을 꾀하는 도시들과 충돌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인데 암흑시대 이전의 그리스 문명에 관한 기록은 거의 파괴되거나 신화적 색체가 더해진 상태에서 구전되었기에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기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용 중 상당수는 암흑시대 이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연안 지대가 리스본 대지진으로 대표될 만큼 강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임을 생각한다면 이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항구 도시 하나가 사리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 시간이 많이 지난 기사지만 관련 단서도 슬슬 나오는 것 같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6529#home
아틀란티스에 대한 플라톤의 연대도 당대 그리스인들이 측정할 수 없는 시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으며, 이는 암흑시대 이전에 타르테소스 등지에 있던 문명과 초기 그리스, 이집트인들이 교역했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물론 어떤 이들은 아틀란티스를 잃어버린 초고대문명이라 주장하며, 찬란했던 문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신화적 서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학문적이지도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수의 1차 사료가 번역이 되지 않거나 애초에 소개되지 않은 관계로 다수의 연구자들이 편집되고 선별된 자료만을 보다 보니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주장을 하는 학설만을 취하고, (국내에 제한된 정보만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우기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이런 선별된 정보의 선취는 결과적으로 왜곡된 정보의 화학적 결합만을 불러 일으켜 극단적이고 극우적인 담론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최근 국내 학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정확히 일치한다(우리는 어느새 《환단고기》, 《규원사화》, 《화랑세기》 등 근대에 만들어진 위서의 신빙성을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활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어쩌면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극우의 탄생과 정보처리 능력은 모종의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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