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와하비즘과 이슬람 테러단체와의 관계,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오만을 반성하며

계연춘추 2021. 8. 30. 20:07

이 글에서는 이슬람교 와하비즘과 테러 단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은 자들이라면 왜 중앙아시아에 수니파 벨트가 만들어질 수 없는지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흔히 이슬람교를 수니파와 시아파로 구분하지만, 실상 이슬람교 내부로 들어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2개 교파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중앙아시아와 중국 내륙 지대의 몇몇 교파는 여전히 수니파인지 시아파인지 구분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연구 주제인 경우도 있다), 중동 지역과는 다른 분류 체계를 가지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 일례로 중동 지역 수니파들이 수피즘을 배척하는 것과 달리 중앙아시아에서는 수피즘 단체를 편의상 수니파로 분류한다(그러나 이들과 전통 수니파 사이에 아무런 연대감도 없다). 신장 지역에 수니파만 살고 있다는 주장 또한 사실과 다르다. 와한회랑과 접경지대인 타슈쿠르간 일대에 사는 타지크족은 시아파 분파인 이스마일 학파 신도며, 카슈가르 일대에 살면서 시아파를 믿는 위구르족 일파인 “카슈미르족”은 자신들이 위구르족이 아니기에 다른 민족으로 분류해 줄 것을 중국 정부에 수차례 요구한 바 있다. 이외에도 소수지만 악수와 호탄 지역에는 위구르족이면서 시아파를 믿는 이들이 소수나마 존재한다(주로 이스마일 학파의 가르침을 따른다). 애초에 근대 위구르족 정체성을 카슈가르와 악수 일대에 살면서 수니파를 믿는 세속주의자들이 세웠음을 생각하면, 신장 지역의 시아파들에게 “위구르족”이라는 민족 개념은 단순히 중국정부가 타림분지 남쪽의 오아시스 주민들을 분류하기 위해 만든 명칭일 뿐이지(카슈미르족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실제 그들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공문서상 명칭에 불과하다.

이슬람 신학의 계보

따라서 ⓐ카슈가르와 악수 일대에 살면서 위구르족이 주축이 된 세속주의 정권 수립을 꿈꾸는 이들과 ⓑ와하비즘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세계제국의 전초기지를 만들려는 테러리스트들은 애초에 물불처럼 섞일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하물며 대다수 하나피 학파에 기반한 세속주의를 따르는 위구르족(80%가 여기 해당한다)에게 한발리 학파에 기반한 와하비즘은 자신들이 알던 이슬람교와는 너무도 다른 극단주의 종파일 수밖에 없다. 물론 중국에 와하비즘의 기초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간수와 칭하이, 그리고 중국 북부의 聖訓派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와하비즘은 중국에 생각보다 일찍 전해졌다. 단지 중국 내 聖訓派는 이슬람 세계제국 건설까지는 꿈꾸지 않을뿐더러, 신장 지역에서 이들이 유행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기에, 이들과 신장 지역 와하비즘 유행을 연결 짓는 것은 무리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타림분지는 하나피 학파 세속주의와 수피즘 분파인 伊禪派(10%)가 주류를 이루며, 급진적 와하비즘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극소수 사람들이 따르는 종파 사상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이 교세를 확장하면서 위구르족 인구의 10% 가까이 성장한데 있다. 급진적 와하비즘에 빠진 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중국정부 입장에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전래된 이 새로운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은 테러리즘의 정신적 자양분이자 분리주의의 씨앗이나 다를 바 없었으며, 이 때문에 (언론에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내 생각이지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재교육 프로그램 또한 신장 지역 와하비즘 교세 억압과 위구르족 내셔널리즘 운동을 막으려고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와하비즘에 대한 중국정부의 탄압은 사실이나, 과연 이들이 같은 위구르족에게서 동정심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와하비즘이 타림분지 주류 신학자들을 세속주의자로 비판한다는 점과 수피즘 분파인 伊禪派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해왔다는 점만 고려해봐도 이들이 위구르족 내부에서도 동정심을 얻기 힘들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천만 위구르족 가운데 1/10이 믿어도 그 수는 백만 명, 이들 중 상당수 급진주의자들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해 IS 호라산 지부와 파키스탄 탈레반에 개인 자격으로 가입하며, 테러 훈련을 거쳐 중국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 활동에 가담한다. 이들은 주로 중앙아시아에 파견된 중국인 기술자를 공격하거나, 중국이 건설 중인 인프라 시설을 파괴하는 등 “일대일로”를 추진 중인 중국에게 큰 골치거리였다. 그러나 카불 공항 테러 사건 이후로 시작된 ⓐ미국의 IS 호라산 지부 공격과 ⓑ그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파키스탄 탈레반의 전향(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주인이 되자 TTP는 180도 전향해 아쿤드자다에게 과잉 충성을 보이고 있다)으로 보아 IS 호라산 지부의 몰락 이후, 이들은 의탁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군소 테러단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와하비즘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수니파 내부의 분파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 수니파 내부도 여러 법학파가 존재하며, 중앙아시아 지역의 대다수 무슬림이 믿는 하나피 학파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피 학파 외에도 개인의 엄격한 수행을 중시하는 한발리 학파가 있는데, 와하비즘은 이 한발리 학파에서 파생된 극단주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극단적인 수행 방법을 추구하는 한발리 학파라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개인 또는 자기 학파 사람들에게만 이와 같은 요구를 하지, 이를 다른 이슬람 교파 또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하지는 않는데, 와하비즘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이와 같은 극단적 수행을 요구함으로써 진정한 이슬람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연히 이런 극단주의 사상이 정치적 운동으로 자리잡을 경우, ①탈레반처럼 부족주의와 근본주의가 결합된 정교합일적 군사조직이 되거나, ②IS와 ETIM처럼 이교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이슬람 신앙이 지배하는 세계질서 수립을 꿈꾸게 된다.

상술한 내용을 이해한 독자들은 수니파 벨트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같은 수니파라 하지만 ①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하나피 학파를 믿는 대다수 위구르족들이 ②근대 이전까지 신장 지역에 유행한 적도 없는 한발리 학파에서 유래한 와하비즘의 정치적 대의에 동조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는 개신교 일파인 장로교 신도보고 가톨릭 교회의 급진주의 운동인 예수회의 정치적 가르침에 동조하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 전문가들이 중앙아시아 일대의 부족주의와 종파주의 대립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부족주의와 종파주의에 대한 무지는 우리 언론의 아프가니스탄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전까지 아프가니스탄도 와하비즘보다는 ⓐ하나피 학파에 기반한 세속주의 왕정과 ⓑ부족장들이 각자의 전통에 따라 자기 부족을 통솔하는 부족주의가 결합된 국가였다. 이런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있어 와하비즘은 무자헤딘 활동과 함께 전해진 “새로운” 근본주의 신학이었으며, 소련군과의 싸움에 참전한 소수의 무슬림 식자층만이 받아들인 급진주의 개혁 사상이었다. 비록 한발리 학파의 가르침이 탈레반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에 영향을 주었으나, 우리는 대다수 파슈툰족이 하나피 학파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탈레반 지도부가 아무리 와하비즘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파슈툰 부족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자들이고, 이는 그들의 정책이 파슈툰 부족주의와 하나피 학파 가르침의 영향을 받아 와하비즘에 반하는 내용이라도 부족 내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타협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IS 등 성전주의자들의 종교 성향을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탈레반→하나피 학파와 파슈툰 부족주의 위주(부분적으로 와하비즘의 영향을 받음)
ⓑ알카에다, IS, ETIM 등→와하비즘 계열의 테러 단체.

여기서 우리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IS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록 신학적 근간이 다르지만,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전우로서 함께 소련군의 침공에 맞서 싸웠을 뿐만 아니라, 탈레반 지도부 또한 빈라덴과의 접촉을 통해 와하비즘을 접하다 보니, 이들에게 강력한 동질감을 느끼지만, IS와 ETIM은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급진주의 무장세력일 뿐이다. 신학적으로도 ⓐ탈레반은 와하비즘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부족 전통을 유지하는 선에서 받아들인 것에 비해, IS은 와하비즘을 절대적인 가르침으로 삼으며, 여기에 반하는 모든 부족 전통을 부정하려 드는데, 이는 파슈툰족 전통을 지키려는 탈레반과 정면 충돌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탈레반은 파슈툰족의 아프가니스탄 통치를 회복하려는 것뿐이지만, IS는 탈레반 같은 부족주의 정권을 모두 없애고 칼리프 제도를 회복하려는 자들인데, 이들이 어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여기서 한발 나아가 IS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타림분지에 와하비즘에 입각한 이슬람 신정체제를 세우려는 ETIM을 탈레반이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지 생각해 보자(탈레반이 중국 측의 요구에 따라 ETIM를 금지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래서 탈레반-알카에다 동맹과 IS 호라산 지부, 그리고 TTP와 ETIM 등 극단적 와하비즘 테러 단체와의 싸움은 중앙아시아 부족주의 단체와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의 충돌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울러 같은 와하비즘 기반의 테러 단체라 해도 이슬람 세속주의 정권에 대한 알카에다와 IS의 태도는 180도 다르다. 비록 9.11이라는 천인공노할 테러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알카에다는 이슬람 세속 정권까지 전복 대상으로 삼지 않는데 비해(빈라덴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교 문명을 대상으로 하는 십자군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IS는 이슬람 세속주의 정권조차 칼리프 제도의 걸림돌로 바라보고 타도 대상으로 삼는데 이들이 어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IS가 출현한 이후, 와하비즘 테러 단체들은 기존의 빈라덴식 “십자군”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지향하게 됐으며, 단순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십자군” 전쟁을 넘어 이슬람 세속 정권 전복과 칼리프 체제 확립을 정치적 목표로 삼기에 이르렀다. 알카에다와 IS의 충돌은 바로 이와 같은 테러리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신구 세력의 싸움이라 이들이 화합하는 일은 한동안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후, 신장 호탄 지역을 중심으로 들어온 와하비즘이 위험한 이유는 이들이 (IS 등장 이후 세력이 쇠약해진) 알카에다가 아닌 IS 호라산 지부 또는 자발적으로 IS 산하 조직이 된 TTP 같은 조직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이들과 IS 등 테러 단체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베이징은 와하비즘에 기반한 성전주의자들(IS와 파키스탄 탈레반)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인해 다시 발흥할 것을 염려했다.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베이징은 ①와하비즘의 영향을 받았지만 파슈툰족 부족주의(파슈툰족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 체제로의 회귀)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탈레반에게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②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간의 정치적 협상이 진전을 이루어 미군 철수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 정국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베이징의 생각과는 달리 워싱턴의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은 다음, 아프가니스탄 정국 안정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워싱턴의 비타협적인 태도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측 협상은 오랜 시간 진전을 이루지 못했으며(물론 여기에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대한 워싱턴의 자신감도 한몫했다), 이는 베이징 지도부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결국 베이징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국을 빨리 장악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며, 탈레반의 진격을 지켜만 봤을 뿐이다.

그리고 카불 공항 테러로 인해 베이징이 두려워했던 상황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물론 베이징의 입장에서 보면 워싱턴이 위구르족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테러 단체-IS 호라산 지부와의 전쟁을 선언했으니 자신들이 당초 원하던 정치적 목표에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평화, 그리고 ETIM와 연관 있는 IS 호라산 지부와 TTP 등 반중 테러 단체에 대한 탄압), 이런 인명 피해 없이도 충분히 철군할 수 있었음을 생각하면,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중국과의 대결 구도에 매몰된 나머지 고려해야 될 사안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신장 지역 시아파 분포지

그런데 비단 워싱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자들도 신장 위구르 지역 상황에 대해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근래 유행한 ETIM 와한회랑 침투설만 보더라도 그렇다. 와한회랑은 산악차의 도움 없이는 일반인은 넘을 수 없는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 지역을 관통하는 포장도로 하나 깔리지 않았다. 이런 곳을 테러리스트가 아무런 등산 장비의 도움 없이 넘는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여기에 더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키르기스족과 와한 사람들이고, 와한회랑을 넘어 타슈쿠르간에 이르게 되면 타지크족 거주지가 파미르 고원 계곡 사이로 펼쳐지는데, 이 일대의 타지크족은 모두 시아파 신도다. 달리 말해 와한회랑에서 호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종교적 신념을 매개로 하는 동조자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소리다. 그리고 ETIM은 비단 중국정부만을 테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위 지도의 시아파 분포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의 테러 대상에는 ⓐ이 지역에 사는 시아파 공동체와 ⓑ하나피 학파 학설을 따르며 점성술과 무속 신앙에 매료된 무슬림 신도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백악관에서 신장 위구르 독립을 이야기할 당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①위구르족 자체가 여러 타림분지 오아시스 도시들을 하나로 뭉친 것에 불과하며, 이들 내부에는 여전히 내셔널리즘 집단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지의 도시 공동체와 종파 집단들이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을 어떻게 하나로 뭉치겠단 말인가?

②이 지역은 하나피 학파를 따르는 세속주의가 주류 학설이며, 이외에도 시아파와 수피즘 단체들이 조금 있다. 와하비즘이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소수(1/10)에 불과하고, 다른 이슬람 종파들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중국이 이 지역에서 물러난 직후, 이 일대 각 이슬람 종파 간의 대립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과연 신장 지역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있는가? 아니면 강력한 내셔널리즘 공동체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두가지 질문은 아래와 같은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미국은 중앙아시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제대로 알고는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 채,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시키고, 그럴 것이라도 믿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히 워싱턴이 지금도 위구르족 테러리스트들과 IS 호라산 지부, TTP와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사실은 워싱턴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동안, 베이징은 일관되게 와하비즘과 위구르족 민족주의자들을 탄압하고 있으며, 베이징의 이 같은 행보는 (아이러니하게도) 타림분지의 하나피 학파 신학자들과 시아파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는다. 이처럼 제국은 특정 지역의 소수파들을 뭉쳐 다수파가 되게 함으로써 자신의 지정학적 통치 체제를 확립해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중화제국의 지정학적 통치 구조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제국의 지정학적 통치가 이어진다는 말은 이 지역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분열되었음을 뜻한다. 특히나 90년대 ETIM 진압 과정에서 시아파 주민들이 중국정부에 협력했음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지역의 종파 갈등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뿌리 깊을 뿐만 아니라, 베이징은 이 지역의 종파 대립과 지역 감정을 이용해 자신들의 지정학적 통치를 굳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중앙아시아의 “민족” 개념 자체가 과거 소련과 중국이 자신들의 행정적 편의를 위해 문화적 동질성만 가지고 임의로 설정한 경우도 많기에(우즈베크족, 위구르족이 대표적인 예다)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실상은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슬프게도 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구자들과 기자들 중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이 지역에 대해 아주 추상적인 인식만을 가지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무지하기까지 하다. 신장 지역에 위구르족만 사는 것도 아니며, 모든 위구르족이 수니파도 아니고, 모든 위구르족이 독립을 원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탈레반 또한 마찬가지다. 서구권에서는 탈레반을 와하비즘 단체로 분류하지만, 실상 탈레반 내부로 들어가면 ⓐ부족 습관법에 대한 하나피 학파의 관용과 ⓑ《파슈툰족 습관법》으로 대표되는 파슈툰 부족주의, ⓒ와하비즘의 영향을 받은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가 융합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두라니 왕조 이래 시작된 부족정치와 하나피 학파에 대한 파슈툰족의 오랜 신앙은 탈레반이 IS와 같은 초-극단주의로 치닫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바레인, UAE 같은 아랍권 국가를 통해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중앙아시아 부족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던 아랍권 언론은 파슈툰족 부족주의보다는 알카에다로부터 받은 영향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이 이들을 단순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오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미국은 파키스탄을 통해서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양국 관계가 불편했음을 생각하면 이는 과한 기대일지도 모른다.

오늘밤이 지나고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미국과 나토 동맹국이 아닌 미국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 이란, 탈레반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테러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만을 놓고 본다면 ⓐ중국과 파키스탄, 탈레반은 한 동안 밀월관계를 이어 나갈 것이며,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탈레반에게 몇몇 이권을 양보할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을 관통하는 다양한 철도와 국제도로가 만들어져 러시아∙중국제 상품들이 인도양의 항구까지 안전하게 운반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다음에서야 ⓐ탈레반 집권 하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충돌, ⓑ하자라족 문제에 대한 이란의 간섭, ⓒ이란 또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의 국교 정상화 및 미국의 중앙아시아 재개입 등 이벤트가 발생할 것 같다. 그전까지 중국은 “호라산 벨트”의 최강자로 군림하면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자국의 패권을 확립하고,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러시아와 이 일대를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재개입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이 재개입까지 못해도 20년 또는 30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은 인도차이나와 우크라이나에서의 결투가 아직 남았다는 점이고, 미국의 해상 우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중국도 재작년부터 남중국해에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미국과 중∙러 군사협력체의 남중국해∙우크라이나 각축은 카불에서 우리가 봤던 것보다 더 치열할 것 같다. 환갑이 넘은 노학자들은 갈수록 강력해지는 중국과 러시아에 불안감을 느끼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서서히 와해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이는 분명 그들이 강단에서 가르쳤던 것과는 다른 세계이며, 누구도 이런 세상이 도래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은 하루 하루를 좌절과 고독 속에서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죽음을 향하 나아갈 것이다. 반대로 이제 30대 초중반에 진입한 청년 학자들은 카불 최후의 날을 바라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정답은 없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삼든, 친구로 삼든 우리는 그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불편한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달려가는 자만이 미래의 부를 움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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