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탈레반이 만들어질 당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고 한다.
군벌을 몰아내고, 이슬람 신앙을 회복하며, 과거 무역 중심지로서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오랜 소련과의 전쟁과 군벌들 간의 내전에 지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탈레반의 약속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국제사회로부터 외면 받았으며, 이들에게 친구는 무자헤딘 시절 자신들과 함께 싸운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유일한 친구는 아프가니스탄 땅에 또 다른 재앙을 불러왔으며, 탈레반은 그에 대한 의리를 지키다가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9.11 이후, 격분한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공습했으며, 북부동맹은 탈레반을 몰아내고 칸다하르에 자신들의 깃발을 꽂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항공모함 위에서 전쟁이 끝났다고 외치는 그 순간, 탈레반 지도부는 숨어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외세를 몰아내겠다고 선언했으며, 초인적인 의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은 자신들의 1대 지도자 오마르, 2대 지도자 만수르를 잃고 말았으며, 살아남은 지도자들도 2010년 이전까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 동굴 속에 숨어 지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존엄은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파슈툰족 습관법》의 가르침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외세인 미군과 그 대리인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끝까지 싸웠다. 결국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을 군사적인 방법으로 굴복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음과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외세를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몰아냈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1/08/31/WWO3NAJ3IZBF3KJ7XY3AY3SAC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https://www.news1.kr/articles/?4419228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21/08/20210831431866.html
물론 민요가수 파와드 안다라비를 죽이고, 희극인 나자르 모함마드 카샤를 처형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여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인 와하비즘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세의 대변자였던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무능했고, 탐욕스러웠으며, 시민들의 재산을 갈취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들의 무능력함과 부패는 그래도 나라가 돌아가는 것 같던 탈레반 집권기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고, 마약 판매상들이요 유아납치범인 북부 동맹 출신 군벌들보다는 그래도 마약 근절 시늉이라도 했던 탈레반의 재집권을 강하게 원하도록 만들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830500191&wlog_tag3=naver
정작 우리는 이념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옹호하고, 의식적으로 서구화된 도시민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을 뿐이지, 인구의 3/4가 사는 시골 지역 농민들의 삶에 대해서 놀랄 만큼 무지했으며, 카불에서 이루어지지 몇몇 상징적인 행사들을 통해 우리가 이룬 근대적 업적을 스스로 찬양하기 바빴다. 아프가니스탄 시골에서는 마약에 빠진 청년들이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는 삶을 비관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동안, 카불의 화려한 건물에서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서 파견된 인권 단체 관계자들의 워크샵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이국적인 연사들이 강단에 올라 자신들이 이룬 업적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아프가니스탄 농촌은 병들어갔고 누구도 그들의 삶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담근 술에 취해 있는 틈을 타서 탈레반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금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30001800083?input=1195m
이제 탈레반에게는 마지막 남은 약속이 있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을 다시금 무역 허브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이는 정확히 중국의 “일대일로” 제안과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탈레반의 이 같은 원대한 계획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위치한 여러 나라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예전부터 중앙아시아 경제권을 만들고 싶어했던 중국과 파키스탄, 이란은 탈레반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러시아도 아프가니스탄이 중앙아시아 국가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들과 협력할 준비를 마친 상황이다. 중국과 이란, 파키스탄에 이어 우즈베키스탄도 (타지키스탄과 달리)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에게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나라의 미래는 예전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으며,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의 강도를 예상했음에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끝까지 추진했다. 전임자였던 트럼프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처를 생각해보면, 그는 카불 공항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막연히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831601009&wlog_tag3=naver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은 이제 과거가 됐다. 그리고 오늘 이후, 우리 모두에게는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미래는 우리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본디 이 세상에는 장밋빛 미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오늘보다 좋은 내일을 꿈꾸며 그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만들어가는 더 나은 삶이 있었을 뿐이다.
신의 가호가 아프가니스탄 땅과 그 땅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될 모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있기를.
그간 적은 아프가니스탄 관련 글은 모두 여기 모아두었다.
https://letrleter.tistory.com/m/108
https://www.yna.co.kr/view/AKR20210901005651071?input=1195m
많은 사람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과의 경쟁”을 해외 자원 수요에 대한 변화나 지정학적 페러다임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미국 우선주의”로 비판하거나, 인도차이나 해상에서 중국의 팽창을 저지할 것이라 주장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소련과 했듯이) 중국과 “체제 경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체제 경쟁은 “누가 세계의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의 경쟁이 아니라 “어떤 정치 체제가 다수의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정비 사업부터 군비 예산 감소까지 모두 미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첫번째 임기 중에는 가시적 성과를 볼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정책들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대한 내 생각은 아래와 같다.
①현 동맹 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해상우위를 계속 지켜 나간다(해상우위 유지는 기축통화 지위 유지와 연관 있다).
②불필요한 개입을 줄이는 대신 중국과의 또 다른 “체제 경쟁”을 위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위해 미국 내부 인프라 정비 사업부터 추진한다.
실제로 소비와 관련한 중국 시장 지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경우, (올해 중순 붉은 황제의 잘못된 경제 정책 때문에 경제 지표가 몇 차례 하락한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소비 관련 경제 지표에서 미∙중 간의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중국 내수 시장 규모는 (학자마다 차이는 존재하지만) 미국에 근접했거나 미국을 뛰어넘은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미국의 지도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라 애국심 투철한 지도자라면 누구나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붉은 황제의 과도한 개입주의와 전시 체제 전환을 위한 사회 제도 개혁보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한 표 던져주고 싶다. 적어도 국가 경쟁력과 사회 개혁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바이든 대통령이 옳다.
셰일가스 혁명 때문에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자이한 류 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백악관을 근시안적 집단으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소련과의 체제 경쟁을 경험했거나 직접 참여해 본 적 있는 사람들이고, 체제 경쟁에서 미국의 진정한 우위는 정치∙군사적 우위가 아닌 소비시장과 생활지표에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백악관은 체제 경쟁 승리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영역에서의 우위를 위해 자신들의 역량을 국내로 쏟고 있을 뿐이다. 일단 미국 시민들이 잘 살아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백악관의 이와 같은 선택은 체제 경쟁을 외치는 이상,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아울러 지금과 같이 미국의 해상 우위가 유지만 된다면 중국 해군은 오키나와와 소야해협, 루손해협을 넘지 못할 것이다. 대륙과 지나치게 가까운 타이완은 그들이 팽창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고, 일본과 (일본의 본토 안전이 걸려있는) 우리나라는 오히려 지금과 같은 대치 상황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물론 이를 통일론자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모르겠다).
고로 미국은 지금 당장 중국을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사회 제도적 우위를 확보한 다음, 중동과 중앙아시아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이는 비록 시간이 걸리지만 옳은 일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지금은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할 때가 아니라, 왜 백악관이 이와 같은 결정을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악관의 시선은 지금 당장 중국을 굴복시키는 것에 맞춰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 경쟁”에서의 최종적 승리를 바라보고 있다.
2021년 9월 1일 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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