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극우단체의 기자회견을 보며

계연춘추 2021. 8. 26. 22:27

오늘 탈레반을 피해 우리나라로 오는 특별기여자들이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신문 기사를 읽었다. 이는 도의적으로 당연한 일이며, 우리나라의 국가적 책임감과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권 의식이 예전에 비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오는 길에 마음 졸인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한국 땅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26138452504?input=1195m

'마침내 희망의 땅으로'…한국 도운 아프간인 378명 입국(종합2보)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김동현 기자 =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와 그 가족 378명이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마침내 탈레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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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우리나라의 극우 단체들이 이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26137900004?input=1195m

"이슬람, 여성·어린이 탄압…아프간 난민 수용 반대"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난민대책 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는 26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로 이송된 아프가니스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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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기자회견을 보면서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슬람교가 모든 종교를 배척하는 것도 아니고,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 중국 신장 지역, 말레이시아 등지의 무슬림 여성의 삶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여성과 어린 아이들을 탄압하는 것도 아니다. 와하비즘, 그리고 성전주의에 열광하는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무슬림들은 다양한 인종과 가치관을 가진 자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에 중국 신장 지역의 무슬림들과 몽골족, 만주족과의 공존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파키스탄의 무슬림과 시크교의 공존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이란 정부에서 여전히 조로아스터교를 보호해주는 것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와하비즘과 성전주의에 심취한 일부 극단적 무슬림이 결코 이슬람 세계를 대표할 수 없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여성에 대한 문화적 탄압도 샤리아의 문제인지, 아니면 《파슈툰족 습관법》의 문제인지 따져봐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와하비즘에 빠진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아닌 이상, 무슬림은 결코 여성과 어린아이를 탄압하지 않는다. 이슬람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우리 모두 버려야 한다.

특별기여자들이 탈레반에 협력하거나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에 물들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무려 20년 동안 주둔했고, 실상 40대 미만은 탈레반이 어떤 사상을 지향하는 무력단체인지, 이들의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들의 종족 구성을 모르지만, 일단 한국군에 협력한 이상 ①타지크족, 또는 우즈베크족 등 반 탈레반 정서가 강한 민족 출신이거나, ②파슈툰족 출신이라 해도 반 탈레반 정서가 강한 카불, 헤라트 등 도시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들이 탈레반과 접점을 가질 가능성이 있기나 할까? 나는 이들도 우리와 같이 탈레반과 직접 접촉한 적 없거나, 있어도 탈레반에 대해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도시에서 교육받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기술자일 것이고, 한국인들과 간단한 교류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탈출하는 목적은 너무도 단순하다. 탈레반 치하에서는 평범한 삶조차 위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지형과 부족주의를 생각하면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던 국군 장병들은 이들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난한 지형과 자원 부족, 그리고 부족주의와 종파주의 싸움의 회오리 속에서 우리 국군 장병들은 저들의 도움 없이는 생명이 위태로웠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리고 이제 이들이 다름이 아닌 한국 국군 장병들의 목숨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탈레반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상, 이들을 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의무요, 마땅히 해야 하는 바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지금은 이 나라가 40년 가까운 내전으로 제대로 된 교통 인프라 하나 찾기 어렵지만, 이들의 인구는 이미 4천만 명으로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 제일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농업 생산량 또한 아무다리야강과 카불강이 만든 박트리아, 간다라의 농경지로 인해 최대 2천만명까지 먹여 살릴 수 있으며, 현대 농업 기술이 도입되기만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탈레반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주변국과의 무역을 재개하려 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의 지정학적 패권 확립을 위해 이 땅을 지나가는 도로와 파이프라인을 건설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구상이 실제로 이루어질 경우, 이 나라는 시베리아 남부 공업지대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빠른 경제 성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가진 땅에서 우리나라의 가치관과 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특별기여자들이 정치적 보복을 피해 한국 땅에 왔다. 이들이 훗날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자산이 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먼 훗날 이들의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본다. 미래 국가 전략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울러 아무리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혹한 《파슈툰족 습관법》이라 할지라도 손님에게는 반드시 최선을 다하며, 병들고 힘든 자를 돕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래야만 실크로드 무역로를 이용하는 상인들이 아프가니스탄 땅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고, 상인들의 왕래를 통해 이 땅은 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약자를 버리지 않고, 다친 자를 보호하며, 자기 집에서 쉬고 있는 손님을 위해 자기 목숨도 버릴 줄 아는 아름다운 미덕을 배우고 자란 자들이다. 오히려 현대 사회의 각박한 삶에 지쳐 최소한의 인간성까지 포기한 우리는 이들에게서 배울 점이 너무나도 많다.

오히려 저런 극우적인 목소리와 이들에게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회 분위기야 말로 저들을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매질이다. 이제 갈 곳 없는 저들에게 쇼비니즘적인 차별과 모멸의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국 땅에 희망을 품고 온 저들은 결국 우리로 인해 이 땅에서의 삶에 절망할 것이고,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절망감을 표출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파슈툰족 습관법》에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접대하라고 가르친다. 한때 우리 국군 장병들은 저들의 손님이 되어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이제 우리가 저들에게 보답해야 될 차례가 아니겠는가? 비록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을 대하는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파슈툰족이 됐으면 좋겠다.

고생하셨고 편히 쉬다 가시라. 그리고 감사하다.

2021년 8월 26일 익명의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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