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나지불라와 가니, 그리고 고르바초프와 바이든: 탈레반의 가즈니 함락 소식을 듣고

계연춘추 2021. 8. 12. 20:01

오늘 신문을 보니 탈레반이 가즈니를 점령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만일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제 탈레반 재집권을 기정사실화해도 될 것 같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2118700077?input=1195m

파죽지세 탈레반, 아프간 카불 150㎞ 인근 도시까지 장악 | 연합뉴스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최근 미군 철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빠르게 점령지를 넓혀가고 있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www.yna.co.kr


중국 내에서는 이와 같은 결과에 당혹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 같다(비록 아프가니스탄 내정 간섭을 꺼리는 중국이지만 세속주의 정권을 좋아하다 보니 내심 아프가니스탄 토호국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반길 리 없다). 3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가니 행정부는 탈레반의 공격에 무기력했고, 미군의 공중 지원 없이는 자신들의 보병이 아무런 공세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없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카불 지근거리에 있는 대도시 가즈니의 함락은 이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이 언제라도 탈레반에 의해 점령당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그나마 충성하고 있는 지역은 (탈레반 재집권 시 대대적 탄압이 예상되는 시아파 민족) 하라자족 거주지와 카불강 유역, 그리고 아무다리야강 상류에 위치한 몇몇 도시에 불과하다. 고대도시 발흐 유적지에서 남동쪽으로 20km 떨어진 마자르-이-샤리프는 이제 탈레반에게 포위되었으며, 언제 함락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또 다른 상징적 도시인 칸다하르와 헤라트 또한 탈레반에 포위된 상황이고, 이들 도시의 운명도 예고된 것(탈레반에게 점령)이나 다를 바 없다.

실은 탈레반 재집권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들이 상당 기간 미국과 인도, 터키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돕고, 이를 통해 중국의 서부 지역을 압박하려 했던 미국의 쿼드 구상은 이로서 실패를 선언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지정학적 경쟁 과정에서 이란, 아프가니스탄 정부와의 연대를 통해 파키스탄을 내륙지대로부터 포위하고,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이란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자국까지 끌어오려 했다. 이 때문에 인도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탄약을 제공하는 등 마지막까지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정책에 협조했지만, 인도의 군사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의 팽창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파키스탄은 승자의 위치에 서서 인도 정부에게 자국의 지정학적 우위를 인정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된 파키스탄과 인도의 중앙아시아 경쟁은 이제 파키스탄의 승리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

※ 중국과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 붉은색 선은 중국의 중앙아시아-인도양 진출노선, 노랑색 선은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노선이다.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 거점은 이란의 차바하르 항이며, 중국의 인도양 진출 거점은 과다르 항이다.

물론 미래 일은 예측할 수 없다. 비록 지금 탈레반이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재집권 하더라도 파키스탄 정부와의 공조를 한동안 이어가지만, 곧 아프가니스탄 내 파슈툰 부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남은 상징적 도시 페샤와르 수복을 요구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부의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중국의 지원을 받던 월맹이 베트남의 지배자가 되자마자 중국과의 전쟁도 불사한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의 지배자가 된 탈레반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탈레반은 ETIM 계열을 지원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이벤트는 발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까운 시일 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라 볼 수 있다.

나는 가니 행정부의 무기력한 군사적 대응을 보며 과거 소련의 꼭두각시로 평가받던 나지불라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게 됐다. 소련군이 철수한 다음 나지불라가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무자헤딘과의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자헤딘과의 싸움을 무려 4년이나 이어갔다. 만일 소련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최후 승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지불라 주도 하에 무자헤딘 다수 계파가 참여하는 연합정부 구성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다. 미군 철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무너지는 가니 휘하 정부군과 비교해보면 나지불라 휘하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정말 잘 싸웠고, 소련의 철군 계획 또한 (분명 비판받을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물론 가니 대통령을 위해 변명하자면 나지불라가 상대한 무자헤딘은 여러 계파로 분열된 무장 집단인데 반해 가니 대통령이 상대하는 탈레반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조직이다. 당연 나지불라가 구사했던 무자헤딘 내부 계파 간의 정치적 대립을 이용해 이들을 분열시키는 술책은 아쿤드자다 중심으로 뭉친 탈레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는 미국이 소련보다 더 강력한 적(탈레반)을 눈앞에 두고도 소련보다 더 무책임한 철군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정국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은 다음, (사전에 별도의 검토 없이) 크리스마스(2020년 12월 25일) 전에 미군 전원 철수를 선언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 현실성 없는 철군 계획에 대해서는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도 비판했으며, 탈레반 지도부조차 현실성 없다 생각했는지 최종적으로 철군 유예기간을 2021년 9월까지 늦춰줬다[1]. 그리고 탈레반은 자신들이 선언한 기한을 넘기자마자 정부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으며, 미국이 약속대로 철군하지 않으면 정부군을 상대로 하는 군사적 공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협박했다.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혹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무책임한 철군 계획이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불렀다고 주장하는데, 이 사건을 쭉 지켜본 내 생각을 말하자면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크리스마스 철군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멋대로 맺은 평화협정 때문에 미국의 정치적 선택지는 좁아진 상황이었고, 어찌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미국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에 따라 행동한 흔적이 역력하다. 나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문제에 있어 비판받아야 할 사람이 비판받지 않고,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고 노력한 사람이 비판받는 상황이 불편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를 나무라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프가니스탄 철군은 세계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탈레반의 지도자 아쿤드자다는 아프가니스탄의 국부로 추앙받게 될 것이고, 우리 자녀 세대는 역사책에서 미국의 또 다른 전략적 패배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의 싸움을 관망하던 중국과 파키스탄은 재빨리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고, 대 인도 포위망을 완성하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아시아에 마지막 남은 친 인도 성향 국가인 부탄에 대한 압박이 가중될 것이며,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정부, 그리고 태국 왕실과 군부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치∙경제적 지원은 노골적으로 커질 것이다. 비록 베트남이 남아있지만 푹 주석의 가정사(그의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은 미군 및 월남군과 관련이 있다)와 그간의 정치 성향으로 보아 이들은 아마도 미∙중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이 과정에서 베트남과 일본은 동맹에 준하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태국과 방글라데시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보한 중국은 이제 자신들의 병력을 타이완 해협에 집결할 것이며, 아마도 그 수는 그간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100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로 중국 서쪽 방면의 안보 위협이 사라진 이상, 100만 대군 동원 시나리오는 이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의 붉은 황제는 대규모 병력을 모아두고 미국과 서태평양 집단안보체제 국가들에게 100만 대군에 준하는 병력을 타이완 해협에 파병할 수 있을 것인지 물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순간, 붉은 황제의 대군은 타이완을 공격할 것이고, 우리는 중국을 해상 봉쇄하는 것 외 현실적인 대응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타이완 함락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우리 모두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패권이란 무엇인가? 패권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영국의 지정학자 페어그리브(Fairgrieve)가 《지리와 세계 패권(Geography and World Power)》에서 내린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그는 역사 자체를 인간이 자원에 대한 지배력 강화로 이해했으며, 패권이란 바로 자원에 대한 절대적 내지는 배타적 권리라고 이해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자원은 생산에 소요되는 자원에 국한되어 있으며, 지리 공간에 대한 지배는 한 나라가 지배할 수 있는 자원(잠재적 자원을 포함한다)의 총량과 일치하기에 이들은 자원 분포와 더불어 전세계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지정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심장지대 장악과 해상 패권 모두 바로 이와 같은 자원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시된 방법론이다.

1944년, 미국의 지정학자 스파이크먼은 다가올 영국과 소련과의 지정학 경쟁에서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반월지대”의 지배자가 세계의 지배자라는 공식을 제기했다. 이와 같은 방법론이 제시된 까닭은 당시 “심장지대” 패권과 해상패권 모두 소련과 영국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안보위협은 항상 “반월지대”를 장악한 나치 독일과 일본 같은 세력으로부터 왔다는 현실적인 고려도 있었다. 그리고 트럼프 당선 이전까지 미국의 전략가들은 스파이크먼의 지시에 따라 “반월지대” 패권 확립에 최선을 다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연대를 통해 소련을 압박하는 패권 지배 방식을 구상했다. 키신저와 브레진스키에 의해 구체화된 이 방법은 실제로 유효했으며, 냉전 최종 승자라는 영예는 대다수 반월지대 국가들의 지지를 받은 미국의 전리품이 됐다.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은 스파이크먼이 설계하고 키신저와 브레진스키에 의해 구체화된 정교한 지정학 기계와도 같다. 이 기계의 설계자는 ①심장지대의 분열과 ②반월지대(림랜드)에서 미국의 절대적 우위, 그리고 ③중요한 포인트(홍해, 말라카 해협)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주문하고 있으며, 상술한 세 가지 조건이 깨질 시, 미국은 전세계적 패권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 반월지대에서 연이은 정치적 패배로 인해 미국은 “세계섬” 주도권을 점차 중국에게 빼앗기게 됐으며, 베이징 지도부는 자그로스 산맥에서 천산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하고 있다.

나는 미국의 지정학적 패권이 와해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한 정치인의 정책적 실수가 얼마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트럼프의 외교적 실수를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①키신저와 브레진스키가 설계한 중국과의 지정학적 연대를 파괴한 것.

②이란의 전쟁 영웅 솔레이마니를 죽임으로써 이란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③사사로운 감정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고 비현실적인 철군 계획을 주문한 것.

④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와중에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고 유지함으로써 중∙러 군사협력체를 완성케 한 것.

⑤터키와의 관계를 유사이래 최악 수준까지 악화시켜 터키로 하여금 중∙러 군사협력체와 가까워지게 한 것.

⑥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무책임한 철군 계획을 지시하고 이와 같은 계획에 반대한 메티스 장관을 사임케 한 것.

⑦독일, 프랑스와의 대립을 통해 유럽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것.

⑧아무런 성과도 없을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한 것.

⑨태국 왕실 및 군부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스리랑카를 친중 성향의 라자팍사 가문에게 넘긴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미국의 지정학적 패권 상실과 중∙러 군사협력체와의 정치적 대립”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 카불 시내에 위치한 풀리키시티 모스크의 미나레트 위에 탈레반의 흰색 깃발이 나부끼게 될 것이다. 이 깃발의 의미를 단순히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몰락이라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는 스파이크먼의 《평화의 지정학》이 출간된 이래 유지되어온 “세계섬”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지배의 종언이자, 일원 체계의 세계질서에서 “심장지대” 국가와 “해양세력” 국가의 지정학적 대립으로 넘어갔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깃발이 미나레트 위에 나부끼는 것을 보는 순간, 새로운 시대에 맞이하게 될 정치적 도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미래 결정권을 다른 나라에게 빼앗기는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1] 물론 트럼프와 탈레반이 맺은 도하 평화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 5월 1일까지 미군 및 나토군 철수를 약속했다. 대신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단체와의 관계를 끊기로 했는데 실제 지켜졌는지는 알 수 없다. 나중에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 시기를 9월로 늦추자 탈레반은 여기에 맞춰 유예 기간을 다시 9월로 늦췄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705_0001500499&cID=10101&pID=10100

탈레반 "외국군, 시한까지 철수안하면 위험 처할 것"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외국 군대를 향해 오는 9월 철수 시한까지 전면 철수할 것을 강조했다

www.newsis.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