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국내 지정학자들의 연구방향성 문제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계연춘추 2021. 7. 14. 12:43

국내 연구진이 쓴 지정학 연구서를 보면 마음이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정학은 단지 지도 그려 놓고 정치적 요소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니다. 비록 나 또한 지정학으로 학위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 분야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보니 몇몇 지정학 고전들과 연구서들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내가 아는 지정학과 한국에서 말하는 지정학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지정학은 ⓐ공간적 특징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이와 같은 공간적 특징이 미치는 정치, 경제, 문화, 교통, 종교, 인종분포 등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다음, ⓒ전략 층위 분석에 기초해 이 지역의 지정학적 성격을 부여하며, ⓓ이와 같은 지정학적 성격이 정치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지리적 특징 외에도 역사, 정치, 인종분포, 교통 인프라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하며, 다자 간의 연결관계에 대한 추론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지리적 요소에 기초해 만들어진 공간적 특징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논증이 오늘날 지정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실효지배 영역이 너무도 작을 뿐만 아니라, 인종도 단일화되어 있다 보니 지정학과 같은 학문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나 다를 바 없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지정학 같은 학문이 생존하는 길은 만주 “레벤스라움(생활권)” 같은 극우적인 사상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지정학을 다룬다고 자칭하는 자들의 글을 보면 상당수 정치적 현상에 대한 공간적 분석(오늘날 지정학이 존재하는 이유)이 아닌 대륙 진출이라는 허황된 꿈을 만족하려는 허황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건강한” 지정학은 성장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지정학적 분석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가 직면하게 될 현실은 한국을 위한 독립된 지정학적 공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미국과 중국,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이 규정하는 공간적 세계질서에 예속된 분열된 국가임을 인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정치적 구호들과 내셔널리즘적 상상에 가려진 국제질서의 잔혹한 면을 보여준다. 이 학문은 그만큼 잔인하고 현실적이다. 지정학은 강자에게 공간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만, 약자에게는 순응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알려준다. 솔직히 말해 한국의 독자적 공간을 위한 지정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정학은 그런 노력을 비웃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지정학은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바로 ①조선족의 중국내 영향력을 과대 평가하고, 만주 지역을 자국의 “레벤스라움”으로 삼아 제국으로 성장하자는 극우적 주장과 ②강대국의 정치적 행위와 지리적 조건 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지정학적 대립 구도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공간적 위상을 확인하는 현실주의 노선이다. 한국에 필요한 지정학은 당연 후자다. 우리의 공간적 위상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만 정치∙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진단도 가능하고, 이 같은 공간적 특징에 따른 현실적인 전략 목표 수립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 중요한 공간적 위상 진단이 생략된 상태(심지어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일본보다 높다”고 답을 정한 다음 여기 맞춰야 한다는 식이다)에서 ①한국의 “레벤스라움” 확보 당위성을 설파하거나 ②한국의 군비확충이 미국의 중국 억압 전략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중국과 육상에서의 전면전만은 벌이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와 중국군의 MD체계 개발 현황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있다. 실은 이쯤 되면 국내 연구진의 지정학 연구는 학술적 연구라 말하기보다는 아이들이 백지도 위에 국경선을 그린 다음 “여기까지 내 땅”, “저기까지 내 땅”이라 말하는 놀이나 다를 바 없다. 당연 놀이에서 어떤 현실적인 대안도 나올 수 없다. 그것은 놀이이며, 허구적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거의 없다. 마한 제독 이래 미국 학자들은 필리핀, 괌, 사이판, 폴리네시아, 일본 등을 자국의 방어권으로 설정했으며,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 강화만이 미국 서부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다 믿었다. 그리고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미국 안보보다는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본의 본토 안전 확보와 연동되어 있지, 한국에 무기를 아무리 배치한들 베이징에서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히려 오키나와와 큐슈, 타이완에 미사일 화력을 집중시킨 다음, 중국의 경제 중심지인 상하이를 위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반도에서 베이징을 미사일로 위협해봐야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지도부를 서쪽 시안이나 충칭으로 이동시킨 다음 계속 항전할 것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의 인구 50만 이상 되는 도시들을 한꺼번에 파괴시킬 수 있는 핵무기들을 백 단위로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30분 안에 지도 상에서 사리지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군사적 도박을 감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문제는 국내 “일부” 군사 전문가들이 이런 위험한 구상을 지지한다는 점 아닐까).


미국은 한국을 위해 중국과의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의리의 문제이기보다는 군사 비용 문제고, 미국 본토 안전과 관련해 이 나라가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현실주의적 판단에 입각한다. 중국 또한 북한과 미국의 전면전이 일어날 시, 대동강 방어선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미국이 북한 정권에 어떤 일을 해도 묵인할 가능성이 크다. 이 사실을 알았던 북한은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에 힘썼으며, 사실상 핵무기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미∙중∙러 사이의 긴장 완화가 가져온 평화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①미국 본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선인 일본 본토와 ②중국 본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선인 대동강 사이에 위치해 있으면서(위 지도를 참조하라) 미∙중 대립을 불안하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양국 간의 완충지대 역할을 스스로 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완충지대 역할을 위해 ①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보장하는 한미 동맹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②동시에 중국을 자극하는 어떤 군사적 행위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중국 측에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주도 하의 기술 동맹과 기후 문제 대책, 인권과 관련해 폭넓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음을 시인하고, 미국의 전세계적 우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 하의 기술 동맹∙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홍콩, 타이완, 신장 문제에 대한 중국의 특수성을 존중하며, 쿼드와 같은 대 중국 포위망에 일체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경제 협력∙민간 교류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워싱턴과 베이징에 전달해야 한다. 지정학적 대립이 격화될수록 우리의 국가 안보는 전략적인 요인보다는 전술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이며, 우리가 얼마나 전략적 일관성을 가지고 이런 정책을 견지하는지에 따라 미∙중 양국은 우리를 완충지대라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우리는 미국의 동맹 자격 문제 제기와 베이징의 불신 속에서 3-4년을 보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 국내 지정학자들의 글을 보면(여기에 더해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몇몇 재미있는 유튜브 동영상도 봤다) 답답하다. 우리는 지정학적을 내셔널리즘적 망상을 충족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아니된다. 지정학은 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여기에 기초한 전략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학문이며, 이와 같은 목적에 충실해야 지정학은 비로소 강대국에게는 세계 패권의 방법을 알려주고, 약소국에게는 생존의 법칙을 알려주는 학문이 될 수 있다. 만일 지금처럼 지정학이 ①우리의 공간 가치를 높이고(ex. 중국 견제에 반드시 필요한 한국 운운), ②“레벤스라움” 확보의 당위성(ex. 고토 수복, 만주점령 등)을 설명하는 학문이 된다면 이 양날 검은 우리의 동맥을 찌르고 과다출혈을 유발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그간 국내 지식인들은 지정학이 아닌 학문을 지정학이라 믿으면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또는 지정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정학적 가치를 외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지정학적 대립 구도가 다시금 도래하는 지금, 국내 지식인들의 “아는 척”은 문제 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공간적 위치를 파악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며, 이들의 충돌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전쟁을 피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정학을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데 사용하기보다는 우리의 현실적인 위치(미∙중관계의 종속변수)을 고민하는 도구로 사용할 때, 지정학은 비로소 우리에게 생존할 수 있는 출구를 제시하는 학문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미국 중심의 대서양 동맹체제, 서태평양 집단안보체제와 중∙러 군사협력체 사이의 지정학적 대립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성장과 번영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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