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지정학적 연구방법론에 대한 단상 (캐나다 앨버타주 미연방 가입설 분석 예시)

계연춘추 2021. 7. 19. 18:22

지정학은 지구 자연환경 조건과 정치행위와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때문에 지정학은 산맥과 하천, 그리고 사막과 습지, 경작지 및 자원 분포 등 자연환경 요소가 인간의 정치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지정학 연구자는 반드시 공간의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이와 같은 이해는 공간의 지형적 특징과 인간 행위의 상관성에 기반해야 한다. 물론 전통적인 지리학(또는 정치지리학)과 지정학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다름 아닌 양자가 세계를 접근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정치지리학을 포함한) 전통적인 지리학은 단순히 자연환경이 인간 활동에 미치는 영향만을 분석한다면(《총균쇠》가 여기 해당한다 볼 수 있다), 지정학은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공간적 통일체로 보고, 이와 같은 통일체 내부 구성요소 간의 유기적 관계를 연구한다(지정학적 전략분석을 생각해 보라). 그래서 지정학자들은 일반적인 정치지리학자들과 달리 자연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현상을 연구대상이 아닌 지정학적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식하며, 이와 같은 요소들이 어떤 상호 작용을 통해 정치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연구한다. 그래서 자연결정론으로 발전하기 쉬운 정치지리학과 달리 지정학은 인간 군집의 정치적 활동과 자연환경 간의 관계성에 치중하며, 더 나아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미래 청사진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정학은 자연이 인간 행위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①이권 충돌의 주된 요인인 자원 분포와 ②국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교통망, ③국가의 생존에 필요한 공간의 군사적 이점을 다루게 된다. 흔히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라 할 때는 주로 공간의 군사적 이점을 염두에 두고 발언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지 않아도 미국 본토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하등 없지만 말이다).

간혹 보면 국내 교수들 중에서 수업 시간에 지도 한 장 가져온 다음, 이 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생략하고 바로 미사일 투사거리와 잠재적 적국의 정치 중심지와의 거리를 보여준 다음 지정학적 분석이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는 지정학적 분석이 아니라 군사지리학적 분석이다(물론 중국과 러시아처럼 “심장지대”를 차지한 핵무기 보유국의 생존문제가 걸린 경우, 지정학적 문제라 볼 수 있다). 우리는 교두보 국가이고, “심장지대(구 소련, 중국)” 또는 “행운섬(미국)” 국가도 아닌데, 우리의 미사일 사거리 문제를 놓고 지정학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나 싶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다룰 때, 아프가니스탄 지도 하나 가져다 놓고 “테러리즘이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지정학적 주장이라 볼 수 없다. 지정학이라면 일단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성격을 규정한 다음(ex.: “심장지대”에서 반월지대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 이 일대를 관통하는 주요 교통로와 이 같은 교통망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지리적 요인을 분석한 뒤에 비로소 주변국의 정치제도, 인종, 문화 등 요소와 결합해 테러리즘 문제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지도 한 장 가져다 놓고 이 일대의 지형과 교통로, 인종분포도 전혀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가치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이 학문의 본질을 망각한 행위다. 지정학은 지구를 하나의 통일체로 이해하며, 이 통일체에서 일정 공간을 점유한 국가 내지 문명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한 다음, 특정 국가의 정치 문제 해법을 논하는 학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내 지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지정학에 대해 묻는 이들도 몇몇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 또한 지정학으로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고, 공부하다 보니 필요해서 책 몇 권 읽은 것에 불과해 누군가에게 지정학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지정학적 방법론을 가르쳐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함께 배우는 입장이니 서로 올바른 방법론에 대해 고민해 보자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내가 확인한 바로는) 우리나라에도 스파이크먼, 브레진스키, 프리드먼, 자이한 등 지정학자들의 책이 번역된 상황이니, 이들이 쓴 책을 보면 이 학문에 접근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중에서도 스파이크먼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 미국의 대외 정책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브레진스키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외 정책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일독을 권하는 바다(중∙러의 긴밀한 협력은 사실상 브레진스키의 비웃음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지정학적 연구를 어찌 진행해야 할까? (나도 잘 모르지만 몇 마디 써보자면) 일단 우리가 연구하는 국가 또는 공간의 자연환경적 특징에 대해 고찰하고, 해당 공간과 인접한 지역 간의 유기적 관계(인종 분포, 자원 의존, 경제 순환구조에서의 역할, 공간의 군사적 이점)를 파악한 다음, 해당 지역의 지정학적 성격을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공간의 지정학적 성격을 규정한 다음, 이 공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이벤트를 예측한다. 이 때문이 지정학은 어렵고, 국내에서는 그다지 실용도 높은 학문이 아니기에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다. 당연하지만 지정학이 유행했거나 체계적으로 소개됐던 나라들도 보면 미국이나 중국, 프랑스, 독일 등 자신의 의지대로 공간을 규정할 수 있는 강대국들이지, 우리나라와 같이 자신의 의지를 공간에 투영할 수 없는 나라에서 지정학이 체계적으로 소개된 적은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경우, 지정학을 지리결정론이라 곡해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는 지정학과 정치지리학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발생한 오해라 봐야한다. 왜냐면 지정학은 정치지리학과는 달리 인간의 의지가 지리적 공간에 투영될 수 있으며, 지리적 공간 간의 유기적 관계는 인간 의지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정학 또는 유사지정학은 다름 아닌 고토 수복이나 만주 정벌 같은 “레벤스라움(생활권,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만주 생활권 언급했을 당시 내가 놀란 이유기도 하다)”을 연상하게 하는 극우 담론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극우적인 담론 외에는 우리나라가 스스로의 의지를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상 한국을 위한 독립된 지정학적 공간은 없다고 이해하는 편이 맞다.

그래서 한국인으로 태어나 지정학을 접하거나 배운 자들이 애국자가 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지정학은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공간적 의지에 예속되어 있으며, 우리의 의지를 투영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우리 같은 나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①해양 국가가 되어 세계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거나, ②주변 강대국(중국, 러시아, 일본)의 위성국이 되어 자원과 노동력을 침탈당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지신인 사회에서는 지정학을 올바른 학문적 방법론이 아니라 부정하거나, 지리결정론이라 곡해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정학은 그들이 가장 외면하고 싶은 현실(경제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스스로의 의지를 투영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도 않고 실현될 수도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정학은 힘을 숭배하며, 스스로의 공간을 개척할 능력이 없는 나라의 의지를 최소화하거나 무시한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국가들의 공간 확보 의지를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는 지정학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베트남 전쟁을 생각해 보자).

그럼 지정학은 어떤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하는가? 마침 캐나다 앨버타주가 송유관 무산으로 바이든 정부를 고소한 사건이 이슈가 되고 있으니, 앨버타주 독립을 예시로 들어보자. 자이한은 미국이 앨버타주 독립을 지지함으로써 캐나다를 해체하고, 나아가 캐나다 개별주를 흡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앨버타주와 미국 네브래스카주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인 “키스톤 XL”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당연하지만 지정학자라면 ①일단 앨버타주의 자연환경 조건을 살펴볼 것이다(그레이트 플레인스의 북단). ②이어 앨버타주의 자원분포(캐나다 중부 석유 산지)와 경제적 가치(캐나다 GDP 17% 차지), 그리고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 정치적 성향(웩시트 운동)과 인종 분포(타 지역에 비해 원주민이 많이 사는 편이다) 등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다음에 ③이 지역이 지정학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상술한 문제들에 대한 정보를 모은 다음, 우리는 아래와 같은 순서에 따라 앨버타주 미연방 가입 문제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① 주장을 제기한 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지정학자 중에서도 자이한은 (프리드먼과 다르게) 자원에 치중하는 성향이 강한데, “앨버타주 미연방 가입” 이벤트 또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자원을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이한의 의중을 잘 드러내고 있다.

② 이와 같은 지정학적 현상(여기서는 캐나다와 미국의 현재 국경선 유지)이 유지된 까닭은 무엇인가?
→지리적인 조건에 의해 확정된 것이 아닌 정치적 필요에 의해 확정된 기하적 국경선으로 대영제국이 강력했을 당시에는 영국의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 때문에 유지되었으며, 이후에도 영연방 제국과의 관계와 소련과의 완충 지대로 남겨진 측면이 있다.

③ “지정학적 행위자(여기서는 앨버타주를 병합하려는 미국)”는 “지정학적 경쟁자(앨버타주를 지키려는 캐나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목적을 이룰 현실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앨버타주와 미국 사이에 장애물이 될 만한 어떤 자연 지형도 없을 뿐만 아니라(오히려 그레이트 플레인스가 엘버타주까지 이어진 상황이라 자연환경만 보면 자이한의 주장대로 미연방의 일부가 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이기까지 하다),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역량을 생각하면, 이벤트 발생 시 개입이 예상되는 캐나다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을 모두 격퇴할 수 있다. 심지어 앨버타주의 지리적 입지(캐나다 대륙 한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로키산맥이 러시아와 태평양을 통해 접근하려는 해양세력의 개입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를 생각해 보면 러시아와 영국이 적시 개입하기도 전에 미국에게 합병당할 가능성이 있다.

④ 예상되는 통치비용은 높은가? 낮은가?
→웩시트(Wexit) 운동으로도 알 수 있듯이 앨버타주의 독립운동 성향은 타 지역에 비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주민들 가운데 여전히 캐나다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앨버타주에서 독립을 지지하는 주민은 30%에 불과하다), 독립을 주장하는 자들도 미연방 가입을 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 지역의 강제 병합 추진 시, 5-10년 간 높은 통치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⑤ 다른 지정학적 강자들(러시아, 중국, 영국, EU)의 반응은 무엇인가?
→앨버타주의 이탈이 캐나다라는 거대 중간지대의 소멸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러시아는 이들의 미연방 가입을 극구 반대할 것이며, 심하면 영국을 도와 군사적 개입을 할 수도 있다. 영국의 경우, 당연히 미국의 이와 같은 정치적 행위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심하면 높은 수준의 군사적 개입도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앨버타주 강제 병합에 반대하면서도 실제로는 (미 정부에 협력해) 앨버타주 석유 개발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⑥ 이를 위해 “지정학적 행위자(미국)”는 실질적인 행동을 취한 바 있는가? 당시 “지정학적 경쟁자(캐나다)”의 대응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의도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앨버타주와 네브래스카주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키스톤 XL”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이 경우, 앨버타주의 미국 경제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앨버타주가 실제로 독립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에 이에 반대하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파이프라인 계획을 취소한다고 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⑦ 이와 같은 행위를 감행하게 될 시, 직면하게 될 정치∙안보 도전은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은 “지정학적 행위자(미국)”의 본토 안전에 충분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가?
→미국 북부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단 캐나다 서부 해안에 위치한 BC의 경우, 캐나다에 남으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앨버타주 분리주의 운동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하다. 이 때문에 앨버타주가 독립한들,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이나 캐나다에 기형적으로 의지하는 속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역으로 캐나다는 이로 인해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해체를 두려워하는 영국과 러시아의 개입만을 불러와 (그나마 안정적이던) 미국 북부의 정치적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으며, 심한 경우 러시아와 영국의 동맹(또는 그에 준하는 군사 협력)이 맺어질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미국은 기존에 영연방 국가들에게서 받던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할 정치∙군사적 비용 또한 천문학적일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앨버타주의 미연방 가입으로 생기는 경제적 이익보다는 기존 동맹국과의 관계 불편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정치∙군사적 비용이 더 크다. 앨버타주를 병합하는 것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큰 정치적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⑧ 이와 같은 행위를 감행하게 될 시, 얻게 될 경제적 이익/손실은 무엇인가? 만회할 수 있는가?
→앨버타주의 석유를 얻을 수 있지만 캐나다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데 드는 비용과 영국, 나아가 유럽과의 관계가 불편해짐으로서 생기는 경제적 손실이 너무도 큰 고로 이익보다는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더 크다고 단언할 수 있다.

⑨ 이상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시, 상술한 주장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
→(현행 국제질서가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캐나다의 해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앨버타주 미연방 가입 이벤트는 발생 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고, (심한 경우) 러시아의 북아메리카 개입을 불러올 수도 있기에, 지금 단계에서는 앨버타주와 미국의 경제적 관계를 돈독히 하는 선에서 끝내며, 이 이상의 정치적 행위를 감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이처럼 지정학은 자연환경과 자원 분포, 그리고 국가의 공간 확대 의지와 지정학적 이벤트 발생 시 직면해야 할 새로운 안보 도전 등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정학에서 국가는 행위자이자 자원과 노동력, 경제적 부를 위해 자신의 공간을 확장하며, 이와 같은 국가의 행위는 자연환경의 제약을 받거나, 자연 경계에 따른 국경선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나 지정학적 행위자로서 국가는 자신이 설정한 국경선 안에서 자급자족한 경제를 이루기를 원하고, 이와 같은 의지는 이들로 하여금 일정 공간의 자원을 독점하는 제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반대로 자신의 의지를 투영할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나라들은 ①국가 간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세력이 되거나(ex. EU) ②강대국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거나(ex. 몽골,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③주변 강대국의 위성국이 되거나(ex. 아프가니스탄, 북한) ④완전히 흡수되는 미래만을 제시한다(ex. 텍사스). 지정학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투영할 공간조차 없는 나라의 국민들에게 인내하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지정학은 국가 간의 평등한 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강대국, 그것도 일정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강대국만을 위한 학문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지정학은 강대국이 아닌 나라에게도 생존의 방법을 알려주며, 그들의 의지를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특히나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머지 대륙에서 독자적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나라들에게 지정학자들은 바다라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라 권하며, 해상에서의 위상 강화를 통해 심장지대 또는 반월지대 국가와는 또 다른 공간을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와 같은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확보한 공간의 군사적 이점을 이용해 주변 강대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다가 이들에 의해 흡수되거나 소멸하고 만다. 그래서 지정학은 불편한 학문이다. 이 힘을 숭배하는 학문은 강대국의 시민이 아닌 이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면서 국가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불편한 질문 앞에 인간의 태도는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①지정학적 교훈을 부정하고, 현실적인 힘보다는 자신들의 의지로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독자적 “생활권” 형성을 꿈꾸는 자들과 ②지정학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해 주변국과의 정치적 연대체를 구성하거나, 완충지대 역할을 자임하는 경우다. 항상 문제는 한 국가가 내셔널리즘에 빠져 지정학적 교훈을 무시하고 정치적 무리수를 둘 때 일어난다. 무엇보다 지정학은 (강대국이 아닌) 나라가 스스로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정치적 무리수를 둘 때, 어떤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적 요인과 여론으로 인해 정치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경우, 최악의 상황(국가의 멸망 내지는 위성국 전락)에도 직면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 때문에 나는 이 불편한 학문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학문은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출구를 제시하지만 동시에 견디기 어려운 불편함도 준다. 그럼에도 이런 불편함을 이겨내고 들어가는 순간, 지정학은 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길은 한 국가의 부국강병의 꿈을 실현해줄 수 있는 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에게 지정학적 결론을 강요할 수는 없다. 여전히 국내 여러 학자들은 정치지리학과 지정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정학을 지리결정론으로 오해하는 상황 속에서는 지정학의 가르침에 이들이 귀 기울일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경제적 잣대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 특성상, 지정학적 가르침을 거부할 수도 있다. 지정학은 자신들이 아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은 제국체제를 유지하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마지막 유럽식 제국 소련의 해체를 경험한 러시아와 삼지대론에 입각해 새로운 지정학 강자로 떠오르려 하는 프랑스와 독일 등 강대국들이고, 우리는 이들의 이합집산 속에서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 또는 미국 중심의 서태평양 집단안보체계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을 받아들일 때, 지정학은 비로소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미래를 개척하라고 일러줄 것이다.

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 새로운, 그러나 강력한 나라가 한반도에 만들어지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끝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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