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군사공동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을 때, 지인들은 나에게 미국이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통해 “심장지대”에서 중국을 압박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아래와 같다.
① 브레진스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재차 점령하기 이전까지 아시아 국가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리라 봤다. 만약 서방 대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집결한 다음, 볼가그라드(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고 볼가강 중심의 내륙 수로까지 위협하면 러시아는 즉시 항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푸틴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드네프르강을 경계로 하는 새로운 방어선을 원할 것이다.
② 푸틴은 집권 초 오래지 혁명을 묵인함으로써 옐친 시대에 비해 러시아의 방어선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편입시킨 푸틴의 정치적 움직임으로 보아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가 서양 진영에 들어가는 것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③ 만일 러시아가 옐친 시대 방어권을 회복하고(벨로루시, 우크라이나 국경),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을 포함한 새로운 연방을 만든다면 러시아는 과거 소련의 위상을 회복할 것이며, 중국, 우즈베키스탄과 시르다리야 강을 경계로 내륙지대에서 대립할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가 과거의 위상을 회복할 경우, 과거 소련과 같이 폴란드와 발칸반도 제국諸國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고,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러시아 연방의 정치적 영향권 아래 들어갈 것인데, 미국이 이를 용인하겠는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④ 하물며 중국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원하는 것은 자원과 내륙 시장이며,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중앙아시아 5개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유지다(적어도 지금까지 양자는 충돌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2000년대 지정학에 입각한 중앙아시아 진출을 계획할 당시, 이미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정치적 우위를 인정하면서 자원 확보에만 집중하는 노선을 취했기 때문에 양자가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중국의 중앙아시아 개발에 협조하다가 중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고 판단될 시 미국, 영국과 같은 서방 국가와의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등 방식을 통해 이 지역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유럽 국가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지정학적 조건을 회복하기 이전까지 중∙러 양국이 중앙아시아를 놓고 대규모 군사적 충돌을 감행할 것 같지는 않다.
⑤ 나아가 중국은 계속해서 러시아 산 석유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다(당연하지만 이는 러시아 정부 수입을 늘려주는 행위다). 일례로 올해 4월 중국 석유회사 측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러시아 우랄 석유 매입량을 증가했다(이미 작년 한해만 러시아는 중국에 석유 8357만 t을 수출했다). 현재 러시아 대외수출에서 자원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대(재정 수입의 36.7%)임을 생각하면,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대량의 석유를 계속 매입하는 이상, 중∙러 관계가 180도 전환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525182653071?input=1195m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내 예상도 상술한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러 경제 제재를 풀어주면서 푸틴으로 하여금 대중국 압박 노선에 동참하라 권유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푸틴은 바이든에게 단순히 경제 제재 해제만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푸틴은 자국의 방어선을 못해도 드네프르강까지는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적 지도자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드네프르강 동쪽 우크라이나 지역을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시도할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이 같은 요구를 들어줄 시, 미국이 유럽 대륙에서 (동쪽 방향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닌) 서쪽 방향으로 후퇴해야 함을 의미하는데, 어떤 미국의 행정부 지도자가 이런 정치적 요구를 들어주겠는가? 러시아가 유럽 국가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려면 현재의 지정학적 판도에 변화가 생겨야만 하는데, 이는 러시아가 발칸반도와 중부 유럽 국가에 전통적인 영향력 행사를 하도록 묵인하겠다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푸틴의 요구가 자신이 들어줄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님을 알고, 몇 차례 회담이 결렬된 다음, 다시금 대러 강경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바이든 행정부는 진작에 이 같은 러시아의 요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모른다면 아마 푸틴과의 몇 차례 회담 이후 실망할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이번 회담은 푸틴과의 대화 및 일부 대러 제재 해제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을 막아보려는 시도일 뿐, 근본적인 지정학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본다. 달리 말해 러시아와의 관계 문제에 있어 미국은 아래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① 러시아가 드네프르강 동쪽을 점령하는 것을 묵인하고, 일부 발칸반도 및 중부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묵인하는 대신, 러시아를 대중국 압박 노선에 참여시킨다.
② 몇 차례 회담을 통해 러시아의 요구 사항이 들어줄 수 없는 차원의 것임을 알고 중∙러 군사협력체와 “세계섬”에서의 패권을 놓고 대립을 이어간다(물론 이 과정에서 러시아에 대해서는 강도를 조금 낮출 수 있지만 근본적인 처방으로 보기는 어렵다).
솔직히 나도 바이든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러시아라는 양날 검을 잡기로 한 이상,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훗날 바이든의 대러 정책이 체임벌린의 대독 유화책처럼 역사적 실책이었다고 비난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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