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에 국내 언론기사를 보다 보니 재미있는 댓글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많이 봤는데, 과거 탈레반과 ETIM의 관계 때문이라 본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국내 언론 기사가 한편 올라온 적이 있다.
https://www.donga.com/news/NewsStand/article/all/20210508/106822501/1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기사에 대해서 비판적이다(더 정확히 말해 한국 언론이 가짜 뉴스를 어찌 생산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라 본다). 일단 이슬람 테러조직들이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내부적으로 단합된 것도 아니고, 탈레반을 테러조직이라 규정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들은 알카에다, 파키스탄 탈레반, IS와 같은 단순 테러조직과의 정치적 지향점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행정거점이 있으며, 이슬람 율법에 따른 통치를 자신들의 점령구에서 실행하며, 심지어 다른 나라 행정부와 비공식적인 외교관계까지 가지고 있다. 나는 이들을 단순 테러조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파슈툰 부족주의에 입각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를 정치적 목표로 테러활동을 자행하는 아프가니스탄 최대 군사조직”으로 이해하는 편이 옳다고 본다.
최근 탈레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자신들이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한 다음, 파키스탄, 이란, 중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건설하고 싶다고 발표한 바 있다(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탈레반이 ETIM을 도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소문에 따르면 도하에서 탈레반 측이 아프가니스탄 영내 중국 기술자들의 안전을 보호해주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상황이라 언제든지 실탄 사격에 의해 민간인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어서 각국 정부는 교민에게 철수 권고를 내리거나(중국) 국경지대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타지키스탄).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되리라는 법은 없다. 결국 ①탈레반이 새로운 헌법에 기초한 아프가니스탄 연합 의회 소속 정당이 되어 원내 제1당이 되든지 ②아니면 아프가니스탄 행정부를 전복시키고 다시 이슬람 신정국가를 세우든지 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2037504
https://www.yna.co.kr/view/AKR20210706002300080?input=1195m
다들 중국의 개입 여부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내가 관찰한 바를 말하자면 중국은 어떤 군사적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주변국 내전 상황 개입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할 명분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내전 상황이 안정되기 전까지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양측의 충돌 자제와 대화를 요구하면서, 파키스탄을 통해 탈레반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 또한 국가 운영을 목표로 하는 군사 조직이고, 9.11 이후 미군과의 싸움을 통해 주변국을 자신의 우군으로 끌어들일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탈레반 대변인이 파키스탄 외에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싶은 국가로 중국과 이란을 거론한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탈레반 대변인의 주장과 같이 탈레반은 자신들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까지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로 보건대 탈레반은 미국 중심의 해상세력보다는 중∙러 군사협력체의 일원이 되려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지만 말이다.
http://www.xinhuanet.com/world/2021-07/07/c_1211229453.htm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올해 8월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평화협상안을 보낼 생각이라 한다. 이 평화협상안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정부 반응과 이후에 전개될 미국,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이란의 외교적 각축을 본 다음에 아프가니스탄 향방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다만 가까운 시일 내 중국은 중앙아시아의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정부로 하여금 탈레반의 평화협상안을 대폭 수용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 가까운 미래에 중앙아시아의 판도는 어찌 바뀌게 될까? 아마도 시르다리야강을 경계로 북쪽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친러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러시아의 남하에 불안감을 느낀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중국과의 정치, 군사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실제로 베이징은 최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제 확대와 더불어 군사 교류도 강화하고 있는데, 베이징의 이 같은 구애에 우즈베키스탄도 중국제 무기 대량 구입, U-K-C철도 건설 계획 검토 등으로 적극 호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러시아의 지속된 남하는 과거 제정 러시아와 소련 시절을 강점기로 규정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으로 하여금 중국에 기울어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또한 오래 전부터 중국에 우르타블락의 천연가스를 수출하면서 긴밀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중국 무기를 4번째로 많이 수입한 나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실제로 중국과 인접한 (그리고 중국과 영토 분쟁이 최근까지 지속된) 타지키스탄과 달리 이들 두 나라에게 있어 중국의 지정학적 위협은 추상적이지만, 러시아의 남하는 현실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르다리야강 남쪽에 위치한 이 두 나라는 러시아의 남하와 함께 자신들의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친중 노선을 견지할 가능성이 크다.
https://www.voachinese.com/a/china-shifts-to-focus-on-uzbekistan-but-good-opinion-to-china-reducing-20210403/5839525.html
이런 상황 속에서 ①중국과 파키스탄의 전통적 우호관계(사실상의 동맹관계), ②중국과 이란의 25년 전략 협정, ③미군 철수 이후 파키스탄의 영향력 아래 들어갈 것으로 강력히 예상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향방은 ④러시아의 남하를 두려워하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친중 노선과 결합되어 새로운 “지정학 벨트”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최근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중국,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타지키스탄이 이 다자주의 협력체에 참여할 경우, 호라산 지역에 위치한 6개국(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중국이 정치∙군사적 협력 강화를 매개로 하는 “호라산 벨트”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중국정부가 가까운 시일 내 자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호라산 벨트”를 만들 경우, 미국의 세계패권에 미치는 타격은 예상 외로 클 것이다. 왜냐면 “호라산 벨트”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대체로 반미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속한 적 없는 나라들(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대부분이며, 자국내 지역∙종교∙인종 대립이 정치적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중국에 우호적이거나, 중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 중국은 앞으로 이들 “호라산 벨트”에 위치한 나라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러시아의 시르다리야 강 남하를 막고, 반중 성향 정부 수립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페르시아만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향후 중국은 “호라산 벨트”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중동 지역 원유 수송로를 위협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더 이상 원유 수송로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거나, 더 많은 병력을 페르시아만에 배치해 수송로 안전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접근전략 거부를 목표로 하는 일정 수준의 지대공, 지대함 미사일 조합에 맞서 항모전단이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비관적인 대답 외에는 나올 것이 없다. 이 경우 공군력 싸움이 될 것인데 결국 양측이 투입하는 공군 기종과 화력에 따라 결정 날 것 같다. 해양 세력에게 있어 “호라산 벨트”의 형성은 대륙 접근 비용을 지나치게 높이는 전략적 부담이며, 이런 상황은 “호라산 벨트”가 내부 구성원 간의 정치적 이견으로 인해 와해되기 전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호라산 벨트”의 형성으로 인해 중국이 “말라카 딜레마”를 걱정할 시간은 지난 것 같다. 대신 미국이 “호르무즈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원유 수송로와 인접한 지역이 모두 중국과 긴밀한 정치적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4년의 외교적 재앙이 이제 중동 지역에서의 “전략적 열세”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앙아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지속된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의 양강 대립 구도 대신, 러시아가 주도하는 “캉글리 벨트(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와 중국, 이란, 파키스탄이 주도하는 “호라산 벨트(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로 나뉘고, 이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역내 종교∙인종 대립 구도는 지정학적 대립 구도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미군이 바그란 공군기지 등 “심장지대”에 설치한 군사기지로부터 철수함으로써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중국을 위협할 군사적 세력이 없는 것이나 다를 다 없다(다이쉬의 《C형 포위: 내우외환 가운데 중국의 돌파전략》에 보면 중국군 장성들은 바그람 공군기지의 미군이 중앙아시아에서 자국으로 이어지는 석유∙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폭격할 것을 두려워했다). 내가 아는 한 중국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호라산 벨트”에서 이란과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지역 강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한 다음, 곧바로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과 태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과 태국의 관계가 트럼프 대통령 이후, 분명 악화된 측면이 있어서 현재 중국의 인도차이나 진출은 생각보다 용이한 상황이다. 물론 베트남의 친미적 관료들이 남중국해 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해당 지역 진출을 막아 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런 베트남의 움직임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잘 모르겠다. 결국 미국이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중국과 마찰을 일으키는 국가들을 규합해 중국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면,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남중국해 일대 거점에 병력을 분산 배치하는 계획을 검토하는 이면에는 이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인해 미국의 “심장지대” 진출은 이제 막을 내렸다.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 하루 몸부림 쳐야 할 것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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