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 그후》에서 필자는 모스크바가 1차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세울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https://letrleter.tistory.com/m/158
그런데 실제로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세우려는 기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28418.html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두긴이 설계한 다극체제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와 다르게 독일은 에스토니아가 독일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키예프 주재 독일 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지만, 우크라이나가 항의한들 베를린이 자신의 정치적 결단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https://view.asiae.co.kr/article/2022012305050936919
https://www.yna.co.kr/view/AKR20220122036300009?input=1195m
베를린의 이 같은 “배신 행위”는 이미 20세기 30-40년대 당시 스파이크먼에 의해 예측된 바 있다. 그는 독일이 러시아와 접경하지 않을 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만일 독일을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에 묶어 놓고 싶다면 독일과 러시아가 직접적으로 접경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정학자의 충고를 망각했으며, 결국 러시아의 실질적인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독일은 두긴의 구상대로 모스크바와 우호적인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 크렘린궁과 대립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반대로 자이한이 지적했듯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모스크바의 침공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동유럽 방면으로 군대를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 스웨덴은 발트해에 군함을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정부도 러시아 발 사이버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고심하는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가장 강력하게 항의할 몇 개 나라 중 하나일 것이며, 미국, 영국, 발트해 3국과 함께 반러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동진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60W0NPAOZ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 하는지, 그리고 이들의 궁극적인 지정학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예정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 그후》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이 같은 내용을 생략하겠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몇 가지를 조금 더 적어보도록 하자. 일례로 러시아는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 수립 묵인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헝가리의 대러 의존도 또한 만만치 않으며, 이미 우크라이나와 자국 대사 본국 소환까지 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다) 등지에서 나토 주둔군 철수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요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심장지대 세력으로서 모스크바는 흑해를 자신들의 내해로 삼고 싶어하며, 이를 위해서는 흑해와 인접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헝가리 등 발칸반도 제국諸國이 사실상 중립국이 되야 하기 때문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122028400009?input=1195m
http://m.cankaoxiaoxi.com/world/20210929/2455433.shtml?fr=mb
설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더라도 (과거 나치가 프랑스를 둘로 나누었던 것과 같이) 드네프르강 동쪽만 점령하고, 서쪽은 친-서방적인 정부의 지배 아래 둘 수도 있다.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현재 러시아의 군사력으로는 충분히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할 수 있다. 단지 우크라이나 서부는 오래전부터 독일 문화권에 귀속됐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러시아 차르의 지배보다는 독일계 상인들, 폴란드 영주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아온 지역(갈리치아-로도메리아)이다 보니, 러시아가 이 이질적인 공간까지 통치할 경우, 대 우크라이나 통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에서는 이 지역을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것이지 실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결단코 아니다. 가장 합리적인 분할안은 드네프르강 유역과 오데사 일대를 러시아가 점령하고, 독일 계통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갈리치아-로도메리아 및 우크라이나 서북부는 별도 국가로 독립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 앵글로-색슨 국가들조차 내부적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영국과 캐나다는 무기 수출에 이어 특수부대 파견까지 검토하는 중이지만, 호주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을 경우, 그 다음은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폴란드는 러시아를 규탄하며, 우크라이나에 최대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프랑스 또한 독일과 다르게 우크라이나와 연합 해상 훈련을 하면서 다가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http://m.cankaoxiaoxi.com/world/20220123/2467055.shtml?fr=mb
https://www.trt.net.tr/chinese/guo-ji/2022/01/23/du-da-bo-lan-zhi-chi-wu-ke-lan-1766855
https://world.huanqiu.com/article/46CUlxJ2bSU
과거 트럼프의 반중 정책을 찬양하며 키신저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필자는 아래와 같이 경고한 적이 있다.
“미국의 세계지배는 본질적으로 지정학적 지배-특히 유럽 대륙에 대한 군사적 지배-다. 지정학적 지배 위에 군사, 금융, 무역 등 나머지 기둥이 올려져 있는 구조이고, 반대로 지정학적 틀이 붕괴되면 시간 문제일 뿐, 패권을 지탱하는 나머지 틀도 순차적으로 붕괴하게 되어있다. 키신저와 브레진스키가 중국을 지정학적 연대 대상으로 삼은 까닭은 이들이 러시아가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함은 물론, 자신들 또한 유럽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반중 정책은 결과적으로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새로운 동맹 관계 결성, 러시아의 서진, 그리고 동유럽에 대한 미국 패권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GDP로만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다 보니 러시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러시아는 생각보다 강력한 나라고, 전략적 사고가 뛰어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자국의 역량을 유럽 방면으로 집중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에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면 미국의 패권은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다. 그날에 나는 분명 이것은 중국도 러시아의 탓도 아닌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 그리고 이런 트럼프의 어리석은 정책을 찬양한 국내 극우 지식인들에게 있음을 알릴 것이다.”
불과 3년전에 저 이야기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실제로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조지 부시 때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이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바라보며, 문득 아래 다섯 글자가 생각이 났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 와중에 중국 GDP는 미국의 80%대까지 따라잡았다고 한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120012004
코로나로 수출 호황이기는 했지만, 올해 중국 내수 시장은 거의 파탄 직전까지 내몰린 상황이다. 그리고 저 수치도 생각해보면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올해 중국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헝다 사태, 주가 폭락 등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4%대 성장밖에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GDP 성장률이 정체 상태이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 GDP를 빠르게 따라잡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실제 격차가 어느 수준일지는 올해 성적에 따라 결정 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같은 속도는 필자의 예측을 뛰어넘은 것이다(2024년 이후에야 80%에 이를 줄 알았다). 만약에 올해도 이 같은 성장세가 지속된다면 세계 1위 경제대국 타이틀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중국·러시아·인도 4개 강대국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리나 보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영어나 중국어 못하는 사람들은 러시아어와 힌디어를 배워 두기를 바란다. 유용할 것이다.
《조선일보》에 좋은 기사가 나왔다.
https://biz.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economy/2022/01/20/5BEXSXQPHZFHRIJWQJMLU4MTMU/?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그간 오역과 짜깁기 문제가 심각했던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을 생각하면 이 기사는 분명 장족의 발전을 한 좋은 기사다. 일독을 권한다.
'지정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크라이나령 갈리치아와 판노니아 평원 북동부의 지정학적 의의 (0) | 2022.01.27 |
---|---|
심장지대 제국帝國의 지정학: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흑해 내해화內海化에 대해 (0) | 2022.01.26 |
예정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 그후 (0) | 2022.01.19 |
두긴의 지정학 서사와 아르카임 유적 -러시아 지식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역사를 바꾸고 있는가? (10) | 2022.01.14 |
중·러 군사협력체의 포위망 돌파와 미국의 대응 (0) | 2022.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