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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렸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입지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동유럽의 지리적 구조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대체로 동유럽은 카르파티아 산맥과 발칸 산맥, 디나르알프스 산맥 등 여러 산맥에 의해 공간이 나누어진 구조인데, 카르파티아 산맥과 디나르알프스 산맥 사이에 위치한 대평원 지대를 판노니아 대평원(또는 헝가리 대평원)이라고 하며, 발칸 산맥 북쪽에 위치한 도나우강 하류 유역을 도나우 평원, 발칸 산맥 남쪽에 위치한 평원지대를 트라키아 평원이라 부른다. 대체로 판노니아 대평원은 헝가리인들이 살았으며, 도나우 평원은 도나우강을 경계로 북쪽에는 루마니아인들이 살고 있으며, 남쪽에는 불가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대체로 카르파티아 산맥을 경계로 동쪽은 러시아의 세력권에 속해 있었고, 서쪽은 헝가리인과 다양한 슬라브어계 민족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 같은 동유럽의 공간적 배치를 보게 되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이 조금 이상하게 그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서남부 국경선은 카르파티아 산맥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을 뿐 아니라, 도나우 평원 일부까지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이 자국 영향력 아래 있는 동유럽 제국諸國의 국경선을 설정할 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루마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3개국의 일부 영토를 우크라이나에 강제 편입시킨 결과다. 대체로 ⓐ갈리치아와 판노니아 대평원 일부를 우크라이나에 편입한 까닭은 유사시 소련이 아무런 자연 장애물의 방해 없이 판노니아 평원까지 진출하려는 군사적 의도 때문이며, ⓑ도나우 평원 또한 도나우강 하구河口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켜 도나우강 수운水運을 이용하는 동유럽 제국을 감시하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서남부 갈리치아와 판노니아 북동부가 러시아에게 넘어가게 될 경우, 러시아는 도나우강 유역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제고비나,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국의 영향권을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디나르알프스 산맥까지 확장하게 된다. 이 경우, 폴란드와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발트해 3국 등 7개국의 동부 국경선이 나토의 동방 한계선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미국의 대유럽 군사 지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정치적 이벤트로 워싱턴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러시아 군대가 카르파티아 산맥 너머까지 점령하는 것에 비하면 중국 해군의 타이완 점령은 애교다).
따라서 워싱턴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러시아군이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는 것만은 막으려 할 것이고, 러시아 군대의 서진이 시작될 시, 이들도 자국군대를 카르파티아 산맥 방면으로 보내 러시아 군대의 서진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방어선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워싱턴의 정객들은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갈리치아 지역과 판노니아 지역만은 미군이 통제하는 대신, 다른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정복전을 묵인할 가능성이 크다(물론 전쟁 직후 경제 제재는 가하겠지만 말이다). 반대로 러시아의 경우, 자국의 세력권을 일시에 디나르알프스 산맥까지 확장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군이 오기 직전에) 갈리치아와 판노니아 동북부 지역을 점령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고로 워싱턴이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러시아 군대가 카르파티아 산맥 서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영토 점령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 판노니아 대평원은 다시금 강대국 사이의 각축장이 되어 내전과 전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며, 미국 또한 다나르알프스 산맥 동쪽-판도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발칸반도 중앙부에서 믿을 만한 우군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전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할 것인지, 아니면 워싱턴과의 협상을 통해 갈리치아와 도나우강 하구를 점령하지 않는 대신, 다가올 경제 제재 강도를 낮출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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