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을 보니 부시 정부 시절 수석 연설 보좌관을 지낸 마크 티센이란 평론가가 한국도 미군의 지원 없이는 아프가니스탄처럼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81710555363988
나는 저 기사를 보면서 왜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잘못된 정책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여기서 우리 한번 9.11테러 당시 아프가니스탄 시골에 사는 평범한 파슈툰족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이 농부는 20대 당시 무자헤딘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이슬람교와 파슈툰족 전통을 부정하는 소련군의 침략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10년이 흐르고 농부는 결혼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시골에서 전통적인 파슈툰족 가부장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내전으로 인해 현대화된 수도시설과 송전탑 등 기본 인프라도 구비되지 못한 상황이며, 당연히 아프가니스탄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최근 탈레반이 파슈툰족의 지지를 받아 마수드가 이끄는 북부동맹과 싸운다고는 하나 이미 그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미군 전투기가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겠다고 자신이 살던 마을을 공격했다. 물론 그가 소속된 부족은 탈레반에 우호적이었으며, 자신이 사는 마을에는 탈레반에 가담한 파슈툰족이 몇 명 있었지만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9.11 테러가 일어났는지조차 몰랐다. 그런 그에게 미군의 공습, 그리고 비-파슈툰족 출신 위주의 북부동맹 계열의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정권 창출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대다수 시골에 살던 파슈툰족에게 미군의 침공은 어쩌면 또 다른 외세의 침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바라볼 때 항상 편파적인 목소리만을 듣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만일 미군의 통치가 ①도시에 살면서 근대화된 소비 생활을 즐기는 파슈툰족과 ②농촌 지역에 살면서 반농∙반목 생활을 이어가는 파슈툰족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탈레반이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재건했을 뿐만 아니라, 자란즈 함락 10일 만에 카불 입성에 성공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시골에 사는 파슈툰족에게 있어 탈레반이야말로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과 생활을 지키는 정치 세력이고, 미군은 소련군과 같은 외세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국군에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군 편제만 놓고 보면 내전 상황에 취약할 수 있고, 정보 자산 상당수를 미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한국인들이 미군을 외세로 보는가? 주한미군을 침략군으로 이해하는가? 또는 과거 유고슬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인종 구조가 복잡하고, 극복할 수 없는 종파주의와 부족주의 문제가 있는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나라는 인종적으로 단일화되어 있고, (북한과의 대치로 인해) 대륙과는 격리되어 있으며,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공동체 의식이 종교적 대립을 억누르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변수 또한 바다와 하늘을 통해서만 올 수 있다 보니, 국경을 인접한 대륙 국가들보다는 변수 통제가 쉬운 편이다. 심지어 우리 우파 언론이 그토록 사용하기 좋아하는 지정학적 위치만을 놓고 본다면, 아프가니스탄은 “반월지대”에서 “심장지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라고, 우리나라는 바다와 대륙을 연결하는 교두보 국가다. 아울러 한반도는 지형적 특징상 강력한 해상능력을 갖춘 세력이 군사적 승리를 거두기 유리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분열상태가 지속된다면 휴전선은 단순히 남북의 경계선을 넘어 “심장지대” 세력과 해상세력의 경계선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지리∙인종적 조건은 아프가니스탄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이 두 나라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백악관의 외교 정책 실수는 항상 상대국에 대한 몰이해와 자신들의 가치관을 제일시하는 그릇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마크 티센의 저 발언은 왜 부시 정부가 ①근대화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성전聖戰주의자들과 ②탈레반과 같이 부족주의에 기반한 무장단체를 혼동하고, 모두 “이슬람 테러단체”로 인식했는지 보여준다. 9.11과 관련해서 많은 회고록과 기록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그 당시 미국이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너무도 빨리 정치적 해법을 포기하고, 무력으로 부족주의 정권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대해 편파적인 정보(백악관이 듣고 싶은 정보)만을 토대로 정책을 입안했는지 알고 있다. 무엇보다 부시정부는 성전주의자들과 부족주의자들을 “이슬람 테러집단”이라는 종교적 기준을 근거로 하나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아무리 소련과의 전쟁 과정에서 양 테러단체의 지도부가 가깝다고는 하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특정 사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다수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고, 부족주의에 기반한 정치집단일수록 자신들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수밖에 없다. 만일 미국이 이성적인 태도로 9.11 해법을 찾았다면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조금은 다른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자체가 파슈툰족이 주변부에 위치한 발흐, 바다흐샨, 편자브, 발루치스탄 등지를 점령한 다음 세운 나라고, 이 때문에 파슈툰족은 자신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에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는데, 이런 역사∙문화적 요소들을 다 무시하고 다수 파슈툰족 부족장들의 지지를 받는 탈레반 정권을 강제로 해체한 다음, 비-파슈툰족 위주의 북부동맹 출신들이 주도하는 연합정부의 지배를 받아들이라 했으니 아무리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라 한들 (지상의 파슈툰족을 모두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어찌 이길 수 있었겠는가? 이 전쟁은 시작부터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린 정부의 수석 연설 보좌관이 우리나라를 아프가니스탄에 비교하며, 미군 없이는 우리도 아프가니스탄처럼 정권이 전복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북한의 통치에 따르겠는가? 그전에 우리나라가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다민족 국가인가? 또는 중앙아시아 제국諸國처럼 부족주의와 종파주의 대립이 정치적 투쟁으로 이어질만큼 격렬한가? 상대방에 대한 무지는 부끄러운 일인데, 자신의 무지를 거리낌없이 자랑(?)하는 전직 수석연설 보좌관을 보며 나는 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저 발언에 대해 아래와 같은 비평을 하고 싶다.
저 수석 연설 보좌관의 한국 관련 발언이야말로 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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