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강대국 사이의 각축, 그리고 중앙아시아 테러 단체 관련 글 모음-서문

계연춘추 2021. 8. 16. 12:18

이 블로그에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생각보다) 많이 다룬 것 같다. 이와 같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동아일보》에 개재된 상식 이하(이보다 더 심한 표현은 쓸 수 있어도 이보다 더 가벼운 표현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의 기사 때문이었다. 테러리즘의 세계는 결코 “이슬람 형제”라는 한 마디로 쉽게 정의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종주의에 기반한 분리주의와 반 세기 가까이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황, 그리고 지하드와 이슬람 세계질서를 새롭게 만들려는 범세계적 조직체계를 갖춘 테러 집단들의 이합집산이 만들어낸 세계이며, 파슈툰 부족주의를 이용해 아프가니스탄을 자국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파키스탄 정부와 이들에 저항해가며 발루치스탄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자국의 인도양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중국 정부의 또 다른 의미의 각축이 오래 전부터 진행 중이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각축 속에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지원하면서 탈레반과의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미∙중의 충돌은 이미 힌두쿠시 남부 지역에서 파키스탄 정부와 탈레반, 그리고 이들에 맞서 싸우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대리전이라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군의 철수 선언으로 이 지역의 승자는 사실상 파키스탄 정부와 이들이 지원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와 사실상 동맹 관계를 이어가는 중국 정부라 할 수 있다. 나는 트럼프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에 비판적이었는데, 이는 미군의 무분별한 철군이 결과적으로 중국-파키스탄의 대 아프가니스탄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에 대적하던 파키스탄 탈레반, 발루치스탄 민족운동, 그리고 ETIM의 미래는 밝지 않다. 이중에서 그나마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단체는 (같은 파슈툰족이라는 이유로 동정을 얻을 수 있는)파키스탄 탈레반이겠지만, 발루치스탄 민족운동과 ETIM은 파키스탄∙중국의 영향력 강화와 함께 사실상 군소테러 조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국내 언론 기자들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ETIM을 도울 것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 당혹스러운가? 이런 기사 자체가 이 지역 테러단체들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기사를 썼다는 소리에 지나지 않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발흥과 함께 알카에다가 다시금 조직되고, 이 알카에다가 ETIM를 지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금 단계에서 할 소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변수가 너무도 많다.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평화협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우리는 이 협상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약 탈레반이 ETIM을 지원한다는 가설이 성립되려 한다면 ①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자력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전복시켜야 하며, ②이 과정에서 과거 소련 때와 같이 알카에다 등 테러단체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③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국가 재건에 필요한 자본을 중국으로부터 받는 것을 포기하고 파키스탄,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야만 한다. 당장 이 세가지 조건 가운데 ②는 IS 이후 중동 지역 영향력이 줄어든 알카에다에게 있어 자신들의 능력 밖의 일 아닐까? 하물며 아직 ①도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기사를 쓴 의도는 무엇인가? 나는 저런 기사가 우리 언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럽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불거짐과 동시에 언론 기사에 나타난 지정학 남용 현상은 그간 우리사회가 얼마나 지정학을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봤는지 보여준다. 지정학은 전세계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하고, 이와 같은 통일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공간의 자연환경 및 정치 행위와의 구조적 연관성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지도 한 장 가지고 와서 이 일대의 자연환경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국경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테러리즘이 전파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도에 지나친 일 아닌가? 심지어 와한회랑에 대한 추론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종, 교통 등 지정학에서 다루는 공간 구성 요인들은 모두 무시하고, 단지 “국경에 접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테러리즘 전파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 아닌가? 이는 글쓴이가 테러리즘의 전파 과정도 모르고, 와한회랑의 지정학적 구성 요소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다.

그리고 이런 기사들을 양산했던 기자들은 이제 테러리즘의 정치적 목적과 종족 요소를 무시하고, 이들을 “이슬람 형제”라는 식으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테러 단체라 해도 활동 공간과 종교 이념, 종족 구성과 어떤 국가의 지원을 받는지에 따라 정치적 지향점이 판이하게 다른데 이들을 어찌 하나의 통일체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당장에 알카에다와 IS의 충돌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발루치스탄 민족운동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관계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 등 탈레반 계열 테러단체와 파키스탄 정보부의 관계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심지어 중국조차 하카니 네트워크를 이용해 ETIM 소탕 적전을 벌이다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항의를 받는 적이 있는데 말이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은 “이슬람 형제애(부족주의와 종파주의 앞에 이 “형제애”가 얼마나 무력한지 생각해 봐야한다)”로 뭉쳐 모든 테러단체가 일사불란하게 특정 테러 활동을 지지하는 상황은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우리 학계, 나아가 우리나라의 언론 환경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우리 학계는 어떤 비-학문적인 이유에서 결론을 정해 놓고, 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이론만을 국내에 소개하다 보니, 이들의 신앙을 부정하는 몇몇 이론과 학설들은 체계적으로 소개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것 아닌지. 어쩌면 우리 학계의 몇몇 연구자들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신앙을 굳히기 위해 연구하는 것 아닐까? 만일 후자라면 나는 연구 목적부터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연구가 아니다. 연구 행위를 빙자한 종교 행위일 뿐이다. 목회자가 되야 할 사람이 교수와 연구원의 타이틀을 달고, 대학 강단에서 학문적 권위로 자신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이 어찌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는가? 어쩌면 그간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가 내륙 아시아 문제에 대해 놀랄 만큼 무지했던 까닭은 스스로 편향된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편향된 정보만을 사람들에게 소개한 것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이는 한 나라의 비극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의 언어적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는 언어적 틀과 여기 기반한 사회 공동체를 뛰어넘어야 진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정치제도와 한국인이라는 문화-인종적 아이덴티티,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가치관을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탐구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이 많아 지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끝 맺는 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