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왔다.
www.yna.co.kr/view/AKR20211227063800074?input=1195m
일단 SCMP는 과거 아프가니스탄 사태 당시에도 중국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고려하고 있다는 오보를 낸 적이 있다(마윈이 표적이 된 직후, SCMP 또한 정확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 기사를 토대로 동아일보 이장훈 기자는 중국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이라는 공상과학 소설을 게재한 바 있으며, 이는 극우 파쇼화로 치닫고 있던 한국 보수진영 인사들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우리 언론의 오보는 항상 자신들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자면 나는 OTS가 결국 찻잔 위의 태풍이 되리라 예상하고 싶다. 우리는 이들 내부의 분열 요소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으며, 러시아에 대한 이들의 배다른 태도는 이 단체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남방계 투르크어족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같은 북방계 투르크어족의 문화·정치적 대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나마 이 단체가 결성될 수 있던 가장 큰 요인은 이번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당시 터키의 드론 지원(바이락타르 TB2)을 받은 아제르바이잔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던 아르메니아군을 이겼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 중앙아시아 영향력을 줄이고 싶어하는 내륙지대의 권위주의 통치자들은 이 소식에 환호했고, 터키와 문화·경제뿐만 아니라, 군사 협력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무엇보다 터키가 카스피해 너머 중앙아시아 내륙지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도 한몫 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단체가 바로 OTS이기에 이 단체는 시작부터 ①중앙아시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터키와 ②터키를 끌어들여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신들의 권위주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싶어하는 중앙아시아 독재자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유령이다.
www.joongang.co.kr/article/23914558
앞으로 OTS가 직면할 문제들을 생각해 봐도 우리는 이 단체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①터키와 카자흐스탄의 주도권 문제. 과거 대 러시아 제국의 부활로 비춰지던 러시아-벨라루스 연맹국도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흐지부지 되었음을 생각하면 OTS도 투르크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터키와 카자흐스탄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설립 취지와는 거리가 먼 정상 동호회 수준의 단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과거 아스타나의 정치적 행보를 생각해보면 카자흐스탄은 터키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 같은 주변 강대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②우즈베키스탄의 역내 영향력 강화 문제. 최근 중국 주도 하의 중앙아시아 물류 운송 철도가 정비되면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은 한때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 주도권을 놓고 다툴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등 역내 강대국으로서 영향력을 주변부에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수차례 보여왔다. 결국 이들은 터키 또는 이란, 중국을 끌어들여 카자흐스탄에 대항하려 할 것이다.
③키르기스스탄의 친러 노선. 키르기스스탄은 지금도 구소련 형태의 국가연합이 다시 결성되면 가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만큼 친러 성향이 강한 나라다(이미 이들은 유라시아 경제동맹의 일원이다). 그러나 OTS의 또 다른 가입국인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이후, 확실히 반러 노선으로 갈아탔다. 적어도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영향력 강화 문제에 있어 양국의 의견차는 불 보듯 뻔하다.
④예정된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의 대립. 지금은 양국이 대립하리라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해 보이고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보이지만, 카스피해 물류 운송량의 증가와 함께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투자 유치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 새롭게 정비될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철도는 이 같은 양국 간의 대립을 점점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하는 화물 철도 가운데 정비된 노선이 없다 보니 카자흐스탄 악타우항이 부각 받고 있지만,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투르크메니스탄의 주요 항구 도시 투르크멘바쉬를 경유하는 우즈베키스탄 물류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카스피해 항로를 둘러싼 이권 다툼이 크지 않지만, 중국의 심장지대 조직화와 새로운 철도 증설은 카스피해 물동량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 같은 경제 이권을 둘러싼 잠재적 적국들의 분쟁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우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하나의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터키, 아제르바이잔은 하나로 뭉쳐 이들에게 대항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있어 중국과 이란의 태도는 애매하겠지만, 대체로 이란은 모스크바와 뜻을 같이 하는데 비해, 중국은 타슈켄트, 아시가바트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같은 양국의 대립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양강 대립과 얽혀 투르크어족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호라산 벨트와 캉글리 벨트의 대립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있다.
실상 양자의 대립은 인종적·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됐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중앙아시아 이주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을 그나마 하나로 묶어주던 것은 다름아닌 이슬람 신앙과 투르크인이라는 인종 집단이라 하기에 모호한 문화적 연대감 때문인데, 그 문화적 연대감조차 파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서구적 정체성-민족이다. 지금 저들은 밖으로는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고, 안으로는 권위주의 통치 체제를 확립해야 하니 당연히 손을 잡겠지만, 눈 앞의 먹을 것이 많아진다면 어찌 다투지 않겠는가? 원래 콩 한쪽은 나누기 먹기 쉬워도 진수성찬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본심이요, 고난은 함께할 수 있어도 영광은 독차지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말이다. 하물며 이미 이슬람교가 세속화된 상황에서 이들이 언제까지 문화적 연대감을 유지할지 모르겠다. 중화제국은 항상 경제적 이권을 통해 서로를 분열시킨 다음, 소수자를 옹립하여 다수자를 격파하고, 다시 명분 없는 소수자를 힘으로 몰아내기를 반복했으니, 아마도 중국은 카자흐스탄이 지나치게 강력한 역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면 노골적으로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도울 것이다. 이 경우,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만일 카자흐스탄이 나자르바예프의 독자노선을 계속 추진해 모스크바조차 카자흐스탄을 분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면, 이들은 남북으로 분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모스크바를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행보 중 하나가 바로 터키가 주도하는 다자협력체 참여다. 이 때문에 터키와 카자흐스탄의 관계는 이 이상 가까워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터키는 카자흐스탄을 분열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북쪽에 사는 400만 명의 러시아계 유민들을 동원해 언제든지 카자흐스탄 북부를 또 다른 돈바스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물론 중국 땅에도 러시아인이 살지만 그들이 만여명에 불과한 소수 집단임을 생각하면, 카자흐스탄 북부의 러시아인은 아스타나가 모스크바로부터 떨어져 나가려 할 때,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지정학적 화약고와 같다.
분명 에르도안은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이 기구를 추진했지만, 문제는 중앙아시아는 앙카라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OTS에 가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크렘린궁은 에르도안이 받은 투르크 세계 지도를 놓고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애석하게도 그 지도에는 투르크 문화 중심지에 붉은 별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 중심지는 바로 러시아 알타이 지역이다.”
http://cn.dailyeconomic.com/business/2021/11/22/56528.html
두긴을 위시한 신-유라시아 학파는 이미 러시아를 루스와 투란, 몽골의 연합체라 규정했고, 이 같은 신-유라시아 학파의 사상은 빠르게 러시아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그리고 상술한 크렘린궁의 코멘트는 가까운 시일 내, 모스크바와 터키가 투란 세계 주도권을 놓고 싸울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OTS 결성 직후, 러시아는 갑자기 터키산 석류, 포도, 고추 등 농산품 수입을 중단했다(12월 20일). 이 같은 전후 상황을 지켜볼 경우, 러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결성한 OTS는 역설적이게도 러시아의 대 중앙아시아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사실만 확인해주는 촌극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터키가 자신들을 러시아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베이징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고, 이는 중앙아시아 분열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그보다 20년전 베이징조차 중앙아시아에서 “모스크바의 우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는데, 중국보다 군사·경제 역량이 뒤떨어지는 터키가 이 일대의 지정학 향방을 결정한다는 생각부터 난센스가 아니라 할 수 없다).
https://www.163.com/dy/article/GRLR2UON0514EMD3.html
아세안이 성공적인 다자주의 협력체가 될 수 있던 요인은 정치적인 통일성보다는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지정학적 문제 때문이다. 비록 인종·언어·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아세안 제국諸國은 앵글로-섹슨 세계의 압박과 중화제국의 팽창, 그리고 성장하는 인도의 위협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을 누구보다 느끼고 있었으며, 강대국 간의 대결에 자신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동남아시아 조직화를 선택했다. 이 아세안조차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친중 성향 국가들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중국의 팽창을 경계하는 국가들, 그리고 태국, 말레이시아와 같이 중국과의 경제 협력 증진만 할 뿐, 정치적 협력은 거부하는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으며, 역내 전쟁 방지 이상의 정치적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아세안과 달리 OTS 구성원들은 하나의 지정학적 위협에 직면한 상황이 아니다. 아울러 아르메니아 문제만 보더라도 키르기스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의견 일치를 기대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며, 아직 우즈베키스탄이 역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성장을 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카자흐스탄과 터키의 대립 구도만 부각되는 것이지, 나중에 가서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터키 삼자의 대결 구도 속에서 와해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중앙아시아 이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러시아나 중국이 OTS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라 해도, 굳이 우리까지 OTS를 지정학적 판세를 바꾸는 단체라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과한 평가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우리는 이란이나 우즈베키스탄이 자신들에 우호적인 국가연합 결성을 주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이벤트가 가까운 시일 내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터키는 하나의 이해관계로 뭉칠 가능성이 다분하며, 중국도 2017년 이후부터 우즈베키스탄에 방어체계를 수출하는 등 우즈베키스탄의 자립을 지지하는데, 만일 이들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연합과 반러 성격의 동맹체를 결성해 심장지대를 포위할 경우, 러시아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미국이라는 강력한 적 때문에 하나로 뭉친 중국과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국을 몰아낸 직후, 유라시아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싸울 수밖에 없다. 이때 미국이 누구 편을 드는지가 중요하다. 미국이 모스크바와 손잡을 경우, 중국의 독립회랑獨立走廊(위구르, 카슈미르, 티베트) 지역은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고, 반대로 미국이 베이징과 손잡을 경우, 러시아가 해체되는 것이다(대신 우리는 유럽 국가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모스크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예고된 지정학 전쟁에서 워싱턴이 누구의 손을 잡느냐는 향후 세계 역사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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