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월, 탈레반의 판지시르 점령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막을 내렸다. 다들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정치적인 각도에서만 접근하는데, 마침 이 지역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만큼 나는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는 다름 아닌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중 양국의 기술적 접근법에서의 차이다. 기술적 접근법이라는 모호한 말을 사용했지만, 이 지역을 어떤 루트로 파악했고, 어떻게 인식했으며, 이와 같은 판단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양국 정치인들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첫째, 미국은 이 지역을 이슬람권(중동)이라 막연히 인식한데 비해, 중국은 이 지역을 편자브-신드 지역과 페르시아 문명권 사이에 위치한 분쇄지대라 이해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리적 인식 차이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프가니스탄을 막연히 이슬람권의 일부분이라 여긴 미국은 탈레반과 와하비즘, 그리고 종교를 매개로 하는 테러 조직 간의 연관성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중앙아시아 부족주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학계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분명 없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정부 또는 의회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사라지거나 축소되어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지 생각해보니 결국에는 테러 단체의 위험성을 과대포장해야 원하는 수준의 예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결과적으로 미국으로 하여금 아프가니스탄을 중앙아시아보다는 중동 지역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부족주의와 종파주의가 긴밀히 연계된 중동 지역 상황과 같을 것이라는 오판을 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에서 자신들이 접촉하던 타지크족, 파슈툰족을 토대로 아프가니스탄의 부족주의 정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부족주의와 종파주의를 별개로 요소로 봤을 뿐만 아니라, 탈레반 지도부를 단결시키는 부족주의 코드를 읽어냈다(이는 탈레반 지도부의 와하비즘적 성향만을 강조한 미국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중국 외교부 편제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서아시아-북아프리카사西亞北非司가 아닌 (한국, 일본,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아시아사亞洲司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과는 다른 대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지향하도록 만들었다.
둘째, 미국은 가니 정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철군에 전념했지만, 중국은 작년부터 외교부 인력을 대대적으로 조정하는 등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재빠르게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년 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주둔에 지친 백악관은 오로지 철군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으며, IS 호라산 지부, TTP, 타지키스탄 탈레반과 같은 다른 테러 단체의 위협을 고려하기는 했지만, 가니 정부가 못해도 1-2년은 버틸 것이라 생각하다 보니, 대 테러 문제도 이들과 협력하면 될 일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와 달리 중국은 외교부 아시아사 사장司長을 전직 아프가니스탄 대사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관련된 전문가들을 외교부 전면에 배치해 만일에 있을 사태에 대비했다. 이는 국무부 등 관계 부처의 대대적 인적 조정이 없던 미국과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인다. 아마도 당시 백악관은 철군에 집중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군대를 주둔시키는 지역에 대한 정보력에서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다 보니,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탈레반과의 대화 창구 확보에만 신경쓸 뿐 다른 일에는 무관심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뿐만 아니라, 다양한 테러 단체들이 각자의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이합집산을 할 뿐만 아니라, 탈레반이 생각보다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베이징은 알래스카 회담 당시 아프가니스탄 의제를 거론했지만, 블링컨 장관은 이를 무시했다. 이 당시 미국 측 보고서를 보면 탈레반과 IS 호라산 지부, 하카니 네트워크, 알카에다 등 테러 단체의 “연대”에 초점을 두고 있지, 이들이 부족주의와 종파주의에 따라 어떤 이합집산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워싱턴은 전세계적인 지하드 동맹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만을 우선적으로 취했을 뿐이다. 결국 카불이 탈레반에게 포위 당하자 당황한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하는 수밖에 없었고, 카불 방어가 아닌 공항 방어를 선택함으로써 또 다른 인명 피해를 불러오고 말았다.
셋째, 영어를 할 줄 아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취득한 미국에 비해 중국은 파슈토어 전문가를 국가 차원에서 양성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때, 대체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중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에게 통번역을 맡기거나, 이들이 전해주는 정보만을 취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미국에 협력할 만큼 정치적으로 반 탈레반 성향을 띄거나, 도시에서 자란 나머지 탈레반의 정치적 기반인 부족주의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미국에서 매년 보내는 조사단은 대체로 요새화된 도시에 갇혀 탈레반이 지배하는 농촌과는 격리된 그린존 안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아프가니스탄 농촌 지역 실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파슈토어 가능 지역 전문가를 키우다 보니, 여러 외국어대에 파슈토어 전공을 신설했으며, 이런 지역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 이 지역의 사회 구조 및 문화에 대해 수차례 조사한 바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인상 깊게 봤던 것은 2005-2015년 사이 중국에서 진행한 아프가니스탄 관련 연구였는데, (대체로 도시에 국한된) 미국과는 다르게 농촌 지역까지 가서 파슈툰족 시골의 생활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우리나라에서도 목숨 건 선교사들이 아니면 거의 생각하지 못하는 일인데,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리고 이 당시 중국 학계에서 진행했던 연구 결과는 훗날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제안에 일부 반영됐다. 당연히 아프가니스탄 시골까지 가서 파슈툰족 문화와 생활 연구를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나라와 시골에 사는 파슈툰족을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나라의 접근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이런 접근법의 차이가 양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넷째, 미·중의 외교부 조직 운영 체계의 차이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일원화되고 정보 취합이 잘되는 중국과 달리 미국 외교부는 지역 분과가 담당해야 하는 일이 너무도 많고, 상호 간의 업무 관계 조율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이를 부처간 경쟁이라 하지만 말이다). 이 때문에 백악관에 키신저 또는 브레진스키 같은 고수가 들어가서 외교부처와 정보부처를 총괄할 경우, 최고의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만일 백악관을 지키는 보좌관의 역량이 부족할 경우, 각 지역 분과가 따로 노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것 같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만 보더라도 나는 백악관이 각 부처 간 업무 조율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나는 이번 사태 내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고민했다-같은 미 정부 기관인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이와 달리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지도부를 중심으로 외교부와 군·경이 거의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이와 같은 일원화된 조직 체계가 만들어내는 통일된 움직임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전방위 압박을 가능케 했다.
결국 양국의 차이를 살펴보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못된 전제(ex. 탈레반은 와하비즘 테러 단체)를 기초로 오판을 이어갔을 뿐만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ex. 전세계적 지하드 조직이 있다)만 들었으며, 반대로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일단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인식 차이는 양국의 탈레반에 대한 상이한 성격 규정에서도 드러나며(미국은 오랜 시간 탈레반을 테러단체로 규정했지만, 중국은 어느 순간부터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의 대화 창구 역할을 자처했다), 막연히 탈레반을 테러 단체로 인식한 미국과 달리 이들을 주요 정치 세력으로 이해한 중국은 (다른 테러 단체들의 발흥을 막고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국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아프가니스탄 사태 대응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 언론은 홍콩 찌라시에 놀아나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할 것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었으며, 전문가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와 기고문 등을 통해 이 일대에 대한 무지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나는 이번 아프가니스탄 내전을 지켜보면서 아래와 같이 생각했다.
① 국가가 주도하는 지역 전문가 양성 교육 기관이 필요하다. 이번 중국의 아프가니스탄 문제 대응을 보면서 우리도 단순히 특정 지역에서 배운 사람들을 외교관으로 뽑아 쓰는 것보다는 별도의 거대 기관을 만들어 이 지역에 대한 역사와 문화, 언어를 종합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사립대인 한국외대와 외교관 양성만을 위해 만들어진 외교 아카데미로는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무엇보다 소수 언어 전공자들이 국가 기관 취직으로 자연스럽게 연동되어 이들이 생계 걱정 없이 지역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모 다리어 전문가가 파슈툰족이 대다수일 것이 뻔한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인터뷰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는데, 타지크족과 파슈툰족의 언어도 다를 뿐만 아니라, 부족법과 생활양식도 다르기 때문이다(한국인과 대화하는데 일본어문학 전공 교수를 부른 꼴). 적어도 현재 발표되는 논문만 가지고 평가할 경우, 국내에는 중국-중앙아시아 관련 뛰어난 전문가 그룹이 없다. 차라리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 만드는 편이 더 빠를 것 같다.
② 해외에서 내란이나 쿠데타와 같은 비상사태 발생 시,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런 위기상황을 관리하는 태스크 포스가 필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이 태스크 포스에는 군·경, 그리고 난민 문제를 주관하는 부처 관계자도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나 이 임시 조직은 공군이나 해군을 동원하는 작전 명령권, 민간인 구조, 반군 세력과의 교섭 등 해당 국가 비상사태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전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
③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대한 문화인류학, 사회학적 조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매년 하는 것은 어렵다 해도, 3년 또는 5년에 한번 지정학적 요충지에 연구 조사단을 보낼 필요가 있다. 참고로 나는 사회학도도 아니고, 문화인류학을 배운 적도 없지만,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와 같은 조사를 하는 것이 한 나라의 외교 정책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됐다. 특히나 이런 조사는 도시에서의 소비생활에만 국한되지 말아야 하며, 이 나라의 도농 격차와 민족 갈등, 종파 문제, 생활 양식적 차이 등 인종·문화 제반 문제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④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생산한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으며(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거치면서 나는 미국 행정부의 정보 선별 능력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됐다), 별도의 검증을 거친 다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세계섬”과 관련한 정보 능력에 있어 미국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언론 기사 및 연구자료도 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하며, 그런 능력이 없는 연구자들은 학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세계는 워싱턴과 베이징, 모스크바가 각자의 세력권을 가지는 어떤 형태로 나뉠 것 같다. 워싱턴은 해양세력의 수장으로서 계속 패자 지위를 유지하고, 중국은 “세계섬”의 “반월지대”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러시아는 “심장지대”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를 세력권에 포함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와 접해있는 반도라서 해양 세력에 포함될 것 같은데(아마도 미군은 한반도처럼 해군만으로도 지킬 수 있는 지역에는 계속 주둔군을 배치할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지대 역할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 9월 10일 일부 문구를 수정했다.
노파심에 몇 자 적자면 중국의 외교정책이 매사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실상 우리는 국가 간의 분열과 반목을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베이징 식 외교가 기독교 문명을 매개로 뭉친 대서양 연대(미국-유럽 연대)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지 지켜봤다. 그리고 벌써부터 몇몇 무책임한 언론들은 미국과 나토 회원국 간의 관계를 걱정하는데, 헌팅턴이 지적한 바와 같이 기독교 문명권 국가의 연대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고, 이들과 적대관계를 이어가는 “공동의 적(모스크바의 차르 폐하)”이 있는 한, 대서양 동맹은 오랜 세월 유지될 것이다.
단지 베이징은 아프가니스탄을 자신들의 “핵심 이익”과 직결된 곳이라고 판단하다 보니 이번 사태만큼은 정부 차원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베이징의 기술적 접근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베이징이 자신들의 “핵심 이익”이라 생각하는 인도차이나와 중앙아시아 및 이란 지역에 어떤 식의 개입을 할 것이며,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대응할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이 어떤 위험한 정치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소스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도 사람도 의리가 있어야지, 박쥐처럼 여기저기 붙는 것 아니다.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을 위해 몇 마디 하자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 취임한지 9개월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간 대서양 동맹 복원하느라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고, 철군 계획도 (펜타곤의 주장대로) 트럼프 때 만든 스케줄대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하지만 트럼프 때 철군 계획도 급히 만든 것이었고, 이 때문에 철군 시 발생할 여러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미 철군 기한(8월 31일)이 임박하다 보니 이에 대해 자세히 검토하지 않고 가져다가 사용한 것 같다. 달리 말해 중국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했다면, 미국은 그 시간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철군까지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임무의 강도와 준비 시간을 생각해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은 그래도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바이든 정부를 지나치게 비판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21년 9월 10일 補
'중앙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아시아 내부의 분열 요소와 OTS의 불안한 미래 (0) | 2021.12.28 |
---|---|
에르도안의 야망, 그리고 나자르바예프의 동상이몽 (0) | 2021.12.26 |
판지시르 함락,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예정된 미래(+태국과 미얀마 군부 동향에 대해) (0) | 2021.09.08 |
니네베의 귀부인: 차도르 착용의 역사와 상징성에 대해 (2) | 2021.09.05 |
중앙아시아 민족 문제에 대한 단상 (0) | 2021.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