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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쉬 코르나이의 “부족” 현상과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특징에 대하여

계연춘추 2021. 3. 3. 09:55

오늘 점심 때 서점에 가서 폴란드 경제학자 콜로드코가 쓴 《중국은 세계를 구할 것인가》를 사서 완독했는데, 마침 이 책에서는 야노쉬 코르나이의 이론을 다루고 있다.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코르나이는 북한 연구자가 아니면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경제학자일 것이다. 21세기 들어서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간간히 이름이 오르내리다가 작년 9월 그의 저서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학계에서의 반응이 너무도 미지근해 놀랐다. 그러나 중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이름을 한번 정도 들어보았을 만큼 구 사회주의 권에서는 유명한 경제학자인 만큼 누군가 코르나이의 경제 이론이 중국 소련-러시아 유학파 관료들의 경제 정책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했으면 좋겠다. 여기서는 코르나이의 공급 부족 이론과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체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개혁개방을 하기에 앞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중국과는 다르게 한국은 사회주의 체제의 경제학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을 경제정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오류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이 책은 1992년에 출판된 오래된 책이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런 사회주의 경제학의 고전이 출판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며, 이와 같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50-90년대 (소련-러시아 유학파가 주류를 이루던) 중국 경제 관료들의 정책결정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대체로 이런 동구권 경제학자들은 중국 경제 연구자들보다는 북한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많이 보여지는데, 북한 경제를 통상적인 의미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북한은 이미 전국적인 배급체계가 붕괴된 상태이며, 국경지대 지역민들은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의 국경무역을 통해 상품 수요를 충족하기에, 동구권과는 다른 형태의 경제구조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코르나이의 이론 가운데 가장 독창성 있는 내용은 다름아닌 사회주의 체제의 공급 부족 현상에 대해 설명함에 있다. 사회주의 체제는 상품의 질적 향상보다는 공급량을 만족하는데 관심을 기울였고, 국가는 상품 생산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상품의 최적 공급상태만을 고려하다 보니, 질적으로 우수한 상품과 그렇지 못한 상품이 공급 대상자 총량에 따라 공급된다. 이는 당연히 질적으로 우수한 상품은 귀해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상품은 팔리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 같은 기현상을 코르나이는 공급 부족 현상이라 이름했다.

이와 같은 공급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두 가지 통화 정책을 실시한다고 지적했다. ① 질적으로 우수한 상품 가격을 상승하여 가계 저축률을 상승함과 동시에 공급 과잉 상품이 시장에서 팔리게끔 유도하거나, ② 개방형 통화정책을 실시해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코르나이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들 모두 공급 부족 현상을 해결하는데 실패했다. 이는 코르나이가 지적한 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공급 부족 현상이 연성 예산제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폴란드 경제학자 콜로드코는 통화팽창률과 실업률, 공급부족 총량을 하나의 삼각형 구도에서 이해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통화팽창률의 상승이 실업률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반대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통화팽창률의 상승은 공급 부족 현상의 심화로 이어진다. 콜로드코는 이를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정리했다.
 
① 정체성 통화팽창률(SF)=실업률(U)+통화팽창(CPI)
SF=U+CPI
 
② 공급부족 통화팽창률(SHF)=공급부족총량(SH)+통화팽창(CPI)
SHF=SH+CPI


콜로드코는 동구권 국가들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벗어난 직후,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를 대신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실업률 문제를 자각하지 못했고, 이는 시장의 구매력 저하로 이어졌다고 반성했다. 그러나 중국은 강성 예산제약을 정부 예산 집행에 강력히 반영하고, 개방적인 가격체계와 탄성 있는 가격정책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중국정부의 예산 기획을 연성 예산제약이라 비판하는 이들이 보기에 콜로드코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부실 국영기업을 성장동력이 있는 건실한 국영기업에 통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콜로드코는 중국의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중국에서 금융권 대출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관계와의 연줄(關係)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까지 성장한 기업도 결국 중국 정부의 무거운 세금과 사회적 복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권에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사업자는 관계와의 연줄을 이용해 대출을 받는 대신 정부의 경제정책 대기조를 수용하게 된다. 또한 중국에서는 기업 내 상응하는 감찰기구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감찰 기능을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기업체의 운영 노선은 중국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산당 정책 노선을 충실히 이행하는 관영·(일정 규모가 되는) 민영 기업체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며, 공산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적표를 가져다주는 기업체에게 자금 지원과 세수 감면 등 혜택을 주게 된다. 이처럼 공산당은 시장의 자본 유동을 완벽히 장악함으로써 사실상 시장을 공제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다.

고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소련처럼 강권 지배 형태가 아닌 자본 유동을 통제함으로써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자본 유동성을 정부가 장악함으로써 시장을 지배하는 방법을 나는 “자본유동공제형 사회주의 경제체제資本流動控制型社會主義經濟體制”라 부르고 싶다. 이는 시장의 개방성을 용인하되, 자본이 유통되는 전 과정에서 국가 의지가 개입함으로써 시장경제 참여자들이 (금융권에서의 용이한 대출 등을 위해) 자발적으로 공산당에 협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국가는 목표 고용률을 발표하고, 시장의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이 같은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국가는 목표치에 달성한 기업체에게 여러 혜택(대출, 투자금, 세금 감면)을 주어 이들의 자발적 충성심을 이끌어낸다. 쉽게 말해 국가 전체를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당연히 회사 전체를 컨트롤하는 이사회 역할은 중국 공산당이 맡고 있으며, 이들의 통치자금은 중국에 투자한 외국계 기업체들이 합법적으로 대주고 있다.

콜로드코는 중국이 어떻게 구 소련국가들이 경험했던 시행착오(“통화팽창-공급부족”에서 “통화팽창-실업률”로의 과도)를 피할 수 있었는지 놀라워한다. 이에 대해 칭화대 중문과 쾅신니옌曠新年 교수는 중국이 소련식 고도의 중앙집권적 경제체제를 갖추기도 전에 문화대혁명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맞이했고, 국가적 유통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마오는 자급자족형 촌락 공동체 건설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처럼 각 지방이 자급자족형 경제 단위로 분할된 상황에서 일정 지역을 개방특구로 지정해도 타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은 제한되었으며, 중국 공산당은 이를 이용해 개혁개방에 소요되는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어떤 설명을 취하더라도 중국의 미성숙함이 도약 계기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같다. 아무쪼록 코르나이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연구성과가 지속적으로 소개되기를 바라며, 여기서 두서없이 장황한 글을 끝내는 바다.

※ 2020년 7월 23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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