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힘의 공백지대”란 어디를 뜻하는 것일까?

계연춘추 2021. 2. 28. 19:59

간혹 내가 미∙중 관계에 대해서 설명할 때 “힘의 공백지대”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럼 “힘의 공백지대”란 무엇인가? 이 “힘의 공백지대”가 향후 세계사를 어찌 바꿀 것인가? 여기서는 “힘의 공백지대”에 대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힘의 공백지대”란 발루치스탄 앞바다에서 시작해 타이완 해협에 이르는 인도양-남중국해 해역을 뜻한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이슬람 상인들의 주된 거점이었으며, 냉전 구도로 인해 경제적인 타격을 가장 심하게 입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리트리아해 행해기》와 《박물지》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지역이 고대 무역 항로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원래 이 “힘의 공백지대”는 인도와 파키스탄, 베트남과 태국이라는 전통적 경쟁구도에 의해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던 지역이었으나, 인도의 성장과 파키스탄의 경제적 몰락, 베트남의 부흥과 태국의 제자리걸음으로 인해 힘의 균형이 점차 깨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는 정확히 이와 같은 힘의 균열을 포착해 이 지역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중국은 이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진 반인도 정서와 소수민족 무장집단 테러에 대한 공포를 교묘히 이용해 과다르, 함반토타, 콜롬보, 몰디브, 시아누크, 차우퓨크 등을 건설해 자국의 세력을 공고히 다지는 중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이 일대에서 중국의 세력이 강력해지도 있음을 인식했고, 민주화를 명분으로 일부 친중적인 정치세력을 몰아내거나 이들의 영향력을 약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①이 지역의 뿌리깊은 반인도 정서에 대한 몰이해에 더해 ②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민주세력의 무능함과 이로 인해 초래된 여러 사회 문제들은 이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약속하는 친중 성향의 정치인들이 복권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상 트럼프 4년 동안 우리는 오바마 때 확립했던 아시아에서의 균형이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아시아 지역의 인종 문제와 민족 감정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어찌 무너지는 지켜보았다. 최근 이 지역(“힘의 공백지대”)에서의 투표 결과는 이 지역의 반인도 정서가 워싱턴의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과 미국이 지지했던 정당들이 제시한 인종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이 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역으로 권위주의 정당의 통치 정당성만 확보해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했다.

현재 이 힘의 공백지대에 주둔하는 미군은 도합 956명, 이조차 태국과 싱가포르, 디에고 가르시아에 분산 배치되어 있으며, 항공모항전대가 순항하기는 하지만 중국이 확보한 거점 수에 비하면 이 지역에서 미군의 열세는 사실인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질 것이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지역은 2050년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생산인구가 집중된 지역이며, 중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는 역설적이게도 이 지역의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인도를 돕는 방식으로 이 지역에서 중국과의 대리전을 진행하는 중이지만, 인도 주변 국가(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의 뿌리 깊은 반인도 정서에 더해 모디 총리의 힌두이즘적 국수주의 정책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며, 결국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확립을 가속화하는 역할만 할 것 같아 염려된다.

최근 미군 재배치에 이어 북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겠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으로 보아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현상 유지 차원에서 덮어두고 오바마 정부 당시 자신들이 확보했던 지역 이권을 다시금 회복하려는 것 같다. 이는 분명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는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 트럼프 4년 동안 미국의 전략적 오판은 “힘의 공백지대”에서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중국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기에 이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미국은 시간과도 싸워야 하고, 자신들의 과거 정책까지 검토해야 한다.

반대로 중국의 입장에서 지금의 정책 기조(내정 간섭 ╳, 경제 교류 확대)를 계속 유지하기만 해도 이 일대에서 인도 세력을 타도하고, 나아가서 베트남 급진파들의 모험적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베트남 선거에서 권위주의적인(그리고 중국과의 대화를 통한 국경 문제 해결을 선호하는) 응우엔 푸 쫑 서기장의 연임은 중국에게 큰 승전보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이 지역의 상황은 미국에게 불리하며, 미국은 중국의 세력 팽창을 억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뿌리깊은 반인도 정서와 베트남에 대한 주변국의 경계심과도 싸워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지금처럼 베트남이나 인도를 통한 대리전보다는 직접 이 지역 문제에 개입해야 하며, 공격적인 정책을 수립해야만 중국의 팽창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중국은 이 지역의 뿌리깊은 반인도 정서와 베트남에 대한 주변국의 경계심을 이용해 우군을 확보하며, 소수민족 문제를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서도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워 이들과의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려 할 것이다.

이제 미∙중 양국간 벌어지는 세계 패권 게임의 승패는 바로 이 지역을 누가 확보하는지에 달려있다. 중국이 이 지역에서 배타적 권리를 확보하면 중국의 승리라 할 수 있으며, 미국이 양국간의 힘의 균형, 더 나아가 중국 세력을 축출하면 미국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 일대의 향후 동향이 실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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