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한국 해군에서 경형 항공모함 도입 문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었는데 재야의 여러 고수들의 비판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다.
솔직히 필자는 군사 전문가도 아니고, 군사 분야에 관심있는 재야고수도 아니지만 항공모함 도입은 한국의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미∙중의 정치-군사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양국간 주요 충돌지점은 타이완 해협과 “힘의 공백지대(발루치스탄 앞바다에서 타이완 해협에 이르는 해역)”로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은 중국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출구로 인식하는 지역이자, 미국에게도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양국의 충돌은 결국 이 해역에서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국 중요도 또한 해당 국가의 해군역량에 따라 재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미 자국 해군 배수량의 1/3에 이르는 중국 해군의 군사적 돌파를 막기 위해 제7함대의 전력을 증강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와 더불어 이들의 해군 전함이 동아시아 해역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볼 때 일본은 한국보다 몇배나 중요한 나라일 수밖에 없다. 일본 해상자위대 총 배수량은 한국 해군의 갑절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 비해 다양한 전함 선종을 보유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은 이즈모급 다용도운용호위함 2척, 휴가급 헬기탑재호위함 2척 등 항공모함이라 칭할 만한 함정을 운용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 해군은 항공모함이라 할 만한 것이 없으며, 그나마 독도급 강습상륙함이 마음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우고 있다.
물론 한미일 동맹체계에서 한국이 별도의 항공모함을 가지는 것은 전술적 의미는 없다. 오히려 한국은 지금처럼 이지스함을 꾸준히 도입하고, 대형 구축함으로 구성된 2~3개 함대를 운용하는 것이 이롭기는 하다. 그러나 무기의 도입이라는 것이 반드시 전술적 수요 때문에 도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력은 결국 정치적인 이익을 얻는 도구에 불과하다. 모든 군사력은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며, 만일 이와 같은 대명제에 동의한다면 경형 항공모함 도입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다. 현재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체계 내부에서 일본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일본이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해군력을 동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 해군은 중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와 비교해보면 현재 자국 해상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그나마 참여정부 이래 시작된 구축함 건조계획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미약하지만 기동함대를 하나 운용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해군의 중요성이 날이면 중요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미국은 과연 일본을 중시 여길까? 아니면 한국을 일본과 동등한 동맹국으로 생각할까?
당연히 일본이 한국보다 몇배는 중요한 동맹국일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의 안보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가 믿을 만한 자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는 나에게 미국이 사드를 성주에 배치한 까닭은 한국 영토를 보호하려는 목적보다는 동해에 배치될 연합 함대를 보호할 목적이 더 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동해 저편에 있는 일본 본토 또한 사드 방어체계에 의해 보호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결정이 이미 미중간의 충돌이 가시화되던 오바마 행정부 때 이루어진 정책 결정임을 고려한다면,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동맹국 방어 체계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완성되어가고 있다.
하물며 미∙중 양국간의 정치군사적 충돌 격화로 인해 해군의 중요성이 날이면 높아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만일 우리가 (총 배수량 기준) 일본 해상자위대의 6-7할에 이르는 전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생각인데 미국은 일본 중심의 집단 안보체제에 우리나라를 강제로 편입시킬 것이며, 이 경우 우리측 의사보다는 한국을 방패삼아 자국의 국토 안전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의사가 더 강력하게 반영되는 안전보장 체제가 만들어질 것 같아 염려된다.
나는 지금 동맹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맹 내에서도 중요도에 따라 나름의 서열과 위계가 존재하며, 우리의 국익에 맞는 선택은 당연 이 동맹체계 내부에서 일본보다 중요하거나 못해도 일본과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 일본의 40%에 불과한 해군 전력으로 이 동맹체제 내부에서 우리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기를 기대하는 것이야 말로 난센스 아니겠는가? 비록 전술적 효용성은 없더라도 정치적 카드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 경형 항공모함 도입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