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진압을 바라보며

계연춘추 2022. 1. 11. 10:46

중앙아시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면 저 두 편의 글을 참고해도 된다.

https://letrleter.tistory.com/m/85

“호라산 벨트”와 중앙아시아 정치 지형의 변화(아프가니스탄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내가 최근에 국내 언론기사를 보다 보니 재미있는 댓글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많이 봤는데, 과거 탈레반과 ETIM의 관계 때문이라 본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국내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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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etrleter.tistory.com/m/91

“호르무즈 딜레마”와 한국의 자원 안보 위기

중국이 주도하는 연횡連橫식 국제질서인 “호라산 벨트”의 형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뜻한다. 이 도전은 우리가 기존의 미국과의 동맹관계로 해결될 수 있다 믿던 원유 수입루트가 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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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인종 밎 부족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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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술탄·알마티의 1월 -캉글리 벨트의 완성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LPG 가격 인상이 도화선이 된 이 사건은 알마티, 누르술탄 등지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으며, 시위대는 옛 수도 알마티 공항을 접수했을 뿐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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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래전부터 카자흐스탄이 친러 국가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는 ①친러 성향의 소주즈 출신의 존재와 ②카자흐스탄 북부에 사는 40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계 인구, 그리고 ③나자르바예프 측근들의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점점 고조를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자르바예프는 자신의 권려 강화를 위해 기존의 친러 서향의 소주즈 출신 대신 친중파·중주즈 출신들을 대거 등용했으며, 이들은 오랫동안 카자흐스탄의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저항하기 불리한 지정학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중립주의 외교노선을 견지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중국을 이용해 러시아를 견제하는 카자흐스탄의 외교 노선은 생각보다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카자흐 한국 시절부터 천러 성향이 강한 소주즈와 달리 중주즈는 청나라를 끌어들여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자 노력했으나, 소주즈와 대주즈 연합이 결성되면서 중주즈는 카자흐 내부에서 고립되어버렸으며, 결국 카자흐는 러시아의 지배를 당하게 됐다. 이 같은 소주즈와 대주즈 연합은 제정 러시아와 소련 시기까지 지속됐으나, 대체로 실권은 소주즈 출신들이 잡고 있었으며, 대주즈 출신은 허울뿐인 명예직이나 최고위직(물론 바로 아랫사람들은 모두 소주즈 출신들이다)만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주즈 출신들의 권력 장악은 나자르바예프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나자르바예프 집권 이래, 러시아 제국과 소련 통치 하에서 실권을 잡은 소주즈 출신들은 몰락하게 되고, 대주즈와 중주즈 연합이 결성된다. 이 같은 새로운 권력 구도 형성에 따라 초주즈 출신 친러파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이들을 대신해서 카자흐 민족주의자들과 친중파 정치인들이 나자르바예프 측근으로서 새로이 권력을 잡게 된다. 이 같은 카자흐스탄의 중립주의 노선에 따라 중국은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었으며, 카자흐스탄 친중파 정치인들도 중국으로부터 오는 거대한 부를 독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중국으로부터 오는 거대한 자본은 카자흐스탄이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다르게 재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국부로 추앙까지 받은 이 독재자는 두 가지를 놓쳤는데, ①카자흐 내부의 소련 향수를 무시한 것과 ②측근들의 부패가 생각 이상으로 심하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소련 시절, 온갖 혜택을 누린 소주즈 출신들의 불만이 컸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카스피해 연안 지역의 거대한 원유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해서 아무런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했다. 매년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원유를 매입하는 베이징은 나자르바예프와 그의 친중파 측근들에게만 경제적 이득을 안겨줄 뿐, 카자흐스탄에서조차 차별당하는 소주즈 출신들에 대해 무지했으며, 이들의 불만을 돌아보지 않았다. 또한 162명에 불과한 나자르바예프 일족과 측근들은 카자흐스탄 전체 부의 55%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군경 권력까지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 영속화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카자흐스탄 내부의 빈부격차만을 불러왔으며, 개발도상국임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의 실업률은 총 인구의 5%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110016031&wlog_tag3=naver

카자흐 시위 불 댕긴 ‘양극화’… “집권층 162명이 富 55% 독식”

前대통령, 8600억원 부동산 보유 도피설 속 안보회의 의장서 물러나 5800명 체포… 現대통령 승리 선언, 카자흐스탄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중 시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부를 독점한 집권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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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나자르바예프가 물러날 당시에도 오랜 독재로 인해 카자흐스탄 내부에서 국부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시민들을 달래기 위해 나자르바예프가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나자르바예프에 대한 카자흐스탄 시민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소문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정상적인 경제 활동까지 강제적으로 멈추게 되자, 시민들의 불만은 당연 나자르바예프 일족과 그 측근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반정부 시위는 나자르바예프 정권에 불만이 많은 소주즈 출신들이 사는 카스피해 연안에서 시작해 아스타나와 알마티로 번졌으며, 여기에 카자흐스탄 내부의 급진 이슬람 세력까지 가세해 전국적인 시위로 번지게 됐다.

비록 대통령이었지만 실권이 없던 토카예프는 이번 시위를 차도살인의 기회로 이용했다. 그는 시위 진압을 명목으로 푸틴에게 공수부대를 포함한 군 병력을 파병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측의 무례한 요구를 일부 수용하기로 했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러시아는 토카예프에게 ①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할 것, ②러시아어를 카자흐스탄의 제2 국어로 지정할 것, ③카자흐스탄에 러시아군 군사기지를 설치할 것, ④러시아인 다수 거주지역을 러시아인 자치구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중 상당수가 가짜 뉴스이기를 바라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카자흐스탄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중립주의 외교노선은 사실상 토카예프의 손에 의해 끝나게 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욕구는 이 완숙한 정치인으로 하여금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놓게 했다. 그는 러시아군대를 카자흐스탄으로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2018년 카자흐스탄에 의해 국경 봉쇄까지 당한) 키르기스스탄의 군대까지 시위 진압 명목으로 불러들였다.

https://view.asiae.co.kr/article/2022010912151698558

[국제이슈+] 카자흐스탄 시위의 실제 책임자, '누르술탄'

카자흐스탄의 정정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막후 통치자로 알려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국외탈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자흐스탄이 옛 소련에 독립한 이후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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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르바예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 외국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되자, 토카예프는 비로소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드러냈다. 그는 카자흐스탄 내 친중파 거두이자 나자르바예프의 측근인 카림 막시모프 KGB위원장(그는 중국 베이징외대, 우한대를 졸업했다)과 나자르바예프의 조카인 아비쉬 KGB 제1부위원장을 체포했다. 이어 토카예프는 이번 시위가 ①카자흐어를 사용하지 않는 몇몇 테러 분자들의 소행이며, ②이들은 카자흐 내 기지가 있었으나 막시모프는 이를 보고하지 않았기에 체포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나자르바예프가 추구하던 중립주의 외교노선는 이제 종언을 고할 것이며, 한때 군부의 측근으로 부를 향유하던 카자흐스탄 내 친중파·중주즈 출신 정치인들은 이제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11108510005918?did=NA

카자흐, 시위사태 일단락… "무슬림 극단주의세력이 배후" 주장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정부의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에 항의한 대규모 시위사태가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현지 당국이 밝혔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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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친러화가 가져올 지정학적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호라산 벨트”와 중앙아시아 정치 지형의 변화》에 자세히 쓴 바 있으니, 여기서는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번 시위가 재미있는 점은 바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①친러 성향의 소주즈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②이 같은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군대를 끌어들였다.
③그리고 외세의 힘을 이용해 친중파와 중주즈 출신 정치인들을 제거한다.
④러시아의 대 카자흐스탄 영향력은 강화된다.

친러파의 반정부 시위를 러시아·키르기스스탄 군대로 진압하면서 친중파·중주즈 출신 정치인들을 몰아내는 재미있는, 그러나 아이러니한 광경을 보며, 우리는 토카예프의 권모술수에 감탄함과 동시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고사를 떠올리게 된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오로지 영원한 진리만 존재할 뿐이다.




이 와중에 우리 언론은 또 아래와 같은 3류 소설을 쓰고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110147100083?input=1195m

中, 시위진압 카자흐 정부 연신 지지…신장 불똥 의식했나 | 연합뉴스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이 반(反)정부 시위를 거의 진압한 카자흐스탄에 연신 지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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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중국이 신장 안보 때문에 카자흐스탄 정부를 지지한다고 하는데, 이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무지로부터 나온 발언이다. 대체로 중국 영내에 사는 카자흐족은 러시아를 피해 중국으로 도망친 중주즈 출신들이며, 이들의 성향 또한 카슈가르와 호탄의 위구르족과는 달리 친중 성향이 강하다(카자흐의 중주즈, 투르판-하미 지역의 위구르족, 중앙아시아 회족은 중앙아시아에서도 친중으로 이름 높은 집단인데 이 무슨……). 오히려 중국이 카자흐스탄 정부를 지지하는 까닭은 석유 공급망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매년 360만 톤에 달하는 석유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으며, 훗날 이란 북부 유전지대에서 시추한 석유 또한 (파이프라인 건설 전까지) 카스피해를 통해 카자흐스탄 악타우 항구까지 이동한 다음, 이곳에서 중국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보니 베이징 지도부 입장에서는 카자흐스탄의 권력을 누가 잡든 간에 누르술탄의 주인과 최대한 협력할 수밖에 없다. 저런 기사를 쓴 기자는 신장도 모르고, 자원 공급망도 모르며, 지정학도 모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첨언하자면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위 진압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인터넷 차단이었다. 이 때문에 대다수 신장 지역 사람들도 이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문을 통해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카자흐스탄 내 일부 친중파가 반정부 세력을 은닉했다는 이유로 숙청 당하는 중인데, 베이징에서 당연히 자신들과 아무 관계없다는 발언을 통해 토카예프와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힐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만일 소주즈의 친러 성향과 중주즈의 친중 성향에 대해 알았다면 저런 기사를 썼을까 싶기도 하다.




https://letrleter.tistory.com/m/144

중앙아시아 내부의 분열 요소와 OTS의 불안한 미래

연합뉴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왔다. www.yna.co.kr/view/AKR20211227063800074?input=1195m 신장 독립운동 부추길라…中, 튀르크계 국가 밀착에 긴장 | 연합뉴스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중국이 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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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na.co.kr/view/AKR20220107071651009?input=1195m

러, 카자흐에 공수부대 파견…시위사태 지원 평화유지군으로(종합2보) | 연합뉴스

(모스크바·서울=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이의진 기자 = 반정부 시위가 격화한 카자흐스탄에 파견된 옛 소련권 안보동맹의 평화유지군에는 러시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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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카자흐스탄의 친러화로 인해 에르도안의 투르크 공동체 구상도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도 우리 언론은 중국의 반응만 간략히 소개했을 뿐, 이 사안에 대해 가장 강력히 반발한 러시아 측 반응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유라시아 학파의 등장과 함께 러시아는 자신들의 국가 성격을 제국으로 다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루스와 투르크, 몽골 3개 민족의 연합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자르바예프와 에르도안의 동상이몽이 만든 OTS는 카자흐스탄 내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외교적 장치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크렘린궁의 역린을 건드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카자흐스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카자흐스탄과 터키의 만남은 단순한 안보 위협 그 이상을 넘어선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패권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적당한 명분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카자흐스탄으로 남하해 자국의 실질적 경계를 시베리아 철도에서 시르다리야 강까지 확장하고 싶어했다. 노련한 정치인 토카예프는 이런 나자르바예프의 독자노선에 대한 모스크바의 불만을 잘 읽어냈으며, 이를 자신의 권력 강화에 이용했다. 친러 국가인 키르기스스탄 또한 나자르바예프 시절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국경을 봉쇄당해 낭패를 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 반정부 시위 개입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결국 이번 반정부 시위 진압은 ①나자르바예프의 독자노선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과 ②2018년 봉쇄 사태에 대한 키르기스스탄의 복수심, 그리고 ③나자르바예프의 후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토카예프의 정치적 야욕이 만들어낸 비극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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