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국내 언론의 “지정학” 남용 현상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ETIM 지원설에 대해

계연춘추 2021. 7. 17. 11:37

일단 기사 몇 편을 보자.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16243

[중국은, 왜] 다시 열린 '제국의 무덤'…왕이 급파한 '스탄' 3개국의 비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압박해 국토의 85%를 장악했다는 주장을 전한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서북방 경고등이 켜..

news.jtbc.joins.com


http://m.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1071602109969660001

[이규화의 지리각각] 천둥벌거숭이 탈레반, 중국을 찍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주요 군사 세력으로서 테러와 단호하게 결별하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난 12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왕이 외교부장이 투르크메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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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sedaily.com/NewsVIew/22OZZVCPZW#cb

[만파식적] 와칸회랑

19세기 중엽 대영제국과 러시아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퉜다. 남하하는 러시아와 북상하는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주변에서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영국은 러시아의 인도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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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하다가 커피 뿜었다. 웃겨서.

이번 탈레반 ETIM 지원설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 중 하나가 “지정학”이 아닐까 싶다. 대체로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야기하면서, 이 지역이 중앙아시아 각국으로 테러리즘을 수출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탈레반이 ETIM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국가 지도자라면 당연히 자국에 적대적인 테러리즘이 수출되는 것을 방지하며,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결론부터 말해 상술한 기사들은 지정학에 대해서도 모르고, 와한회랑에 대해서도 모르며, 중앙아시아의 지리적 조건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일단 저 기사를 쓴 기자들이 남용하는 “지정학”부터가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학술 용어가 아니다. 지금 국내 유수 학술지와 언론 기사를 보면 “정치지리학” 또는 “지리적 조건”이 사용되어야 하는 곳에 지정학이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정학은 단순히 공간의 2차원적 구조와 정치 행위와의 상관성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심지어 정치지리학과 지정학의 차이는 지정학 개론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 아닌가?). 쉽게 말해 지도 가지고 와서 설명한다고 지정학적 담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조건이 중요한 까닭은 이 지역이 매킨더에 의해 “심장지대”로 분류된 내륙하천 지대와 반월지대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여기 해당하는 지역은 간다라-카불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은 “심장지대”로 오랫동안 유목민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그 유목민족이 바로 탈레반과 연관 깊은 파슈툰족이다. 물론 파슈툰족도 두라니 왕조 이래 지배계층이 되어 도시에 거주하면서 농경 생활을 영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거주지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호전적이며,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들을 지배한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종족적 우월감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다. 그러나 힌두쿠시 산맥 북쪽에 위치한 상업도시 헤라트, 발흐만 하더라도 파슈툰족보다는 페르시아 계통의 농경 민족이 거주하는 땅이고, 지금도 탈레반에 반하는 여러 종족주의 연합체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이 여러 나라와 국경선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분석은 정치지리학의 영역일지는 몰라도 지정학의 영역은 아니다.

전통적 지정학이었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지형, 자원 분포, 접근성(교통 인프라), 공간의 군사적 이점에 치중했을 것이며, 이와 같은 요소들을 결합한 다음에 탈레반의 성격을 규정했을 것이다. 만일 프리드먼-자이한 계열이었다면 인종과 자원 분포에 더 치중했을 것 같지만, 이렇게 국경선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다. 차라리 정치지리학적 분석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다음으로 와한회랑 이야기를 하면서 지정학 운운하는 기자들이 있는데, 나는 이 기자들이 앞으로 기사 쓸 때, 지정학이라는 용어를 신중히 사용하기를 바란다. 와한회랑 종족구성은 키르기스족으로 단일화되어 있는데, 이들은 탈레반이 주장하는 파슈툰 부족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더 정확히 말해 탈레반에 호응할 만한 접점이 없다). 아울러 와한회랑의 인구 분포를 보면 20km당 1개 가구가 살고 있을 정도로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길은 타슈쿠르간 방면뿐인데, 이 지역은 예로부터 중국-소련 국경지대에 속하는 지역이다 보니 중국군이 오래 전부터 초소를 세워 지키고 있었고, 그나마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산길도 중국군 국경 수비대가 통제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지역은 인적이 드물다 보니 생소한 사람이 출몰하면 이 지역의 부족장은 중국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수비대에게 해당 사실을 알린 다음, 부족 모두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한다. 이런 지역을 탈레반이 이용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낭만주의적 상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술한 이유 때문에 과거 탈레반이 ETIM을 지원할 때도 타키지스탄 내전으로 인한 정국 불안정을 이용, 타지키스탄 남부에 거주하는 파슈툰족 네트워크를 통해 신장新疆 카슈가르 지역의 ETIM 활동을 지원했지, 와한회랑을 통해 지원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어디까지나 알려지거나 추적할 수 있는 케이스만을 토대로 했을 때 이와 같은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조차 타지키스탄 내전이 끝나고, 중국과 타지키스탄 사이의 국경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사실상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입장에서도 파키스탄 탈레반을 통하는 것이 아니면, ETIM 지원이 어렵다. 이런 기사를 쓴 사람들은 러시아제국과 대영제국에 의해 임의로 만들어진 완충지대-와한회랑-에 대해서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이 지역의 인종 분포와 교통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탈레반이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이용해 테러리즘을 수출하고, ETIM을 지원할 것이라는 뉘앙스의 기사도 봤는데, 이 기자 역시 중앙아시아의 지리적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 만약 탈레반이 (정부 기관 감시를 피해)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해 ETIM을 지원하고 싶다면, 카라쿰 사막과 키질쿰 사막을 넘어야 하는데, 이는 해당 지역 유목민족들의 협력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카라쿰, 키질쿰 사막 일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은 이슬람 세속주의 성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파슈툰 부족주의에 강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심지어 어떤 경우, 거부감을 가질 접점조차 없다). 그나마 ETIM을 도울 만한 이들은 중앙아시아 위구르인 네트워크인데(30만 명이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북부∙중부의 도시, 공업지대에 분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도 탈레반과 명확한 접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언론에서 테러조직을 하나의 단일체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테러조직이라 해도 ①이슬람 원리주의를 가미한 세속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이들과 ②지하드 정신에 입각해 순수 테러 활동만을 목표로 하는 이들은 다르다. 일단 양자를 구분해 보자.

①이슬람 원리주의를 가미한 세속정권 수립 →탈레반, 이슬람운동, 라카 해방 이전의 IS 등
②오로지 지하드 정신에 입각한 테러 활동 자행 →알카에다, 라카 해방 이후의 IS 등

상술한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테러 단체라 해도 내부로 들어가면 이들의 성격과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외부에서 보기에 단결된 까닭은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테러리즘 활동에 참여하는 파슈툰족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많아지고, 반대로 외부 테러리즘 단체들(알카에다) 또한 파슈툰 부족주의 단체들(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파키스탄 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 등)을 지원하다 보니 이들이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파키스탄 탈레반의 분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와 방법론적 차이로 인해 분열 내지 분화하게 된다. 일례로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통합을 외치는 IS와 파슈툰족이 지배하는 세속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파슈툰 부족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슬람 테러리즘 단체들이 단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물론 미국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단결되어 있다), 우리가 그들의 분열과 대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그리고 중국과 같이 내륙 아시아를 지배하는 나라들은 같은 나라와 종족 내부의 분열과 반목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다).

따라서 테러리즘 단체라 해도 이들의 성격과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테러의 대상도 달라진다. 파키스탄 탈레반의 경우, 파키스탄 정부 전복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고, 당연 이들 입장에서는 파키스탄 정부를 돕는 중국도 자신들의 테러 행위 대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우리는 왜 파키스탄 탈레반이 ETIM 활동을 돕는지 알 수 있다(적의 적은 나의 친구).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경우,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이들의 정치적 목표이며, 이들의 주적 또한 미국과 나토 동맹국이지 중국이 아니다(오히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중국의 교류는 증가한 측면이 있다). 현재 상황만을 놓고 판단해 보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부를 통해 중국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자신들이 집권한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에 지속적인 투자를 할 것이며, 아프가니스탄에 어떤 군사적인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파키스탄 탈레반의 정치적 목표가 그나마 일치된 상황에서는 ETIM 지원이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탈레반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고, 중국에 대한 태도도 다른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ETIM의 연관성 운운하는 주장은 그리 설득력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의 진격을 막겠다고 과거 군벌 집단을 다시 재무장하는 것이야 말로 ETIM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는 IS와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의 세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아프가니스탄 정국을 통제하고 싶은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한 다음, 역으로 중국, 파키스탄과 함께 IS 등을 소탕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최근 쓰인 기사들을 보면서 허탈하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①지정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②와한회랑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며, ③테러리즘의 정치적 목표와 지향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세 가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으니, 당연 소설 쓰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는가? 《논어》에 보면 공자께서 “知之為知之 不知為不知 是知也”라 하셨는데, 이 글귀가 유독 생각나는 하루다.



기사 내용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슬람 형제 운운하기 전에 그 “이슬람 형제”인 테러 단체들이 테러리즘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현상이나 설명하기를 바란다(IS와 알카에다의 주도권 싸움이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탈레반은 미국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목된 세속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군사 조직이라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지금처럼 미∙중 대립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경직될수록 중국과 탈레반 같은 세속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군사조직과의 연대 가능성은 높아지게 되어있다. 나는 오히려 테러 단체들이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와 같은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을 공격할 것 같아 염려된다.

※ 2021년 7월 18일, 빠진 내용을 보충하고 몇몇 구절들을 고쳤다.

※ 2021년 7월 22일, 서울경제 기사 《[만파식적] 와칸회랑》을 추가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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