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왜 한미일 3개국은 중국의 전략적 진출 방향을 서태평양 방향이라 예상했을까?

계연춘추 2021. 3. 15. 13:51

트럼프 시대 미국의 전략 부재를 비판할 때 우리는 미국이 이상하리만큼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장쩌민 시대 이후 중국의 대략적인 진출노선은 석유 운송로 확보였고, 이란 후지스탄의 석유를 중국까지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미국의 이와 같은 판단은 황당하다 못해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었다. 심지어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언급하면서 류야저우 《서부론》이라는 글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받은 충격이 컸는데, 어쩌면 그간 한미일 3개국은 기본적(이라고 썼지만 실은 상식선의 문제다)인 텍스트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을 억제하겠다고 그간 외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 정치인들이나 부호들이 정치적 이유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중국의 인도양 진출 계획이 담긴 문서와 계획안을 제공했음에도, 미국의 서태평양 정책은 경직됐고 중국을 억제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동적이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에서 중국어 배우려고 1년 정도 체류했던 J박사조차 알고 있던 중국의 중앙아시아-인도양 병행 진출 전략을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내 궁금증은 “왜 한미일 3개국은 중국의 진출 방향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했을까”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기서는 왜 이와 같은 전략적 오판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① 중국인이 쓴 책을 읽지 않는다.
해군 관계자들과 교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들이 중국에 대해 놀랄 만큼 무지하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추천해준 책을 살펴보니 모두 미국과 일본에서 중국 위협론을 주장하며 쓴 책이 대부분이었고, 중국 장성이나 영향력 있는 학자가 쓴 책은 (거짓말하지 않고) 단 한권도 없었다. 중국에 대한 무지가 그간의 전략적 오판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② 일본 학자들이 쓴 책을 열심히 읽는다.
분명 일본은 70년대부터 중국과 교류하면서 중국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력을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이 미 서태평양 안보체제를 이용해 자국의 안보 역량 강화를 힘쓴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 오랜 세월 미국이 제공하는 안전 보장 체제에 익숙해진 일본은 당연 미국이 오키나와 열도와 혼슈, 큐슈의 전략 지점에 주둔하는 현 상황이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또한 센카쿠 열도 사태로 대표되는 중국과의 서태평양 열도 쟁탈전에서 미국이 개입하기를 누구보다 바라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일본 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당연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강조해 미국이 일본에 대규모 병력과 전략자산을 배치시키는 현 상황이 유지되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고, 중국이 서태평양에 진출할 조짐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일본은 이를 확대 해석하여 중국이 서태평양을 장악해 미 본토까지 위협할 세력으로 성장하려 한다고 강변했다. 그리고 아시아 정세에 종합적 통찰력이 전무한 미국 군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편향된 정보를 신뢰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히라마쓰 시게오 《마오쩌둥 덩샤오핑의 백년대계》는 일본 학자들이 왜 이와 같은 전략적 오판을 저질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 대륙은 태평양의 서안에 위치하며 커다란 대륙이지만, 접해 있는 해양이라고는 태평양밖에 없다. 중국이 해양으로 발전해 간다면 그 방향은 오직 한 가지, 바로 태평양뿐이다. 연해의 모든 해역은 대륙을 지키는 자연의 요새인데, 입장을 바꾸어 말하자면 중국은 주변의 국가, 지역에 의해 포위되어 있고, 반봉쇄의 상태에 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성립된 이래 20여 년 동안 미국은 이러한 지리적 조건을 이용하여 중국 주변의 여러 국가들과 군사 동맹을 맺고, 혹은 미군기지를 건설하여 중국의 발전을 장기간에 걸쳐 정체시켜 왔다.”

-히라마쓰 시게오 저, 이용 옮김 《마오쩌둥 덩샤오핑의 백년대계》 제6장 《시작된 해양의 시대》 제99-100쪽

일단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 행사하는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당시에도 일정부분 진척이 이루어지고 있던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간과한 것은 둘째 치고, 러시아의 요구에 따라 미군이 중앙아시아에서 병력을 차츰 철수시키던 상황까지 간과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당시 미군은 중앙아시아에 마지막 남은 거점인 마나스 공군기지까지 루마니아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일본의 군사 전문가라는 사람이 어찌 미군 동태에 대해 이리도 무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일본 학자들은 단지 자신들이 보고 싶은 사실만을 봤을 뿐, 중국에 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데 실패했으며, 이와 같은 일본 학자들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전략적 오판은 미국 태평양 전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③미국 지정학자들의 오만한 판단을 신뢰했다.
이 블로그에서 수 차례 비판한 바 있지만, 미국의 조지 프리드먼, 피터 자이한 등 지정학자들은 중국의 서쪽이 넘을 수 없는 산맥과 고원지대 뿐이며, 중국을 해상에서만 봉쇄해도 아사할 것이라는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아무다리야 강, 시르다리야 강 지류가 만들어내는 하천 계곡으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지리적인 지식만 있으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도 넘을 수 있는 지역이다. 역사를 돌아봐도 이광리, 모리연, 고선지 등 대군을 이끌고 파미르 고원과 톈산산맥을 넘은 장수들은 많으며, 이런 전통적인 산길은 오랜 세월 관리되다 보니 오늘날에도 이런 전통적인 산길을 중심으로 포장 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대체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길은 7갈래로 나뉘는데 아래와 같다.

①우르무치→타청→아라산커우→아스타나
②우르무치→일리→알마티→타슈켄트
③우르무치→투르판→쿠처→토크막→비슈케크
④우르무치→투르판→쿠처→카슈가르→오시→코칸트
⑤호탄→와한회랑→바다흐샨→쿤두즈→발흐
⑥호탄→타슈쿠르간→길기트→이슬라마바드/델리
⑦호탄→판공호→라다크→이슬라마바드/델리

이처럼 톈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을 손 쉽게 넘을 수 있는 여러 전통적인 무역 루트가 있고, 심지어 이런 전통적 루트는 흐루쇼프 집권기 이전까지 사용되어왔다. 단지 중∙소 대립과 이어진 소련 붕괴가 초래한 경제적 혼란으로 인해 한동안 사용이 중단되었을 뿐이지, 결코 넘을 수 없는 자연 장애물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지정학자들은 중국이 사막과 산맥으로 구성된 이 지역으로 진출하지 않으리라 판단했으며, 자국 해군을 동원해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봉쇄하기만 해도 중국은 굴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 지정학자들의 전략적 오판과 일본의 의도적인 중국 서태평양 진출론으로 인해 미국은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억제하는 군사적 수단에 대해 고민했을 뿐, 중국정부 주도 하의 중앙아시아, 인도차이나 인프라 건설 사업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무지했으며, 이와 같은 사업을 알고 있음에도,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나중에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에 대해 알게 되자 중국이 말라카 해협을 경유한 인도양 해상 루트를 확보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와 같은 전략과 중앙아시아 인프라 건설사업 간의 연계성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심지어 미국은 인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오판을 저질렀는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인도양 진출에 대해 자각하고 있었지만, 남아시아 국가들이 인도의 팽창에 느끼는 두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막연히 인도가 이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해 주리라 기대했다. 결국 게르만 족의 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갈리아 족이 카이사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것과 같이 중국을 이용해 인도를 견제하려는 남아시아 제국의 정치적 행보로 인해 중국의 인도양 진출은 가속화되었다.


결국 미국의 전략적 오판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래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지, 경신輕信, 오만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 체계가 없던 미국은 일본 자위대가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동아시아 전략을 수립했으며, 일본은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만을 막으려 했기에 계속 이와 관련된 정보만을 미국에게 제공했다. 아울러 미국의 지정학자들은 중앙아시아의 전통적 무역 루트에 대해 몰랐으며, 심지어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지 못하리라 생각한 로마 원로원처럼 오만하기까지 했다. 무지와 (일본에 대한) 경신, 오만이 겹쳤으니 당연 중국의 국가 전략을 오판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고, 이 틈을 이용해 중국은 미국과의 큰 마찰 없이 중앙아시아, 인도양 진출을 이어갔다. 결국 미국은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중국 출구전략에 대한 오판은 당연 국내 지식인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과 인도양 진출을 경계하라는 중국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해상에서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기만 해도 중국인들은 아사한다는 황당한 발상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중국 해군력 증강과 남중국해, 동중국해 일대에서의 미중 전략자산만을 관찰했을 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 점차 자신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자성론이 나오기야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 인지부조화 현상이 일어날 것 같다. 즉 자신들의 전략적 오판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우리들 내부에 적이 있다”면서 그들이 보기에 친중적 행보를 보였던 정치인, 학자에 대한 마녀사냥을 시작할 것이고, 반중 전선에서 이탈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파쇼적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라 본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인도양 중심 경제체제의 형성 단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어떤 상태까지 전락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흐름을 잘못 판단하고 있음을 인정할 것이지만 그때는 무엇을 해도 늦었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중국의 팽창에 대한 제이크 설리번의 기고문을 읽었다. 그 글에 따르면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판단하기로는 중국은 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양, 인도차이나 지역으로 진출할 것이며, 서태평양은 진출한다 하더라도 거의 맨 마지막 단계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가까운 미래에 중국과 일본, 또는 다른 서태평양 일대의 친미 국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 이르러 일본, 한국의 극우 성향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중국의 서태평양 진출)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때 즈음해서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고, 서태평양 진출은 “세계섬”에서 자국의 패권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시도하는 정치∙군사적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이미 무엇을 해도 늦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할 일은 동아시아에 배치된 병력과 전략자산을 인도양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배치하는 것이지, 한반도와 일본에 배치된 전략 자산을 증강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오판을 계속 이어간다면 미국은 세계 패권을 최종적으로 중∙러 군사협력체에 빼앗기게 될 것이다.

2021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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