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중∙러 군사협력체”란 무엇을 뜻할까?

계연춘추 2021. 3. 12. 11:26

나는 글에서 “중∙러 군사협력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 동맹을 채결하지도 않았으며, (동맹 채결이 임박했다는 기사에 대한) 푸틴 대통령과 중국 국방부의 반응으로 보아 가까운 시일 내로 이들이 군사 동맹을 채결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 집권 이래 양국의 군사 행보를 보면 상하이 협력기구(SCO)라는 준 군사동맹이나 다를 바 없는 국제기구를 이끌고 있으며, 상시로 연합훈련을 진행하는 등 동맹이나 다를 바 없는 군사적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19년 12월 27일 호르무즈 해상에서 열린 중국, 러시아, 이란 3개국 연합훈련을 시작으로 이란도 본격적으로 중국, 러시아와 군사적 행보를 같이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 러시아, 이란의 군사적 유대관계는 대체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과 관련이 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맺은 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다음, 이란에 대한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재개했다. 그러나 이란은 대국이기도 하지만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 아프가니스탄 하자라족, 예멘 반군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동 지역 강국이기도 하다. 사실상 중동 지역에서 이란에 맞설 나라는 터키와 이스라엘뿐이고, 이조차 터키의 서구화와 세속화로 인해 오랜 세월 중동 문제에 깊이 개입하기를 꺼려하면서 사실상 이란은 현재 중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했다. 이는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하기를 원치 않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반 이란 노선을 견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이스라엘 영토를 군사적으로 공격한 바 있는 헤즈볼라를 이란이 지원했음이 밝혀지면서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당연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의사에 따라) 이란과의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을 제재하기에 이른다.

2000년대까지 이란과 러시아, 중국의 관계는 그다지 우호적 관계라 말할 수 없었다. 제정 러시아 시절 러시아와 이란이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두고 서로 다툰 까닭도 있지만, 이란 혁명 이후에도 호메이니의 고립주의 외교노선 때문에 테헤란은 사회주의 진영에 속해 있던 소련, 중국과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이란은 점차 고립주의 노선에서 탈피해 세계 각국과의 교역을 통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중국, 러시아와 긴밀한 정치경제적 유대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트럼프의 대 이란 제재로 인해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제적 협력을 통해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또한 러시아는 구 소련의 계승자로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자국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잘못된 대외정책으로 인해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이 기회를 노치지 않고 자국의 영향력을 동지중해 라타키아까지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존립을 지지하는 나라 가운데 이란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란이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데에는 종교적(시아파), 정치적(이스라엘 견제)인 이유 때문이었지만, 러시아는 중동 강국인 이란이 자신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로 인해 양국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아갔다.

이와 함께 중국-이란 관계도 트럼프의 JCPOA 파기 이후 전방위적 협력 관계라 탈바꿈했다. 이란에 먼저 관심을 보인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 시절, 자국이 “말라카 딜레마”라는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음을 자각하고, 안전한 석유 수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석유와 파이프라인 건설을 시도했지만, 금세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이 자신들의 수요에 미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당연 이들은 카스피해 남부 고르간 지역의 유전지대를 가진 이란에서 석유를 수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와 관련한 학계의 논의가 지속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JCPOA 파기 이전까지 (중국 언론의 기대와 다르게) 이란이 중국의 콜에 뜨겁게 응하던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국 석유를 EU와 미국에 팔면 되지, 굳이 힌두쿠시 산맥과 파미르고원 너머 저편에 있는 중국까지 수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JCPOA와 계좌 동결 이후 이란과 중국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졌으며, 이란의 대외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져갔다. 2020년 7월, 중국 시진핑 주석과 이란 로하니 대통령은 전략 동반자 협정에 채결한데 이어 이란이 자국 유전지대에서 파키스탄 카라치까지 이어지는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중국은 “말라카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러시아, 중국, 이란은 당대 “세계섬”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란은 동지중해 라타키아에서 카불에 이르는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아무다리야 강 북쪽 중앙아시아 지역, 중국은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네팔, 그리고 인도차이나 제국과의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 나라가 손잡을 경우, 황해에서 동지중해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이 하나의 세력으로 뭉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당연 이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만큼은 미국이 막아야할 “첫번째 외교적 임무”였지만, 힘의 균형 문제 있어 놀랄 만큼 무지한 트럼프는 이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용인하고 말았다. 오히려 이 세 나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터키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실행함으로써 터키까지 러시아와 긴밀한 군사적 협력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터키의 신 오스만주의 때문에 터키와 러시아와의 관계가 이 이상 발전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들이 역사적인 문제를 넘어 반미 공동전선을 구축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부인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역사상 유라시아 대륙이 이처럼 일치된 집단안보 목표를 가지고 뭉쳤던 적은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평양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이 중국과 러시아, 이란을 중심으로 뭉쳤으며, 2019년 12월 27일 호르무즈 해상에서 열린 3개국 연합 훈련은 이들이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해 군사적 연대를 결성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이란은 중국, 러시아와 해상방어에 대한 양해각서를 채결함으로써 3개국의 반미 연대는 이제 경제 협력을 넘어 군사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이처럼 ①미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목표로 ②중국, 러시아 등이 참여한 정치∙군사 협력기구인 상하이 협력기구 구성원을 중심으로 ③이란이 참여한 집단안보 협력 체제는 완성되어가는 중이지만, 이들을 일컫는 전문적인 군사 용어가 없어 일단은 “중∙러 군사협력체”라 부르는 것이다.

대체로 중∙러 군사협력체에 속하는 국가와 정치세력은 아래와 같다 말할 수 있다.


이제 중∙러 군사협력체의 형성 의의에 대해 생각해보자.

중∙러 군사협력체 구성원들이 개별국간 군사 협력 조항을 선호하기 때문에 나토와 같은 동맹체제로 묶여 있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 이들의 출현은 미국 패권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다. 매킨더 이래 지정학자들은 해상 패권국이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세계섬” 지역에 이들을 위협할 만한 세력이 등장하지 말아야 하며, 따라서 러시아, 독일과 같은 나라들의 내륙 또는 해상 진출을 견제함과 동시에 이들이 하나의 동맹체제로 묶이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교적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 이란은 그간 반미라는 공통된 안보 목표가 있었지만, 이들이 하나의 군사 연대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가 있었고, 중국과 러시아 또한 냉전 시기 충돌한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이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사면출격四面出擊 격 외교정책은 이들로 하여금 미국 세력의 유라시아 대륙 축출을 목표로 하나의 집단안보체제를 구성하게 만들었으며, 사실상 이들은 형성되자마자 이 목표를 대부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유럽대륙과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한반도(휴전선으로 인해 한국은 정치적으로 “섬”이나 다를 바 없다)로 축소되었으며, 만일 트럼프의 재선으로 인해 중앙아시아에 고립된 마지막 남은 미국의 무장세력인 주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까지 감행되었다면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완전히 축출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트럼프 재임 기간 동안 국내 극우적 성향의 전문가들은 트럼프를 찬양하며,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이란과 이들과 군사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와 정치세력을 모두 적으로 돌려도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내가 감히 말하지만 미국은 하나로 뭉친 이들을 이길 수 없다. 군사적 수단이란 결국 정치적, 지정학적 열세를 우세로 돌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군사적 우세가 결코 정치적 우세로 이어지지 않는 케이스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만약에 군사적 우세 하나만으로도 정치적 우세가 보장된다면 지정학은 왜 등장했겠는가? 애초에 군사적인 힘으로 극복될 수 없는 한계점이 존재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정학과 다양한 정치∙외교적 기술들이 등장하지 않았겠는가?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 미국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미국을 패권국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나는 솔직히 어렵다고 본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일지는 몰라도 지정학적 의미의 패권국은 더 이상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현 국제정세에 비추어 볼 때 보다 사실에 근접한 판단이라 생각한다.

물론 패권의 의미를 경제적인 영역까지 확대 해석해 달러 중심의 무역체계를 패권의 근거로 삼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와 같은 반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한 나라가 패권국 지위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화폐가 무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예는 많다. 로마제국의 솔리두스 금화가 있고, 베네치아의 두카트 금화가 있었으며, 스페인과 멕시코의 은화가 있다. 로마제국의 솔리두스 금화는 사산조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중국에서도 일부 사용되었지만, 단지 금화의 사용만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전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패권국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스페인과 멕시코 은화는 중국 청나라 멸망 직전까지도 중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과연 은화의 사용만으로 중국이 스페인 제국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이 시기 명나라와 청나라는 자국 중심의 금융 질서를 만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GDP 1위 경제 대국이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기축통화 여부는 화폐의 국제적 신뢰도 여하에 달려있지, 지정학적 의미의 패권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군사∙외교적 대응은 미국, 나아가 세계 역사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 이들은 중∙러 군사협력체에 대항해 미국을 다시금 지상 유일의 패권국 지위에 올려놓을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중국과 러시아, 이란에게 “세계섬”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단지 대서양 해상 무역로만을 완벽한 장악한 제1 강대국으로 전락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고 있다. 만일 미국이 인도양 제국諸國과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에서 중국,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심장지대로 진격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경우, 미국은 다시금 패권국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끝내 중∙러 군사협력체와의 대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페르시아만과 남중국해에서 축출당하게 될 경우, 군사적,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세계섬”, 나아가 전세계의 주도권을 중∙러 군사협력체에게 넘겨줄지도 모른다. 원하기로는 바이든 행정부가 능동적인 군사∙외교 전략을 수립해 이 위기를 극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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