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러시아의 홍해 진출과 트럼프의 중동 정책에 대하여

계연춘추 2021. 2. 28. 01:46


몇일 전, 나는 S씨의 G-TV를 보다가 크게 웃은 일이 있다. 그는 시리아 라타키아 부근 흐메이님 공군기지의 활주로가 300m 늘어난 것을 근거로 러시아가 중형 폭격기를 배치하기 위해 활주로를 늘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중동지역 러시아의 공군 역량 강화는 러시아가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우려했으며, 이는 바이든 정부의 대중동 정책이 실패했음을 나타낸다고 강변했다.

일단 취임한지 3주뿐인 바이든 정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미 (S씨가 그토록 좋아하는) 트럼프 정부 임기 말에 홍해에 군사기지를 세웠다. 즉 러시아의 홍해 진출은 트럼프의 실책 때문이지 바이든 행정부의 잘못은 아니다.

2020년 11월, 러시아는 플라밍고 만 일대를 25년 임차(10년 연장 가능)하는 조건으로 이 일대에 해군기지를 세웠으며, 이는 시리아 타르투스항 외에 러시아가 해외에 세운 두번째 해군기지다. 물론 혹자는 이 당시 트럼프의 낙선이 확정된 상황이라 주장할 수도 있지만, 협상에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미 트럼프 재임시절부터 러시아는 홍해 진출을 꾀하고 있었다 보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이 기지를 통해 러시아는 이제 중국과 홍해에서 해상 군사 훈련을 실시할 수 있으며(중국 해군도 지부티 오복에 해군기지를 두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트럼프의 대중∙대이란 강경책이 지속되던 2020년 이란 앞바다에서 군사 훈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원래 이란 앞바다가 미국의 주요 이익이 집중된 지역 중 하나라 중∙러가 이 일대에서의 군사 훈련을 대체로 선호하지 않았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제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도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상 트럼프가 시리아에서 철군을 결정할 때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이미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났다. 러시아가 지원하는 아사드 정권은 계속해서 시리아 내부의 반군을 소탕했으며, 여기에 더해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내 쿠데타를 제압한 다음 쿠르드족 소탕을 이유로 기갑부대를 파견해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 일부를 점령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솔레이마니를 암살해 이란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관계를 악화시켰으며, 자신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페르시아만 일대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 중심의 페르시아만 방어체계를 구상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만 어색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으로 인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우군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거 미국이 자신들의 안전을 끝까지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중동 지역 국가들에게 있었으며, 이 때문에 미국이 중동 지역의 전제주의 정권과 일전을 벌일 때 내부 동조자를 얻기 쉬웠으나, 시리아 철군 이후 중동 각국은 미국보다는 중∙러 군사협력체의 힘을 빌려 자국의 안전보장을 꾀했으며(심지어 이들은 미국과 달리 각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별도의 요구 사항도 없다), 미국의 세력은 점차 이라크 북부와 쿠웨이트, 그리고 페르시아만 지역에 국한되고 말았다.

사실상 트럼프 임기 말에 이르러 미국 세력은 유럽을 제외한 구대륙에서 축출되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광범위한 군사협력체는 점차 아시아 대륙에서 미국에 우호적인 세력들을 몰아냈으며 자신들과 똑같은 전제주의 독재자들을 지원해줬다. 트럼프가 오바마로부터 물려받은 미국과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물려준 미국의 전세계적 영향력은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는 미국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면 이제는 미국 외에도 중∙러 군사협력체라는 새로운(그러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와는 판이하게 다른) 안보 체계가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1991년 12월 이후 시작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끝났다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앞으로 미국 중심의 서방 동맹체제와 중∙러 군사협력체와의 대립은 지속될 것이며, 이들은 자신들 주변부의 나라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특히나 미∙중 양국의 강력한 충돌이 예상되는 타이완과 인도차이나 제국諸國은 양국으로부터 계속되는 선택의 압박을 받을 것이며, 이는 이 일대의 정치적 불안 요소를 증가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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