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자의 음악: 성균관 아악과 주대 아악의 관계에 대해

계연춘추 2022. 1. 21. 04:45

예전에 조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조부께서 성균관 제례에 참여하시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흔히들 성균관에서 울려 퍼지는 이 고전적인 음악이야말로 공자의 음악이자,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때 실전된 음악이라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이 같은 생각은 실로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성균관에서 울리는 잘못된 아악을 너무 오래 듣다 보면 공자께서 들으신 음악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고사하고, 당나라 때 아악과도 멀어질 수 있다. 오늘날 서울 성균관에서 울려 퍼지는 아악은 공자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음악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필자는 공자 시대의 음악과 성균관 음악이 아무런 관련 없음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악부의 구성부터 공자 시대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공자 시대 악부는 대체로 일정 수준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타악기인 편종과 편경, 그리고 율관이라 불리는 취악기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현악기인 금琴, 슬瑟, 와공후卧箜篌는 오히려 부차적인 역할만 했을 뿐이다. 대체로 이런 현악기 위주의 악부 구성은 중세기에 이르러 볼 수 있는 것으로, 초나라 계통의 음악과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서역 음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악기 위주의 악부 구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중국 음악은 대체로 타악기와 취악기 위주의 구성이 이어졌으며, 타악기의 부식이 가져오는 음정 차이와 음색 변화 문제를 놓고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음악의 율도를 계산하는 산학과 천문 관측에 사용되는 수학적 공식이 율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졌던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음악적 유희 형태는 대체로 타악기가 내는 명쾌한 소리에 맞추어 동작을 달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이는 칠언체라는 새로운 악부시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연하지만 공자 시대의 음악 또한 타악기가 내는 절도 있는 소리에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악부 구성으로 인해 주나라의 아악은 전문가의 개인적 역량에 의존하는 예술성 강한 개인 무용보다는 집단 무용 형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성균관에서 울리는 아악은 공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일단 오늘날 성균관에서 사용되는 아악은 대체로 주자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 기록된 개원 연간 아악보와 임우의 《대성악보》를 기반으로 조식을 정했는데, 이 같은 운과 조, 성으로 구성된 형태의 조식은 이미 소지파蘇祗婆가 전수한 서역 음악으로서 공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공자 시대의 음조는 12궁이라 하여, 매 타악기가 일정한 음정에 따라 궁상각치우의 위치를 달리하는 형태로 연주되었는데, 이 경우 황종, 대려, 태주 등 12율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궁성으로 사용된다. 이는 흡사 황도 12궁이 계절에 따라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가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고대인들은 하늘의 법칙에 따라 궁상각치우의 위치를 달리함으로써 친인감응天人感應적 세계관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같은 12궁의 조식을 깨닫게 되면, 황종의 음 높이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황종의 높이에 따라 다른 12율의 음 높이가 정해지고, 이 12율이 순서대로 궁성의 역할을 맡기에 12율의 음 높이는 사실상 매달 달리 사용되는 궁성의 음 높이라 할 수 있다.

그럼 공자 시대의 황종 음률은 얼마나 높은가? 현재 발견된 주나라 때 편종과 편경의 황종 음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철척률鐵尺律과 동일하게 E이고, 옥척률玉尺律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D♯이며, 전국시대 제나라 때 1척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F♯이다. 이 같은 자료를 토대로 유추할 경우, 주나라 때 황종은 대체로 E-F 사이에 위치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진나라의 1척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F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성균관에서 울리는 황종은 이보다 낮은 음이란 말인가? 이는 오늘날 성균관에서 울리는 아악의 율도가 공자 시대의 것도 아니요, 당나라 때 소지파의 비파조도 아닌 대성악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대성악은 북송 휘종에게 아첨하려고 휘종의 신체를 치수로 삼은 위한진인 사사로이 만든 율도에 기초한 음악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위한진율의 황종은 D에 해당하는데, 이는 정확히 고려 후기에서 조선 중엽까지 사용된 황종의 위치와 비슷하다. 애초에 잘못된 율도를 기초로 아악을 창제했으니, 그 음도가 성왕의 법도에 맞아 떨어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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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농다리 원형복원사적비 제막

【진천=뉴시스】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소재 '진천농다리'(충북도문화재 28호) 원형복원사적비 제막식이 27일 농다리전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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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생각해보면 그는 편종, 편경 같은 타악기에 사용되는 궁상각치우의 위치 변화가 천상의 황도 12궁과 연관이 있으며, 궁상각치우 5음이 사실상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 정도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조부께서 농다리를 복원하실 때에도 무너진 돌무더기의 위치를 고심하시다가 하늘의 별자리를 토대로 사라진 다리 구간을 고증하셨는데, 공자 또한 하늘의 운행과 주나라로부터 이어져오는 음악의 절도가 맞지 않음을 보고 아악의 올바른 법도가 유실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아니었을까? 하나 음색은 변할 수 있어도 음정은 바뀌지 쉽지 않고, 하늘의 별자리는 자전축의 위치에 따라 변하건만 공자는 이 같은 하늘의 운행 또한 변함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자면 공자는 하늘의 운행은 알았지만, 하늘조차 변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아악이 변할 수 있음을 알았건만 하늘의 변함을 알지 못했다. 하물며 서주 시대는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무더웠던 시대였다면, 공자가 살던 춘추 시대는 자전축 변화로 인한 강우량 감소와 기후 변화로 인해 농작물 불황이 연이어지던 시대였다. 지구 자전축 변화에 따른 하늘의 운행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 공자도 결국에는 그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공자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그 음악이야말로 주공께서 친히 정하신 음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가보萬家譜》에 보면 필자의 선조 중에 《악학궤범樂學軌范》 저자 중 한 사람인 신말평申末平 선생이 계시는데, 비록 음악에 능통하셨지만, 끝내 올바른 악률을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 글을 보니 소지파 비파조의 이치를 주공의 음악이라 오해하고, 《주례周禮》 12궁의 이치를 소지파 비파조에 억지로 갖다 붙여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붓으로 지은 죄가 너무도 크다. 실상 타악기의 음 높이가 취악기보다 높을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위한진율보다 높을 수밖에 없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어떤 변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처럼 아악은 한 시대를 살아갔던 지식인이 스스로 처한 시대적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계에서 만고불변의 법칙을 발견하려 할 때, 망가졌던 것이다. 애초에 망가진 음악은 없다. 자연계조차 변한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의 지적 한계를 자각하지 못한 지식인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간혹 성균관 아악을 볼때마다 답답하다. 옳지 못함을 전통과 고유 문화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해 잘못된 음악을 계속 연주하는 성균관의 유생들은 공자께서 그토록 지키고자 하셨던 한 가지 원칙을 잊어버렸다. 그것은 올바름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신념이다. 어느새 우리는 공자를 헤겔식 도덕군자로 포장하기에 바쁜 나머지 계씨 앞뜰에서 팔일무를 추는 것을 보고 분노한 공자를 망각하고 있다. 올바름보다는 잘못된 것을 앎에도 내 친구이니까, 나와 같은 학회 활동을 하니까, 내 직장 동료이니까, 내 가족이니까, 나와 같은 아비투스 구성원이니까. …… 언제부터 공자가 이런 위선자들의 아버지가 됐단 말인가? 진정으로 공자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들이라면 공자를 모신 사당에 위한진이 만든 괴이한 율도의 음악을 올리는 것이 합당한가? 아니면 공자가 들었던 것과 그나마 가까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합당한가? 어느 순간 우리는 공자의 뜻보다는 공자와 아무런 상관없는 제례를 지키는데 급급하고 있다. 물론 천년 동안 이어온 것이니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위한진이 만든 음악은 송 휘종을 기념하는데 사용하고, 공자의 음악은 공자께 돌리는 것이 가하지 않겠는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야 하듯이.

《순자》에 보면 음악을 통해 한 시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위한진은 송 휘종에게 아첨하고자 이 새로운 율려를 만들어 아악을 어지럽게 했으니, 그 죄가 어찌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위한진이 만든 새로운 율려 체계에 기초해 만든 아악이 오늘날에도 서울 한복판에 울리고 있으며, 나라에는 아첨꾼과 간신배가 들끓는다. 음악을 통해 그 풍속과 국정을 알 수 있다는 《순자》의 가르침이 다시금 생각나는 것은 기분 탓이라고 믿고 싶다.




내가 예전에 어떤 중년 부인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녀의 친구 중에서 가끔 귀에서 거문고 타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듣는 자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이는 정신착란증의 일종이요, 속된 말로 귀신 들렸다고 봐야 하는데, 그녀의 친구는 이를 공자 또는 공자 시대의 귀신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잡귀신이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한 다음, 공자 시대의 음악에 대해 설명했다. “공자 시대의 음악은 편종과 편경을 치기 때문에 일단 듣는 이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울림에 귀신들은 두려워 떠나며, 잡귀는 숲속으로 숨게 됩니다. 이어 박자 소리에 맞추어 여러 종류의 북과 거문고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이 소리에 맞춰 악현 아래에 정열한 노래 부르는 이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는데 이는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함입니다. 함성 소리와 함께 무리가 홍해 바다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 가면을 쓰고 도끼를 든 무왕 연기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걸을 때마다 하르샤 왕의 걸음 북소리와 같은 웅장한 음악이 천지를 진동합니다. 천둥 번개와 같은 위세에 날짐승이 떨고, 뭍짐승들이 두려워 숨는데 어찌 거문고 따위나 타는 것을 공자의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이 잡귀가 진정 공자 시대의 아악을 들었다면 하늘을 뒤덮는 위세에 온몸을 떨며 그녀에게서 떠나갔을 것입니다.”

그녀는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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