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의 불편한 삼각관계
최근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뉴스가 나왔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122401071103012001
이 기사는 필자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는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최근까지도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기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입하던 석유를 더 비싼 값에 러시아로부터 사들였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베이징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를 문제삼은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 초까지 중국은 중동·중앙아시아 문제에 있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중국이 호라산 지역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예측했지,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탄도마시일 개발을 도우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베이징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에 이슬람 문화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시설과 도서관을 여럿 지은 바 있으며(베이징대 고적소가 바로 사우디 왕실에서 지은 건물에 위치해 있다), 베이징도 원유 공급 문제와 와하비즘 단속 때문에 사우디 왕실의 협조를 수 차례 구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는 대체로 친미 성향의 국가일 뿐 아니라, 트럼프의 아브라함 협정은 구상 단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고려했다는 소문이 있다 보니, 중국이 친미 성향의 정권에게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원하리라 생각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탄도마시일을 가질 경우, 이 이사일로 이란에게 보복 공격을 감행하리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필자는 왜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탄도마시일 개발을 적극 지원했을지 생각해봤다. 당연하지만 베이징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의 안전보장이며, 이는 ①말라카 딜레마로 대표되는 자원 공급망과 ②와하비즘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활동 통제 등으로 나뉠 수 있다. 당연히 원유 공급 문제에 있어 베이징은 사우디 왕실의 양해 내지는 협력을 구해야만 하는 입장이며, 평균 170-220만 배럴/일을 사우디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원유 수입 문제뿐만 아니라 베이징은 신장 지역의 와하비즘 추종자들을 탄압함과 동시에 사우디 왕실의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이슬람 세계의 비난을 피해갔는데, 이는 베이징이 이슬람 탄압이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는 주된 방법 중 하나다.
따라서 사우디 왕실은 협상 테이블에서 베이징에게 아래와 같은 카드를 제시할 수 있다.
①사우디 왕실의 종교적 권위를 이용한 중국 내 와하비즘 활동 억압에 대한 면죄부 획득.
②중국에 안정적인 석유 제공.
③위안화로 석유 대금 결제.
눈치 빠른 독자는 사우디가 제시할 수 있는 협상 카드가 중국 자원 안보 및 소수민족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딱히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베이징은 인도양 연안 국가와 협상할 때, 인프라 건설을 카드로 내미는데, 사우디 왕실은 굳이 중국인 기술자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대 인프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자본까지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대륙의 독재자들에게 했듯이 대규모 차관을 사우디 왕실에게 제공할 수도 없는 일, 중앙아시아와 인도차이나 제국에게 기세 등등한 베이징이 사우디 왕실과의 협상에서 유독 작아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럼 베이징은 사우디 왕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당연 미사일 기술 지원이 아니겠는가? 이미 80년대부터 중국은 자본 대신 무기 수출로 사우디 왕실로부터 원유 공급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며, 2018년에는 D-21(사거리 2700km) 수출 및 기술 지원 대가로 600억 달러와 23년 간 석유 공급을 약속 받은 바 있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번 CNN에서 공개된 미사일은 D-3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보이는데, 사거리는 약 3500km에 달한다고 한다.
그럼 사우디 왕실은 왜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일까?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이래,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철수한 직후, 자신들이 이란과 이스라엘의 집중 포화를 받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비록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을 안심시키고자 아브라함 협정을 추진했으나, 이 협정의 당사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불구대천의 원수인 이스라엘이다. 당연히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이런 치욕스러운 협정보다는 자신들이 가진 자본과 자원을 이용해 유사시 잠재적 적국 영토를 공격할 수 있는 투발수단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 같은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와하비즘 단속 협조와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베이징은 미군이 떠난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베이징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위허한 거래는 미국과 이란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럼프 때문에 서방 세계와의 정상적인 경제 교류가 중단된 상황에서 이란에게 남은 선택지는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자신들이 필요한 공산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란은 자신들의 전 국토를 유린할 수 있는 사거리를 가진 미사일 개발을 돕는 베이징을 결코 달가운 눈빛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은 역으로 이란이 자신들의 원유 공급망 재편을 돕지 않았을 탓하며(실제로 이란의 석유 생산량은 베이징의 수요를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이란-파키스탄 송유관 공사의 종착점 문제를 들고 넘어질 가능성이 있다(중국과 파키스탄은 파키스탄 카라치를 종착점으로 요구하나 러시아와 인도는 인도를 종착점으로 요구하고 있다). 고로 이번 사건으로 베이징과 테헤란이 멀어질 가능성은 없다. 아직 테헤란은 미국과 핵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가 필요하며, 중국은 예전에도 수 차례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사일 개발을 도운 적이 있기에 딱히 새로운 상황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향후 전개가 궁금해진다.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 삼자 간 애증의 삼각관계가 어떤 치정극을 낳을지 우리 모두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