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단상

계연춘추 2021. 12. 24. 14:21

최근 우리 언론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시끄럽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11223_0001699980&cID=10101&pID=10100

푸틴 "나토, 우리 속이고 확장…유럽, 가스값 폭등 자초"(종합)

[런던=뉴시스]이지예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계속되는 동진을 용납할 수 없다며 서방이 러시아에 당장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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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서 우리는 푸틴 대통령의 아래와 같은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5차례 확장을 계속하며 러시아에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그들의 국경에 접근했는가?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푸틴의 이 같은 발언은 나토 동진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보편적 인식을 보여준다. 과거 러시아 지도부는 워싱턴과 아래와 같은 협정을 맺었다.

①미국은 과거 소련 영향력 아래 있던 중부 유럽 국가를 나토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②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소련에 인도하는 대신 영토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미국은 나토 동진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며,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발트해 3국 등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크렘린궁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나토의 동진은 모스크바로 하여금 매킨더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는 적백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 당시 활동하던 영국의 지정학자 매킨더는 러시아가 내전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대영제국의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 제국을 해체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나머지 아래와 같은 분할안을 제시했다.

①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 지역을 러시아로부터 독립시킨다.
②캅카스 지역을 여러 소왕국으로 쪼갠다.
③발트해 3국을 독립시킨다.
④동시베리아(레나랜드)를 미국에게 할양한다.
⑤볼가강 유역에 여러 소국들을 건설하여 두 번 다시 심장지대를 통일하는 제국이 러시아 땅에 등장하지 못하게 한다.

매킨더의 러시아 제국 분할안


당시 매킨더의 주장은 대영제국의 대러 정책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으며 실제로 영국은 이 같은 러시아 분할을 시도했으나, 트로츠키의 군사적 능력과 투하쳅스키, 부됸니 같은 장군들의 활약으로 인해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소련에서는 건국 초부터 지정학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정학(또는 정치지리학)을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로 치부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더는 최초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열 가능성을 제시한 지리학자였는데, 이 같은 구상을 한 까닭은 그의 완충지대 가설 때문이다. 매킨더는 ⓐ독일의 심장지대 진출과 ⓑ러시아의 중부 유럽 진출을 막을 방법을 놓고 고심했으며, 고민 끝에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거대한 완충지대를 만든 다음, 국제연맹이 이들 국가를 돕는다는 명목 하에 군사적 개입을 시도할 경우, 러시아와 독일의 제국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연 러시아 남부에도 거대한 완충지대가 필요했는데, 매킨더는 독립된 우크라이나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비록 매킨더의 우크라이나 독립 구상은 적군의 승리와 소련 중앙정부의 성립으로 물거품이 됐지만, 소련 해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가 독립함으로써 실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오랜 세월 친러 성향 정부가 집권했으며, 러시아 푸틴 정부도 나토가 크렘린궁과의 협약을 깨고, 우크라이나까지 동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지 혁명 이후, 친서방적인 티모센코 내각이 들어서게 되고, 우크라이나조차 나토의 구성원이 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크렘림궁은 분개했으며,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파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기에 이른다. 유로마이단 사건으로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서방파와 친러파 사이의 정쟁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러시아계 주민이 대다수인 크림반도는 러시아로의 귀속을 선언했으며, 돈바스 지역 또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데 못해도 20-30만 대군이 소요됨을 생각하면, 고작 9만 2천명 가지고 전쟁이 임박했다고 호들갑 떠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일단 크렘린궁은 대규모 전쟁을 치룰 만한 자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설사 내년(2022년)이 아니더라도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 들 것이다. 현재 러시아 국경선을 잘 살펴보면 자연 장애물로 이루어진 국경선이 거의 없으며, 이는 미국이 중국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심장지대 국가들과 연합해 러시아 국경선을 향해 군사 작전을 감행할 경우, 공간방어 외에는 효과적인 방어전략이 없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프리드먼과 카플란, 자이한 모두 러시아는 팽창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국경선을 확보하기 전까지 동유럽 발 위기는 계속되리라 봤다(러시아가 원하는 국경선이 어디인지 의견이 분부하지만, 자이한은 카르파티아 산맥-비스와강 라인으로 비정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러시아의 요구조건을 상당수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끝내는 대신 나토와 러시아의 경계를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설정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군사기지를 배치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신 워싱턴은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보장할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러시아에 강제로 합병하거나 우크라이나가 참여하는 새로운 연방 구성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결국 모스크바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 7개국을 연합하여 소련을 부활하려 들 것이다). 만일 워싱턴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 크렘린궁에게 양보하지 않고 러시아와의 군사적 충돌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 기계화사단과 나토의 중무장 보병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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