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민족 문제에 대한 단상
오늘 좋은 기사가 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902016200071?input=1195m
실상 이 기사에서 아하디가 말하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무지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람들과 접촉해본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백악관과 우리 기자들은 이를 끝까지 몰랐거나 부인하려 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우리는 단일 인종집단(Ethnic Group)으로 구성된 나라가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인해 남북으로 쪼개진 상황이다 보니 인종집단을 민족(Nation)과 동일시하고, 내셔널리즘 구호를 신성시하지만, 바다 건너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 인종집단과 민족은 별개의 것이다. 심지어 인종집단조차 다양한 정체성을 자신 집단을 정치적 목적과 문화적 유사성 때문에 하나로 뭉친 경우가 많다 보니, 이들 내부로 들어가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내셔널리즘 의식이 투철한 민족주의자들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출신 지역과 혈연 집단에 따라 분열된 경우가 허다하다. 우즈베크족이 대표적인 예인데, 원래 스스로를 우즈베크인이라 생각하는 자들은 페르가나 분지에 사는 몽골계 귀족들뿐이었으며, 사마르칸드와 부하라에 사는 이들은 자신의 출신 도시를 정체성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우즈베크족 자체가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인종집단이지 이들을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한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즈베크족이란 ①중앙아시아에 살면서 ②혈연으로 뭉친 카자흐족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투르크인으로 인식하면서, ③또 이란계 투르크인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투르크계 민족의 총칭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케이스는 위구르족에서도 발견된다. 위구르족 또한 타림분지에 살면서 페르시아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오아시스 주민들에 대한 총칭이지, 이를 정체성을 공유한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위구르족라는 이름 자체가 근대 들어서 내셔널리즘 운동을 일으킨 카슈가르, 일리 등지의 무슬림 식자층을 제외하면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중국정부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근대적 민족 명칭일 뿐이지, 이들이 위구르족이라는 강력한 민족 정체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60년대 이전에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위구르족이 민족 정체성을 더 강하게 가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이들이 이주민 자격으로 소련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아남기 위해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민족 공동체 의식을 쉽게 가질 수 있는데 반해, 중국에 남은 오아시스 주민들은 내셔널리즘이 보급되기도 전에 중국의 지배를 받다 보니 민족이라는 생소한 개념 자체가 중국정부가 자신들에게 강요한 이름에 불과하다. 오히려 30년대 및 40년대 동투르키스탄 운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에는 투르크인이라는 모호한 문화 공동체 의식만 있을 뿐이지, 위구르족과 카자흐족, 키르기스족 등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카슈미르족과 호탄, 투르판의 지역 감정처럼 위구르족 내부에도 카슈가르-악수의 주도권 행사에 문화적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와하비즘 탄압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번 백악관의 신장 인권 문제 제기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하나피 학파라 믿는 대다수 위구르족 세속주의자들이 와하비즘과 중국정부를 놓고 비교할 경우, 중국은 그나마 차악에 해당된다. 중앙아시아의 민족은 우리가 동유럽에서 봐온 것과 같이 문화적 유사성이 있음에도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이 다른 여러 인종집단을 문화적 유사성 하나로 묶어버린 경우라서 우리가 인식하는 민족 단위의 독립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그나마 제일 가능성 높은 형태의 독립은 호탄과 카슈가르가 각자 이슬람 세속주의 정권을 세우는 것인데(이 두 도시가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독립할 가능성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이 두 도시의 개별적 반란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진압하기 쉬운 작은 규모의 소란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타림분지 위구르족들이 지역주의를 넘어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 이상 신장 남부 지역 독립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단 투르판, 하미 등 신장 동부 지역 위구르족이 이런 독립 운동에 호응할 가능성이 없을뿐더러, 중국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하나로 뭉친 위구르족이 아니라, 실크로드 무역로를 놓고 정치적 충돌을 이어가는 카슈가르와 호탄의 지정학적 대립뿐이다. 그리고 이 지정학적 대립은 호탄 또는 카슈가르를 또 다른 와하비즘 테러 단체의 은신처로 만들 가능성이 높은데,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베이징은 고사하고 모스크바도 그다지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하는 두 나라가 신장 독립 문제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는데, 과연 이들이 독립할 수 있겠는가? 아울러 이 지역의 인종 집단 자체가 근대 국가에 의해 강제로 부여된 정체성이다 보니 동유럽과 똑같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카자흐족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중앙아시아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이들의 분열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이들의 분열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우즈베키스탄은 소련 시절 우즈베크족 정체성을 강제한 것도 있고, 소련 해체 이후 카리모프 정부가 민족 국가 서사를 만드는데 치중한 데 비해 위구르족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민족 서사조차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구르 문학은 위구르족族 문학이라기보다는 위구르어語 문학에 가까운데, 위구르어를 사용한 정치 집단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으며, 이들이 단지 위구르어로 작품을 창작했다 하여, 위구르족의 선조인 것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사용했다 하여 중국인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처럼 위구르라는 실체를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이 민족이 사실상 실체 없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결코 위구르족 하나에게서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라 “심장지대”에 위치한 상당수 민족들에게서 보인다는 점이다.
중앙아시아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분열된 세계의 민족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민족 또는 인종집단을 일치시키지도 말며, 인종집단조차 하나의 단일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정복자들이 이 지역을 점령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지역 점령에 성공한 정복자들 모두 토착세력을 인정하고, 이들이 제국의 통치에 따르기만 한다면 여전히 지역 유지로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허락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소련과 미국은 토착세력이 믿던 신념을 부정하고 그들의 신앙을 짓밟았다. 소련은 사회주의 이념과 계획 경제를 이 땅에 들고 왔으며, 미국은 민주주의와 대통령제, 신자유주의를 이 땅에 심었다. 그러나 이는 마치 메마른 아프가니스탄 황야에 논농사를 짓는 효과만을 불러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주의자들과 미군 모두 이들이 믿던 이슬람 신앙을 부정했으며, 이슬람 샤리아에 녹아 있는 파슈툰족의 전통적 가치관까지 부정할 것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과거 일본도 조선의 맥을 부정하고, 조선의 얼을 지우려고 35을 노력했음에도 실패했는데, 하물며 미군의 20년 주둔이 어찌 이를 없앨 수 있겠는가! 만일 소련군과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부족장들의 권력을 인정하고 이들의 호의를 얻고자 노력했다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은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나는 아래와 같이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단 한번도 제국의 무덤이었던 적이 없다. 단지 오만한 제국들의 무덤이었을 뿐이다.
바이든 정부의 중앙아시아 철군은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라고 본다. 일단 트럼프의 실책으로 인해 “세계섬”에서 미국의 지정학적 열세를 돌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 스스로 지정학적 동맹을 해체하고, 서로 대립하기 전까지 미국이 이 지역에 개입한들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원래 모든 병법의 기본은 이기는 싸움만 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은 미국이 “세계섬”에서 물러날 때다. 일단 본토로 돌아가 재정비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심장지대”의 부족주의와 종파주의가 만들어내는 정치적 균열을 이용해 재개입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미국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며, 그간에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 미국의 해상 우위를 대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울러 우리는 미국이 말하는 체제경쟁을 결코 정치적 경쟁 내지는 지정학적 경쟁으로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만을 놓고 보면 워싱턴은 이 체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열쇠는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국민 생활 수준 향상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세계섬”에 대한 일부 정치적 영향력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대규모 육상 작전이 필요 없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은 위험하지만, 미국과 중∙러 군사협력체 사이의 대규모 군사 충돌 가능성을 줄어준다는 점에 있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미국을 너무 근시안적 국가로 바라보는 국내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는 옳지 못하다(비록 백악관에서 실행하는 상당수 정책들이 방법론적 부분에 있어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미∙중 양국은 소야해협과 오키나와, 루손해협을 경계로 자신들의 세력권을 확정하고, 일본 본토 안전과 직결된 한반도는 현재의 남북 분단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타이완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