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IM의 와한회랑 침투설에 대한 재차 반론
이 와중에 우리 언론은 여전히 와한회랑을 가지고 소설 쓰고 있다.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10726/1/BBSMSTR_000000100072/view.do
https://www.yna.co.kr/view/AKR20210828034900009?input=1195m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891944
신장 지역에서 와한회랑을 이용한 테러 활동이 성공하려면 아래 3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①지형 조건상 충분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②종교적 심성에 기반한 동조자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③해당 지역이 현대문명에 대한 반감과 소외감이 커야만 한다(현대 문명에 대한 인식이 모호하고 적대적일수록 좋다).
일단 지형 조건부터 이야기해보자. 테러리스트가 아프가니스탄 와한회랑에서 중국으로 진입하려면 두 개의 통로밖에 없다. ⓐ하나는 와한회랑 북서쪽에 위치한 克克吐魯克山口이고, ⓑ다른 하나는 동북쪽에 위치한 排依克山口다. 만일 다른 곳에서 넘을 수 있는지 묻는다면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접경지역에 위치한 산봉우리는 해발 5630-5698m다(백두산 장군봉이 해봐야 해발 2749m다). 이조차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다면 해발 3000-4000m의 평평한 고원지대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5600m에 달하는 만년설이 가득 쌓인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중국 국경지대를 감싸는 형국이라, 위압감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 지역에서 중국 국경지대로 넘어가려면 하천 계곡이 만든 통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보니, 저 두 계곡을 제외하면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연 조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이 지역의 인종 문제다. 와한회랑은 대체로 타지크족 일파인 와한 사람들과 키르기스족이 사는데, 해발 고도가 높아지는 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체로 키르기스족이다(타지크족 일파인 와한족은 해발 2000m에 불과한 와한강 일대에 주로 거주한다). 당연히 타지크족과 키르기스족 모두 파슈툰 부족주의와 와하비즘에 강력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 협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와한회랑을 넘어 중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시아파 일파인 이스마일 학파의 가르침을 따르는 타지크족이 2만명 정도 밀집해 사는 타슈쿠르간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실상 90년대 테러리스트들이 와한회랑에서 파미르고원을 넘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중소 국경분쟁으로 이 지역 국경지대에 중국군이 지나치게 밀집 배치되어 있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난관을 모두 뚫어도 결국 타슈쿠르간에서 시아파를 믿는 타지크족의 신고로 잡힌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애초에 와한회랑으로 진입하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이다. 이 일대의 자연 환경은 그렇다 치고, 주민들조차 와하비즘에 적대적인 시아파 신도들일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관통하는 포장 도로조차 없다. 도대체 저런 기사를 쓴 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백 번 양보해도 저 5600m에 달하는 설산은 어찌 넘을 것이며, 중국에서도 시아파 밀도가 가장 높은 타슈쿠르간을 어찌 지나갈 것인가? 만일 어떤 기자가 아무런 등산 장비 없이 홀몸으로 해발 5600m의 산봉우리를 넘는다면 내가 인정하겠다. 그런 일이 증명되는 것이 아닌 이상, 와한회랑을 넘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수니파 벨트가 만들어 질 것이라는 허상에 비판적이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타슈쿠르간 뿐만 아니라, 카슈가르, 호탄, 악수는 중국에서도 시아파가 그나마 밀집한 지역 가운데 하나다. 물론 대다수 시아파들은 대도시에 들어가서 살지는 못하고, 도시 주변에서 시아파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이 지역의 시아파들과 수니파들이 공존할 수 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타림분지에 거주하는 대다수 수니파들이 세속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슬림이라기보다는 이슬람 신앙과 예로부터 이어오는 점성술과 무속신앙이 혼재된 형태의 종교를 믿고 있으며, 이런 세속주의자들은 수피즘 신도들이나 와하비즘 신도들이 보기에는 진정한 이슬람 신앙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세속주의자들이 신장 지역 무슬림 신도의 90%를 차지한다. 하물며 민족 정체성도 약한 이들이 중국정부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간 해오던 대로) 굿과 점성술을 즐기겠는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와하비즘에서 요구하는 경건한 삶을 살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하물며 신장 지역 도시화율은 51.87%, 도시화율이 25.8%에 불과한 아프가니스탄보다 2배나 높다. 이는 달리 말해 현대 도시문명을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4명 중 한 명 꼴이라면, 신장 지역은 2명 중 한 명 꼴이라는 뜻이다. 물론 도시 중산층의 화려한 소비 생활은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이와 같은 소외감은 이들이 와하비즘에 기반한 테러리스트가 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도시의 중산층들은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리기 위해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성향을 띄게 된다.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오아시스 도시 카슈가르와 호탄은 사라진지 오래다. 과거 우루무치에서만 보이던 고층 건물이 카슈가르에도 즐비하고, 히잡은 고사하고 두건조차 거부하는 신장 지역 도시의 중산층 여성들에게 와하비즘의 정치적 구호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겠는가?
따라서 와한회랑으로 테러리스트가 침투할 수 있다는 가설은 이 지역 상황을 너무도 모르는 소리다. 설사 국경을 넘는데 성공하더라도 (90년대 테러리스트들이 그랬듯이) 결국에는 시아파를 믿는 타지크족 주민들의 신고로 잡혀버릴 것이 뻔하고, 도시에 들어가더라도 하나피 학파 신도를 자처하는 위구르족 세속주의자들과 시아파들에게서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와한회랑은 테러리즘이 전파될 수 없는 조건을 너무도 많이 갖추고 있다. 오히려 와한회랑보다는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해 중국 대도시로 진입하는 경우가 훨씬 위협적일 것이고, 베이징이 두려워하는 시나리오 역시 타지키스탄 국경이 뚫림과 동시에 테러리스트들이 중앙아시아로 진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로 와한회랑 테러리스트 침투설 자체가 난센스다. 저 지역을 단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기자들의 저 같은 상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나는 왜 이 지역에 대해서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저런 기사를 쓰는지 궁금하다. 적어도 와한회랑의 지형 조건과 주민 분포 및 성향에 대해 조사해 본 다음에도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