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먼 나라 이야기: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한 단상
근자에 언론 기사를 보니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많이 내는 것 같다. 과거 탈레반 1대 지도자 오마르 집권기에 일어난 여성에 대한 박해를 생각해보면 이는 충분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다만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 이 문제를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문제에 대한 처방보다는 감정 표현만 난무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열악한 교육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 나라의 여성 식자율은 한자리 수(2002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식자율은 7%에 불과했다)에 불과하며, 많은 여성들이 교육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 상황이다. 아울러 지나치게 높은 조혼율(54%) 때문에 매년 1.6만 명의 산모가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고 있으며, 전세계 마약의 8할을 생산하는 나라인 만큼 여성 마약중독자는 85만 명에 달한다. 지금도 카불의 모처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여성들이 마약에 의존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미군 주둔 시기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관련 수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미군 주둔기에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이와 같은 성과는 모두 카불과 헤라트 등 몇몇 대도시에만 집중됐을 뿐,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여전히 농촌에서 자율권을 억압받는 삶을 살아야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나라에서 도시 인구는 25.8%에 불과하며, 농촌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샤리아에 따라 부족 내부 문제를 해결했다. 즉 아프가니스탄에서 현대 여성의 삶을 살 수 있는 집단은 도시민-이중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여성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이 나라에서는 미용실조차 가격이 비싼 고로 가기 힘들다), 대다수 여성들은 극심한 우울증(200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우울증은 97%에 달한다는 연구 조사도 있다-그러나 이 조사의 표본은 160명에 불과하다)과 가정 폭력(87%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가정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에 시달리며 시골에서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20년간 여성 인권단체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카불의 대도시에서 대다수 여성들이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사는 여성 엘리트들과 교류하면서 시간을 허비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언론사 기자들은 탈레반의 집권이 가시화되자 헤라트 지역의 여자 대학생들을 찾았다. “사막의 진주”라고 불리는 헤라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교육 인프라가 그나마 잘 갖춰진 도시이자, 반 탈레반 정서가 강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도시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직후, 하자라족 출신의 여성이 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의 삶을 비관하는 동영상을 올리자 외신 기자들은 이를 기사로 내보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탈레반 치하에서의 삶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보여줬다. 물론 그들은 이 여성이 하자라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겼지만 말인다(하자라족은 몽골계 혈통이 섞여 있어 육안으로도 구분이 가능하다).
어쩌면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농촌 여성들에게 탈레반의 통치는 기회의 박탈이 아닌 자신들이 그간 살아온 삶을 이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탈레반을 악마로 만드는데 열중하지만, 실상 탈레반 또는 이슬람 신앙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파슈툰족 습관법이다. 파슈툰족 습관법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며, 여성 신체에 대한 시각적 점유를 통해 그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파슈툰족 습관법의 영향을 무시한 채, 막연히 이슬람 근본주의 때문이라는 식의 비판은 온당치 못하다.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다른 하나피 학파를 추종하는 중앙아시아 민족들을 살펴보라. 이들 중 그 어떤 민족도 파슈툰족처럼 극단적인 여성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슬람 수니파 가운데 하나피 학파가 그나마 현대 문명과의 공존에 성공했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문제를 샤리아에서 강요하는 여성상에 대한 비판보다는 파슈툰족 습관법의 여상상 비판으로 시작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탈레반 정권에게 현대적인 여성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그나마 현대 사회와의 공존에 성공한 하나피 학파를 따르는 중앙아시아 다른 나라 수준의 여성 인권을 보장하라 요구해야 한다. 이와 같은 요구를 하기에 앞서 우리는 샤리아와 파슈툰족 습관법을 구분해야 하며, 근대 문명 대한 하나피 학파의 관대함과 이슬람 문명과 현대 사회의 공존을 강조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농촌 여성 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수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농촌에 살고 있으며,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할 때에도 이들은 여전히 샤리아 아래에서 자신들의 삶을 이어 나갔다.
20년간 인권 단체들은 이들의 삶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물론 그들이 아무런 일을 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은 옳지 못하지만, 현대 여성상에 대한 반감과 이슬람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인권 단체의 언사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농촌 사람들은 점차 그들에게서 멀어져 갔고,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부족장들은 자기 부족 처녀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그들의 귀를 막았다.
따라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아래와 같은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①급격한 여성 인권 신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급격한 여성 인권 신장이 농촌에 사는 파슈툰족 부족장들의 불만을 불러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현대적 여성상에 대한 그들의 불만은 결국 탈레반 재집권의 기초가 됐다.
②이슬람 신앙 또는 샤리아에서 요구하는 여상상을 비판하기보다는 파슈툰족 습관법을 비판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파슈툰족 습관법이 이슬람 신앙이 보장하는 여성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시골에서 행해지는 여성∙아동에 대한 성적 폭행은 이슬람 신앙보다는 파슈툰족 전통인 경우가 더러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게 이슬람 신앙이 보장하는 수준의 여성 인권 수준을 우선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나는 인권 단체들이 아래와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아프가니스탄 여상 인권 향상을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슬람 신앙과 파슈툰족 습관법이 혼재된 상태의 여성상(현재 아프가니스탄 여성)↓↓
ⓑ이슬람 신앙과 현대 여성상이 부분적으로 섞인 상태(중앙아시아 대다수 하나피 학설을 따르는 지역의 여성)↓↓
ⓒ온전한 현대 이슬람 여성상(영국 등 서구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슬람 여성)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에서 ⓒ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에서 ⓑ로 가는 것이다.
③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간 아프가니스탄 도시 여성의 인권 상황 개선을 노력했을 뿐, 농촌에 사는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에 무관심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무관심, 그리고 여성 인권단체들의 비현실적인 외침 속에서 이들은 죽어갔으며, 카불의 대도시에서 현대적인 삶을 사는 소수 여성들의 한탄에만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④이슬람 신앙 전파를 위해서라도 여성 교육 수준과 식자율을 높여야 한다고 탈레반 당국에 주장해야 한다. 모든 역사가 우리에게 증명하듯이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독립하려면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데, 현재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기본적인 초등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이 남성에게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와 남편, 아들 옆에서 우울증과 마약 중독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슬람 신앙 전파를 위해서라도 여성 식자율을 높여야 한다고 탈레반 지도층을 설득해야 하며, 이들이 문맹 상태에서 벗어나 가판대 종업원이라도 할 수 있게끔 교육 기회 제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히려 미군이 주둔한 전 정권과 달리 탈레반 집권기에는 적어도 파슈툰 부족장들이 교육 자체에 대한 불만(미군 철수 이전까지 교육은 파슈툰족 전통을 파괴하는 서구식 가치관을 심어주는 도구였다)은 없을 것이니,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19세기 세상에 처음 나타났을 때, 이 운동을 시작한 선구자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경제적 평등을 요구했으며,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논리에도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페미니즘 단체들은 여성의 경제적 평등이나 사회적 책임보다는 부호와 상징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부르카를 쓴 여성이 히잡을 쓴다고 해서 여성 인권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여성이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그녀는 여전히 남성에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충분한 자율권과 자기개발 기회를 얻지 못한 상황 속에서 빈곤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여성 인권단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했던 일들을 돌이켜보면 이들은 이슬람 여상상을 비판하고, 부르카 대신 히잡을 착용하게 하는데 열중했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과 균등한 교육 기회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전체 인구의 1/4, 이중에서도 소수의 서구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특권층 여성이 자신들과 같은 소비 생활을 누리는 자유에만 몰두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준 이슬람 여성상에 대한 부정적 언사와 파슈툰족 전통에 대한 멸시에 격분한 파슈툰족 농민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탈레반에 협력했고, 서구적 여성상과 여성 인권단체에 대한 분노는 탈레반 정권 재창출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탈레반 정권 재창출에 기여(?)한 바로 그 인권 단체들이 다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인권을 걱정하며, 전세계가 나서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20년 동안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엇을 했는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말이다.
어쩌면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로 하여금 가정 폭력과 우울증의 수렁에 빠지도록 방치했다는 점에 있어 우리는 파슈툰족 부족장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이 걱정된다고 소리칠 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극은 세계 모처에서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 여상 인권 신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