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쟁의 서막: 우크라이나 대평원과 남중국해, 타이완으로
오늘 중국에서 병역법 수정안(초안)을 공포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매년 12월 31일 이전까지 18세 이상의 남성은 자신이 소속된 지역 병역 복무기관에 등록해야 하며, 여성 군인 처우 개선 및 군사 정보 관리 강화 등을 주문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이란과 파키스탄, 터키, 그리고 탈레반이 주도하는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정부 등 중앙아시아∙중동 국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한 다음, 남중국해와 타이완 방면 진출을 시도할 것이다. 과거 중국은 타이완 진출을 하고 싶어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 때문에 양면 공격(①인도, 아프가니스탄 방면과 ②한국, 일본, 타이완 방면) 받을 것을 두려워했는데, 모디 총리의 지원을 받던 아프가니스탄 가니 정부가 몰락함으로써 이제는 마음 놓고 남중국해와 타이완 진출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붉은 황제의 통일 대업을 막을 수 있는 지정학적 요소(바그람 공군기지의 미군)가 사라진 것이다.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14026898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9075100089?input=1195m
이와 동시에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경고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엄포를 놨다. 예로부터 소련의 부활을 바라던 크렘린궁의 차르는 서방 국가들의 이목이 남중국해에 집중된 틈을 타서 우크라이나에 내전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 것이고,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못해도 드네프르강 동쪽 러시아인 거주지)를 재차 병합해 소련의 부활을 선포하려 할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9100400096?input=1195m
이들의 위협에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은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내부 결속을 다짐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주민들과 타이완의 외성인(대륙 출신들)들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정치적 결의가 지켜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나마 타이완의 외성인 출신들은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인구는 19.7%로 적은 수가 아니다(심지어 이들의 거주지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9083400009?input=1195m
지정학의 묘미는 바로 강대국의 행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강대국들은 대체로 지정학적 조건에 따라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지정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대체로 예상 가능하다. 강대국들의 진출 방향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진출 방법이다. 강대국들의 수중에는 이용할 수 있는 패가 많고, 이들의 팽창을 막아야 하는 “반월지대” 국가들과 타이완 수중에는 몇 가지 카드밖에 없다. 그나마 오키나와, 일본 등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타이완과 달리 이미 삼면으로 포위된 우크라이나의 경우, 전황이 더욱 자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긍정적인 예측을 제시하기는 어렵고, 러시아의 영토 할양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대신 추가적인 동진을 막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크렘린궁의 차르가 과연 추가적인 동진을 하기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는가? 단순히 군사력만 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30일 안에 점령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말이다. 차르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동유럽 대평원에서 또 다른 쿠르스크 전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805508658?OutUrl=naver
그렇다고 타이완의 상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이미 양면 공격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상황이고, 붉은 황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타이완 해협에서의 대규모 전쟁에 앞서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8월 5일,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구단선이 영해가 아니라고 말했으며,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과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협상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중국은 못해도 이들 국가와 남중국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듦으로써 미국과 서방 세계의 남중국해 개입을 막으려 할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미얀마와 라오스, 캄보디아와 태국 왕실 및 군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이들의 환심을 얻음으로써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시도할 것이다. 이런 중국의 인도차이나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보수파의 반발이 예상되는 미국과의 직접적인 교류보다는) 일본과의 정치∙경제 협력 강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할 것이며, 인도차이나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한동안 커질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은 이제 인도차이나에 대한 영향권을 놓고 음지, 양지 가릴 것 없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모호한 태도(베트남은 마지막까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도 하지 않을 것이다)는 결과적으로 인도차이나에서 중국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인도차이나와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한 붉은 황제는 이제 타이완 해협으로 눈길을 돌릴 것이다. 그가 동원하는 대군은 아마도 우리가 유사 이래 본적 없는 대병력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현재 미국이 유사시 동아시아에 보낼 수 있는 병력이 30만 명에 불과한데, 과연 중국의 100만 대병력을 이길 수 있을까? 일본, 한국과 다르게 타이완은 중국 본토로부터 너무 가깝고, 미 해군 및 해병대 혼자서 중국 해병대, 공군, 미사일 부대를 다 같이 상대해야 하는데, 나는 미국이 이런 전쟁에서 얼마나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중국, 러시아와 동시에 싸운다(이 경우, 제3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것이며, 미국 본토는 핵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②중국, 러시아 가운데 한 나라의 정치적 요구(중국의 경우 타이완 통일,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병합)를 만족해 주는 대신 다른 나라를 집중 견제한다.
만일 ①번을 선택할 경우,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을 경험할 것이고, ②번을 선택할 경우, 미국은 세계 패권을 다른 나라와 나누어야 할 것이다. ⓐ만일 중국과 연대할 경우, 중국의 타이완 합병에 더해 이들이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는 것을 묵인해야 하며, ⓑ러시아와 연대할 경우, 러시아가 다시금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련과 같은 국가로 성장함을 묵인해야 한다. 그간 워싱턴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연대를 통해 소련을 견제해 왔으며, 그 결과 냉전 시기 소련을 동서 양쪽으로 포위할 수 있었다. 중국 본토에 대한 워싱턴의 핵 공격 시나리오도 처음에는 2억 명 살상을 목표로 하다가 점점 그 규모가 수천만명으로 줄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 이전까지 미∙중 사이의 대규모 전쟁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일어나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우리는 미국과 중∙러 사이의 대규모 전쟁까지도 예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으며, 지정학적 대립구도의 확립을 지켜만 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전적으로 백악관에 달려있다. 러시아와의 연대를 선택할 시, 소련의 부활(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은 아마도 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과 동시에 동유럽 전역이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키신저, 브레진스키와 같이 중국과의 연대를 선택할 경우, 중국이 타이완을 강점하는 것을 묵인해야 한다. 물론 키신저와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유럽의 해방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연대를 선택했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험악해진 지금) 트럼프가 실험했던 것처럼 러시아와의 연대를 선택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중국(타이완 포기)과 러시아(동유럽 포기)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바이든 정부가 과연 이들과의 타협에 응하겠는가? 결국 중국과 러시아는 힘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것이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 3개국이 동등한 권리로 세계를 지배하는 국제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과 파키스탄은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제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의 눈길을 우크라이나 대평원과 남중국해, 타이완 해협으로 돌릴 것이다. 이들이 팽창을 시도하면 할수록 백악관은 제3차 세계대전과 세계 패권의 양분을 놓고 고민하리라 본다. 나 또한 백악관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럼에도 시간은 흐를 것이고, 인간의 역사는 계속 써내려 갈 것이다.
※ 그 동안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놓고 같이 고민해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혹자는 우리나라도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상황이 도래하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데, 나는 우리나라가 (최악의 경우) 인도처럼 “심장지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수는 있어도 정권이 전복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일단 아프가니스탄 같은 부족주의 및 종파주의 대립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며,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가치를 그리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과 같이 한미 동맹을 유지함과 동시에 중국,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 나간다면 이들이 왜 우리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겠는가? 하물며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는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으며, 휴전선으로 인해 대륙과의 교통이 차단된 상황인만큼 강력한 외부 변수가 아닌 이상 우리 정부 차원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통해 좌우 진영 모두 일방에 경도된 외교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 반성해야 한다. 만일 카르자이의 독자노선이 계속됐더라면 아프가니스탄 정권이 전복되려 할 때, 베이징은 파키스탄을 통해 탈레반을 제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니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반중 노선에 긴밀히 협력하면서 중국인 대상 테러 활동까지 벌이는 TTP를 지원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베이징을 분노케 했다. 어떤 강대국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 행위까지 일삼는 조직을 지원하는 나라를 좋게 보겠는가?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우리는 일방에 경도된 외교 정책이 얼마나 위험하며,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정학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우쳐야 한다.
기계적인 균형보다는 역할이 중요하고, 일방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질적인 강대국 사이에서 오래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2021년 8월 20일 12:00 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