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의 지정학적 차이, 그리고 동투르키스탄 운동에 대해
2021년 7월 2일자 《조선일보》에 아래와 같은 글이 게재되었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china/2021/07/26/AR27S76WNJALNMQAJSLNXSNZQM/
일단 이 글에서 저자는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입지가 같다는 주장을 전개하는데,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비견할 만한 나라는 몽골이나 중국 신장 지역과 같은 반월지대에서 심장지대로 통하는 교통 요지이지, 한국처럼 반월지대 바깥에 위치해 있으면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연결하는 교두보 지역이 아니다. 오히려 지정학적 역할이 너무도 달라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는 것은 학술적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전통적 지정학에서는 내륙하천과 초원으로 이루어진 심장지대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데,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처럼 심장지대와 내륙을 연결하는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한반도가 아니라 몽골 고비사막이나 오르혼강 또는 오논강 유역에 위치해야 한다. 아마도 최유식 소장은 지정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일 것 같다. 지정학은 전세계를 하나의 분석대상으로 보는 것을 기본 전체로 삼으며, 세계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육상세력과 해상세력, 그리고 반월지대 세력의 대립으로 이해한다(매킨더 이래 모든 지정학자들은 이와 같은 정치 분류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코헨이 《지정학: 국제관계에서의 지리학》에서 잘 설명하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통일된 한국이 교두보 지역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썼지, 지금처럼 남북한이 분단된 상태에서 우리는 해양세력에 예속된 정치적 섬이라 보는 편이 옳다. 고로 타이완이나 오키나와처럼 미국의 대중국 최전선을 구성하는 전진 기지로 이해하는 편이 옳지, 교두보 국가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옳지 못하다. 현실은 현실이다. 통일된 공간을 전제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지정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최유식 소장께는 지정학 개론서를 추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
그리고 동투르키스탄에 대한 최유식 소장의 소개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왜냐면 탈레반은 단 한번도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지배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혹시 몰라서 동투르키스탄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90년대 테러 사건들을 살펴봤는데, 대체로 동투르키스탄 운동 테러범들이 활동한 나라는 터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4개국이었다. 이중 터키를 제외한 중앙아시아 3개국의 경우 50-60년대 3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인들이 이주하다 보니, 이들이 만든 위구르 네트워크를 이용해 동투르키스탄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시절에 동투르키스탄 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그보다 마수드가 이끄는 북부연맹이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버티고 있었는데, 탈레반이 이들을 경유해 동투르키스탄 운동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9.11 당시 빈라덴과 도매금 취급 받기 싫던 동투르키스탄 운동은 알카에다를 규탄하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알카에다가 2010년 전후로 동투르키스탄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이전까지 탈레반, 그리고 알카에다와 동투르키스탄 운동은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해 미군을 두려워했던 동투르키스탄 운동이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의도적으로 멀리 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2002년 동투르키스탄 운동을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위구르인들이 실제 테러리스트인지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지만 말이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위구르인들이 관타나모로 보내졌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파키스탄에서 잡혔을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군벌에게 배신 당해 미군에게 잡혔음을 생각하면 최유식 소장의 추정(탈레반과 동투르키스탄 운동의 연관성) 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지 않나 생각해 본다.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9657
그리고 “중국이 탈레반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미 왕이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의 톈진 회동으로 여기에 대한 의문은 해소된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728121751074
끝으로 실례되지 않는다면 오역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마침 내 지인도 칭화대 세계평화포럼에 참석했고, 회의 상황을 거의 실시간 중계해줘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당연하지만 왕이의 기조연설 전문 또한 받아봤다. 해당 내용은 아래와 같다.
第二,要共同推進全球熱點問題的政治解決。在阿富汗問題上,最緊迫的是保持和平穩定、防止生戰生亂,美國作為阿富汗問題的始作俑者,應當以負責任方式確保局勢平穩過渡,不能甩鍋推責,一走了之。
중국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배워본 독자들은 내가 왜 《조선일보》의 오역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나라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언론사인데, 왕이 기조연설 부분의 오역이 너무도 심하다(말을 만들어 내는 수준이다). 일단 “……식으로 나오는 건 곤란하다”라고 번역될 여지가 있는 말 자체가 없다. 글쓴이의 상상력을 더해 추가한 내용인지 아니면 글쓴이가 어떤 내용을 강조하고 싶어서 없는 말을 더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오역을 넘어선 말 만들기라 딱히 무엇이라 반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사자”라는 번역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 “始作俑者”는 “나쁜 일을 시작한 당사자”를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며, “甩鍋推責” 또한 책임을 회피하고 보다는 “책임을 떠넘기고”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런 단어들을 번역할 경우, 독자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부연 설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부분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단오제 오역을 필두로 《조선일보》의 중국어 오역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이상, 우리도 이를 대충 인지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독자로서 이런 언론의 신뢰성 문제와 연관된 치명적 실수가 아쉽다. 재정적 여유가 있는 언론사로 알고 있는데 더 전문적인 번역사에게 관련 문서 번역을 의탁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영어 번역도 이런 수준이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아무쪼록 《조선일보》의 “품격”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사였던 것 같다. 다만 “품격”이 허위 사실과 오역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를 진정한 의미의 품격이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자면 중∙러 군사협력체가 테러리즘 대응을 빌미로 대평원에서 기갑부대가 포함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이후, 중앙아시아의 정치적 혼란 상황은 예견된 것이고,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테러 대응을 명분 삼아 “심장지대”에서 여러 차례 군사 훈련을 전개할 경우, 중앙아시아 나아가 남아시아 국가들에게 주는 정치적 경고는 단순한 테러 대응 차원을 뛰어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테러 조직을 잡는데 불필요한 기갑부대 훈련까지 하면, 이는 테러를 명분으로 할 뿐, 실상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경고나 다를 바 없다. “심장지대”를 차지한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섬” 지역 어느 곳이라도 빠르게 자신들의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으며(이 때문에 이들은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주둔하기보다는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는 기계화 부대 건설에 힘쓴다), 이들의 군사적 역량은 “세계섬”에 위치한 어느 정부라도 충분히 전복시키고도 남음이 있는데, 이런 이들이 기갑부대를 포함한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만일 이런 대규모 군사훈련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세계섬”에서의 패권 교체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하다.
※ 2021년 8월 1일, 일부 오탈자를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