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왕이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의 만남을 지켜보며: 우리 언론과 지식인 사회는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가?

계연춘추 2021. 7. 2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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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왕이, 탈레반 지도자 만나 '테러조직과 결별' 강조(종합) | 연합뉴스

(베이징·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한종구 특파원 = 미군 철수로 내전이 격화한 아프가니스탄이 중국의 위협 요소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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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 부장 왕이와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만났다. 그러나 바라다르가 출소한 직후, 현재 언론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중국에 두어 차례 방문했으니 이번이 그의 첫번째 방중은 아니다(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지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우리 기자들, 그리고 국내 전문가들이 그 “알 사람들”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이지). 다만 탈레반과의 접촉을 묻는 외신 기자 질문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시종일관 긍정적이면서도 애매한 답변만을 제시했음을 생각한다면 이번 바라다르와의 회동을 공개한 것은 확실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베이징 지도부는 탈레반이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탈레반에 유리한 구도로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판단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군 철수가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탈레반이 이미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60%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이미 수도 카불과 그 인근 지역, 그리고 몇몇 대도시만을 장악한 상황이며, 이와 같은 흐름이 이어질 시, 탈레반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연합정부 탄생은 기정사실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 국내 언론은 중국과 탈레반의 긴밀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포착하는데 실패했고, 탈레반이 ETIM을 도울 것이라는 공상과학 소설을 쓰며, “이슬람 형제애”로 뭉친 테러 단일체가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중국-중앙아시아 관련 박사 학위논문을 쓰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그야말로 중국도 모르고, 중앙아시아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에 지나지 않다(그리고 이제 왜 필자가 지정학을 접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중앙아시아 연구는 깊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지정학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국내 중앙아시아 연구부터가 내셔널리즘적 시각에서 이 일대의 역사를 바라보려 하다 보니, 중앙아시아 단일 인종 집단 내부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분열이나 중국의 중앙아시아 제국 통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ETIM 지원 설도 그런 무지에서 비롯된 상상력의 결과물로 이해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전제주의 정권 주도하의 소수인종 탄압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국이 반 체제적인 위구르족을 탄압하듯이 파키스탄도 발루치스탄 독립운동과 파키스탄 탈레반을 탄압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은 IS와의 연대를 이어가는 페르가나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중이고, 탈레반도 집권하자마자 하자라족을 탄압하려 들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 그나마 이란이 소수인종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편이지만, 절대적인 인권의 가치에서 보자면 여전히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중에서도 탈레반은 파슈툰 부족주의의 신봉자들이며, 이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아프가니스탄 질서는 파슈툰족이 다른 소수인종을 지배하고 통솔하는 사회다. 베이징 지도부가 이들을 설득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이들이 무슬림을 탄압하는 것이 아닌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것이라는 사실만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고,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집권하자마자 ①여성, ②비-공산당원, ③소수민족(당연하지만 이중 무슬림도 많다) 출신을 대거 요직에 앉힌 바 있다. 당연히 이런 중국의 현실을 목격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보기에 워싱턴의 정치 선전-중국의 무슬림 탄압-은 그리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야 말로 서구 언론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중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가 보고싶은 사실만을 봤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쓴 글을 읽지 않더라도(나도 상당히 우연한 계기에 중국과 탈레반의 접촉이 생각보다 긴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국, 러시아, 인도 언론 등 중앙아시아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는 기사를 잘 챙겨보는 사람들이라면 (설령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미 한달 전부터 국내 기자들과 지식인 사회가 밀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ETIM 지지설이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ETIM을 지원하려면 파키스탄 정부와 중국 정부와의 대립을 각오하고 외부와의 교류를 모두 단절 당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 이는 탈레반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이 아니다. 중국이 탈레반을 돈으로 매수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바다로 나가려면 ①이란 방면이나 ②파키스탄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들과 중국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가할 수 있는 압력은 (이란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는 미국에 비해) 지정학적이고, 본질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중국이 파키스탄,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스파이크먼의 구상대로 “반월지대”에서 자신들의 지정학적 통치를 확립하는 동안, 미국은 프리드먼-자이한 계열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사실상 미국을 약하게 만든 것은 중국도 아니요, 러시아도 아니며, 트럼프와 그의 외교 정책을 지지하게 만들었던 프리드먼-자이한 계열의 지정학자들이다. 그리고 양날 검인 지정학은 이제 그 칼을 돌려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워싱턴은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트럼프의 외교적 실책 때문에 지정학적 열세에 놓인 상황에서) 자신들이 중국과 러시아에게 제한된 제재 카드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심지어 코로나19 대응 때문인지 워싱턴은 몇몇 무기체계 개발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마도 그들은 과거와 같이 자신들의 외교적 수사로 실수를 덮을 수 있다고 믿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3자 연대를 통해 지정학적 우위를 확보한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이란은 “심장지대” 국가의 연대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실감하는 중이고, 적어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 목적(러시아는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재차 점령 및 소련의 부활,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통치 확립, 이란은 미국의 제재 탈피 및 중동 지역 패권 확립)을 달성하기 이전까지 연대를 깰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트럼프 4년은 미국이 자신들의 지정학적 우위를 상실하는 4년이자 세계적 힘의 균형 추를 미국 우위에서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규형이 이루어지는 4년이었던 것이다.

이런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우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막은 것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미국에 대한 종교적 감정까지 가지고 있는 국내 극우 지식인들과 이들의 주장을 언론사 지면에 게재할 뿐만 아니라 가짜 뉴스까지 생산한 우파 언론이었다. 물론 진보 언론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일본에 대한 이들의 기사는 너무도 자극적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오판을 내릴 수밖에 없던 원인을 분석해 보자면 이번만큼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계열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는 자격 미달의 애널리스트의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게재했으며, JTBC는 지정학에 무지한 기자의 주장을 엄청난 분석이라도 되는듯 유포했을 뿐만 아니라(나는 제갈량이 부활하신 줄 알았다), 《조선일보》는 칭화대 세계평화포럼 당시 왕이 외교부 부장의 기조연설을 오역까지 해가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ETIM 지원설을 지원 사격했다. 그리고 이들의 기사는 극우 유튜버들의 방송을 타고 사실처럼 포장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며(심지어 내가 보니 국제질서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경제 유튜버가 중국과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논하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 나중에 가서는 몇몇 사람이 사실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지속됐다. 이것이 내가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경험한 일이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china/2021/07/26/AR27S76WNJALNMQAJSLNXSNZQM/?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최유식의 온차이나] ‘제국의 무덤’ 마주한 중국

최유식의 온차이나 제국의 무덤 마주한 중국 미군 철수로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정권 복귀하면 숨죽였던 위구르 독립 무장세력 부활할까 전전긍긍

www.chosun.com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16243

[중국은, 왜] 다시 열린 '제국의 무덤'…왕이 급파한 '스탄' 3개국의 비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압박해 국토의 85%를 장악했다는 주장을 전한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서북방 경고등이 켜..

news.jtbc.joins.com


www.donga.com/news/NewsStand/article/all/20210508/106822501/1

中, ‘美 아프간 철군 결정’에 위구르족 봉기할라 전전긍긍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안보 상황은 아직도 복잡하고 엄혹하며 테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프간 주둔 외국 군대의 철수는 책임 있고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하며, 테러 조직들이…

www.donga.com


※저 기사들을 보며 진보진영 인사들이 “조∙중∙동”을 비판하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언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전달하면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겠지만, 그 듣고 싶은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경우 책임져야 하는 것은 언론이 아닌 사회 전체다. 나는 이번 기회에 우파 언론이 자신들의 중국, 중앙아시아 언론 보도 행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반성은 언론의 신뢰성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 우리 사회가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오판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이런 언론의 편향된 보도는 비단 우파 언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케이스와 무관하다 보니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지 진보 진영 언론의 몇몇 국가에 대한 보도 또한 자극적이기는 매한가지다. 그리고 이들의 보도 행태는 쇼와昭和 시대 일본 언론과 같이 우리 국민들을 가상 공간 안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쇼와 시대의 결말이 태평양 전쟁, 그리고 일본제국의 패망이었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 언론도 우리를 패망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론 관계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우리 학계도 스스로의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비록 내년이 한중 수교 30주년이지만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잣대로 이들을 규정했을 뿐이며, 중국과의 관계가 사드로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이들을 비난하고 저주하기만 할 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 만일 우리가 중국을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고, 이들의 후진성을 비난하는데 연구 역량을 소모한다면, 결국 우리는 중국이 만들어가는 지정학적 통치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과 미∙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 시나리오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의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중국은 출해구出海口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자원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에 자국 중심의 지정학적 질서를 확립하려 할 것이다.

지정학 하나만 보더라도 그간 우리 학계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통치를 확립해 나갔는지 알 수 있다. 매킨더에 의해 지정학의 틀이 확립된 이래, 지정학은 접근성에 기초해 ①“심장지대”에서 바다로 팽창하거나(매킨더), ②“반월지대”에서 바다와 내륙으로 팽창하거나(스파이크먼) ③해양에서 반월지대로 진출해 심장지대를 포위하는 전략(마한)을 구사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정학 관련 이론은 대체로 마한 계열의 해양 패권론 뿐이며, 나머지 지정학 이론은 소개조차 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국내 교수들의 지정학 관련 글을 볼때마다 나는 나사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면 지정학은 특정 세력의 패권 옹호를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양 패권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바다의 지배자는 세계의 지배자”라는 주장은 지정학적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지정학자들은 정치적, 자연 지리적인 이유로 대륙을 관통하는 육상 교통로가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며, 이 때문에 별다른 육상 인프라 건설 없이도 전세계로 접근할 수 있는 바다의 지배자가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는 지정학적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위험한 사업이며, 적어도 해상세력의 절대적 우위를 육상과 해상의 균형으로 돌릴 수도 있는 계획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 중국이 카스피해를 이용해 이란의 석유를 자국으로 운반하는 루트까지 개척하려는 마당에 해상 포위가 중국에 얼마나 위협적일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지.

통상적으로 대학원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훈련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믿을 만한 정보에 기초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언론 환경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국제질서를 객관적으로 보려 하기 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결국 미국이 계획하는 모든 일은 이루어질 것이며, 미국에 저항하는 나라는 망할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도 정책적 실수를 하고, 트럼프 재임기간 내내 동안 패권국이라면 하지 말아야 될 실수를 몇 년 연속으로 저질렀다. 당연 후유증과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미국의 지정학적 열세는 그 후유증으로 인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마 회복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지정학적 실수는 저지르기는 쉬워도 회복하는데 10년은 족히 걸린다). 그러나 우리 학계는 ①트럼프의 실수를 인정하지도 않고, ②몇몇 잘못된 극우적인 교수들에 대한 신임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③트럼프를 찬양하기 바쁜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아무런 비판도 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④이제는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식으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ETIM 지원설을 지원사격까지 했다. 물론 먼 미래에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한 탈레반이 중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ETIM과 접촉할 수도 있다(인도 모디 정부가 달라이라마를 지원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 단계에서 나올 주장이 아니다. 아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한 것도 아니고, 무력 수단을 통한 가니 정부 전복을 천명한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짓인가? 어쩌면 언론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학계 구성원들의 사회적 책임감 상실이야 말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히 진보 진영에서 말하는 보수 카르텔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이번 보수 언론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ETIM 지원설은 너무 나간 측면이 있다. 또한 언론을 감시하고 감독해야 하는 우리 지식인 사회는 탈레반 내부의 대립(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파키스탄 탈레반)을 축소하거나 무시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듣고 싶은 이야기만 취한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수 언론과 극우 지식인들의 정보 생산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이들이 모종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선별하고 심한 경우 왜곡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정보 생산이 사회 공동의 이익 추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현상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미래에 치러야 하는 비용을 증가시킨다는 점에 있어 조금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런 기사를 통해 우리 지식인 사회와 언론의 지적 수준이 대중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 같아 너무도 민망하고 무안하기까지 하다.

나는 우리 학계와 언론이 이런 상황까지 맞이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가 생산되고 유포되는 정보의 생산-유통 구조에 대해 반성하고 시정하려 하기보다는 (그간 아무 일 없었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아 겁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려 하는 학자들도 결국에 가서는 한국 언론을 보지 않고 언론사 기자와의 접촉을 피하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게 된다(어떤 조언을 하더라도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과 취향에 맞게 왜곡될 것이 뻔하니까). 그리고 소수의 언론 지원을 받는 극우적인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는 순간, 지식인들은 점차 침묵을 선택하거나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회적 여론에 동조하게 된다. 슬프게도 이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이 아닌 “정보(더 정확히 말해 이는 언론이 생산한 현실과 허구적 요소가 혼재된 정보들이지만)”들이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잡는 순간, 사회 구성원들은 가상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간 여러 허구적 요소가 가미된 정보를 생산한 언론과 개인 매체들은 이와 같은 가상의 적이 얼마나 허약하고, 이들이 스스로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강변하게 된다. 이런 가공되고 편향된 정보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가상의 적이 실제로는 얼마나 강력한지를 묻지 않고, 자기 자신들이 이들과 싸워서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이 가상의 적이 보이는 모든 행위에 대해 정치적 의도성이 있다고 상상하며, 이들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도 주저하지 않고 감행하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까지 발전하게 되면, 사회 전체가 판단력을 상실한 상황 속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과거 일본 언론이 자국을 태평양 전쟁으로 몰아넣은 방법을 토대로 한 사회가 극우 파쇼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하다. 지금 동아시아 동쪽의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 같아서 말이다. 우리 언론은 시진핑 방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중국 지도자가 한국과의 우화관계를 위해 한국에 방문할 것이라는 기사를 대량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2020년), 쑤안차이酸菜와 파오차이泡菜, 김치韓式泡菜의 중국어 표기와 조리법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한 장에 흥분하기만 바빴고, 중국 민간 업체의 부동산 투자를 중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행위인 것처럼 묘사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학자들에게 실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 현상들에 대한 국수주의적 해석을 강요하고, 언론은 자칭 전문가를 내세워 지식인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아니, 은연중에 지식인들은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사회적 고립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공개적인 비판보다는 침묵을 선택했고, 이와 같은 타협주의적 태도가 모두의 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결국 은연 중에 우리 사회 대다수 지식인들은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원화된 사회적 대립을 목격하고 있다.

이 다양성이 상실된 사회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스스로를 지킨다는 뜻은 분명 왜곡될 소지가 있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내 일신의 안전을 위해 사회 여론과 타협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지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고, 내가 스스로의 감정과 대언어를 뛰어넘으면서까지 얻은 학문적 규칙을 지키기 위해 사회와 타협하지 않음을 뜻한다. 학자를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하는 사회나 대중적인 여론의 힘을 빌려 학자의 침묵을 유도하는 사회 모두 학자의 연구적 자율성을 제한하고, 사회의 단일성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단일 대오를 요구하는 이들이 이런 요구를 하는 경제적 이유에 대해서는 묻는 것은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배척하고 독립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이들이 한국 땅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이런 사회적 광기에 물들지 않고, 진리와 정의로움의 승리를 믿으며, 불이익을 감수해 가며 진리를 외치는 것이다. 실은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길은 고난의 연속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해해 주리라는 생각으로 간다면 순례의 길이라 해도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선택 여부에 따라 이 작은 사건은 국가 부흥으로 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미래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한국의 극우화와 몰락으로 이어지는 전초 사건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것은 국민들의 손에 달려있다. 다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이념의 틀을 벗어나 생각해 봤으면……이라는 생각은 내 희망일 뿐일까?

그럼에도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늘날에도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 글을 끝 맺는다.




이 블로그에 쓴 글이 벌써 100편이 다 됐다(물론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공개로 돌리거나 올렸다 지운 글 포함해서 100편이라는 뜻이다). 바쁜 와중에서 글을 읽어주고 비평해주신 지인들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여러분과 가까이에서 교류할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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