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화궈펑華國鋒 당주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왕후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행사는 덩샤오핑 집권 이래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한 첫번째 화궈펑 기념식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이 행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화궈펑 기념식에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한 정치적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화궈펑은 마오로부터 권력을 직접 이양 받은 다음 예젠잉 등 해방군 실세의 힘을 빌려 사인방을 채포하고 당주석 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兩個凡是로 대표되는 화궈펑의 교조주의는 문화대혁명으로 지쳐 있던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마오의 권모술수로 인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이들을 복권 시켜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던 화궈펑은 (훗날 자신을 정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 덩샤오핑을 비롯한 이들을 다시 중앙 정계로 불러들였다.
내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해방군 내 지지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덩샤오핑, 예젠잉 등 공산당 거물급 인사들과는 달리 화궈펑은 해방군 내 지지세력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화궈펑에게 마오의 정치적 후광은 단순한 후광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의 정치적 생명은 예젠잉과 같은 군 출신 인사들의 지지(이런 지지조차 마오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지 화궈펑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와 兩個凡是이라는 교조주의에 기형적으로 매달리는 신세였다. 그러나 마오에 대한 교조주의는 계획경제로 인한 만성적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중국 공산당 지방 간부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 마오 시절 정치적 탄압을 받았으나 당내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일부 인사들을 기용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덩샤오핑은 화궈펑의 정치직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알고, 兩個凡是로 대표되는 교조주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중국 중공업 기반이 집중된 둥베이 지역에서 간부들을 상대로 교조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당의 주요 정책 노선을 계급 투쟁에서 경제 개방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덩샤오핑 자신이 이야기했듯이 그는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적어도 “이대로 가다가는 중국이 망할 수도 있겠다”라는 의기의식을 잘 읽어내고, 그런 위기의식을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리표준토론” 사건으로 인해 화궈펑이 부르짖은 兩個凡是은 치명상을 입었으며, 그의 정치적 기반 중 하나인 교조주의 보루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중국의 국가 지도자는 ①개인 실적을 기반으로 ②군부 지지와 ③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통치 이데올로기 제시, ④당내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만이 권좌를 유지할 수 있는데, 화궈펑은 개인 실적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대에 부합하는 통치이념도 제시할 수 없었고, 폭넓은 당내 지지기반도 없었다. 이와 달리 덩샤오핑은 제2차 국공내전 과정에서 류보청, 천이 등이 이끌었던 남방 주둔군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으며, 시대적 요구가 더 이상 계급 투쟁이 아닌 마오 집권 이래 중국의 고질적 문제였던 생산력 발전의 한계로 인한 만성적 물자 부족 현상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경제 구조를 유지할 시 중국이 망할 수도 있다는 당내 위기의식을 잘 읽어냈다 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이데올로기 주도권이 덩샤오핑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화궈펑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덩샤오핑은 권력이 당주석 일인에게 집중된 당시 중국의 정치 상황을 비판하며, 화궈펑에게 집중된 정치적 권한을 점차 분산시켜 나아갔다. 덩사오핑의 정치적 공세로 손발이 묶인 화궈펑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실감하고 1980년을 끝으로 베이징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가 맡고 있던 중국 최고 권력자를 상징했는 당주석 직은 폐지되었으며, 당주석에게 집중된 정치적 권한은 덩샤오핑의 구상대로 국가주석과 공산당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주석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화궈펑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꺼려한 인사 중 한 사람이었다. 화궈펑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올라갈수록 덩샤오핑 이래 개혁개방 노선이 일부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꼴이고, 나아가 공산당이 경제 개발 노선에서 계급 투쟁이라는 좌익 노선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덩사오핑 노선을 지속하는 공산당 입장에서 언급 자체를 꺼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후진타오 재임 기간 동안 개혁파의 거두로 재조명을 받은 후야오방과는 달리 화궈펑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 화궈펑 100주년 탄생 기념식을 기념하는 시진핑 정부의 속내는 무엇일까?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그리고 시청률도 바닥이어서 그렇지), 이미 중국 시진핑 정부는 화궈펑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2014년 방영된 《역사 전환기에서의 덩샤오핑》에서는 중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화궈펑이 등장했으며, 이후 관영 매체에서 화궈펑의 언급 빈도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솔직히 속내라 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아울러 중국공산당 원로이자 국가원수를 기념하는 일이니 당연히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 사람들이 이 기념 행사를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시진핑이 어떤 형식을 빌려 장기 집권할 것인지에 대한 여러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그가 당주석 직을 부활하려 한다는 일부 언론 기사 내용(2017, WSJ)이 생각나기 때문은 아닐까? 비록 시진핑은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을 없앴지만(총서기직은 애초에 임기 제한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가주석이라는 상징성 있는 자리를 3차례 연임하는 것에 대한 당내 불만이 아주 없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후임자에게 국가주석 직을 내주는 대신 중국공산당 총서기 직을 폐지하고 대인 당주석 직을 부활시킨 다음, 본인이 당주석 자리에 오를 경우 이런 비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의 최고권력기관은 형식상 전인대이지만, 이 전인대에서 표결 처리되는 법안은 대체로 중국공산당이 건의하거나 초안을 작성한 것만 상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정치적 실권은 여전히 중국공산당에게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당주석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사실상 중국 권력이 명실공히 일원체계로 다시금 통합됨을 뜻한다.
아울러 불편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중국은 후진타오 재임 시절 이미 학계 일각에서 중국공산당과 국가 행정기구를 이원화하자는 개혁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대체로 중국공산당이 군권과 감독권, 예산심의권 등 주요 권력을 독점하는 대신 국가 행정기구는 당 조직과는 무관한 이원 체계로 운영하자는 주장이었는데-실제로 중국은 이미 이와 같은 이원 체계로 전환하기 좋은 구조이기도 하다-만일 국가주석과 당주석이 병존하는 상황이 이르게 된다면(실제로 마오 시절 국가주석 류샤오치가 당주석 마오와 대립하기도 했다) 군사위주석까지 겸한 당주석이 실권을 가지고, 국가주석은 나라살림이나 꾸리는 사실상의 권력서열 2위로 격하되게 된다. 어쩌면 시진핑은 국가 조직 법제화와 당-행정기구 이원화를 정치개혁 구호로 당주석 직을 부활시키고 본인이 당주석 직에 취임하는 대신 국가주석 직을 예정된 후임자에게 물려주는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최근 관영 매체에서 화궈펑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증가하는 추세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본다. 현 시점에서 시진핑이 장기집권을 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그가 어떤 형식을 빌려 연임할 것인지에 대해 단 한번도 공식석상에서 이야기된 바 없다. 물론 헌법 개정을 했기에 아직까지는 국가주석 직을 다시 연임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추세로 보아 당주석 직을 부활하고 본인이 취임하는 시나리오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본다. 따라서 중국 연구자들은 다가오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를 유심히 지켜보아야 하며, 여기서 나오는 정치적 발언을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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